민주당 서울시장 경선 ‘박원순 대 반박원순’…권리당원 표심에 주목
선거는 구도다. 때때로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구도를 흔들지만, 완전히 무너뜨리기는 어렵다. 역대 선거에서도 증명됐다. 2004년 탄핵 후폭풍 당시 한나라당은 ‘선거의 여왕’으로 불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앞세워 막판 보수표 결집에 나섰다. 결국 121석을 건지면서 구사일생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3월 14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를 찾아 평창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스웨덴의 경기를 관람하고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서울시
2012년 대선 땐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이 무소속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무소속의 한계로 야권단일화 벽을 넘지 못했다. 그만큼 구도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구도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계파와 진영이다. 집권당 최대 주주 친문계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서울 대첩은 단순히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중 한 곳이 아니다. 차기 대권 급행열차의 1등석 탑승자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또한 수도권 전체 바람은 물론, 동남풍을 잇는 핵심 고리다.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이 6·13 지방선거 판세를 가늠하는 첫 번째 열쇠인 셈이다.
민주당 경선 구도 키워드는 ‘박원순을 넘자’로 요약된다. 최대 6파전을 예고했던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은 3파전으로 좁혀졌다. 성희롱 의혹에 휩싸인 민병두 의원은 의원직을 던졌고 전현희 의원은 당의 현역 출마 자제령을 수용했다. 미투 폭로의 직격탄을 맞은 정봉주 전 민주통합당 의원의 복당 문은 닫혔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일찌감치 불출마로 입장을 정리했다.
이로써 민주당 서울시장 구도는 수성전에 나선 박 시장과 공성전에 나선 박영선·우상호 의원 간 대결로 전환했다. 민주당 경선 초반인 만큼 뚜렷한 구도는 없다. 당 최대 주주인 친문(친문재인)계도 산발적으로 흩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천 하명이 없는 것도 친문계가 특정 후보를 밀지 않고 분화한 이유로 꼽힌다.
이 지점의 관전 포인트는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변수로 경선 구도가 ‘박원순 대 반박원순’으로 재편하느냐다. 이 경우 분화한 친문계도 ‘박원순이냐, 아니냐’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박 시장을 비토하는 당 주류 표심이 어디로 흐를지가 관건이다. 이는 당 지도부가 고심 중인 결선투표제와 맞물려 있다. 박영선·우상호 의원이 전략적 동거를 꾀한다면, ‘박원순 대 반박원순’ 구도는 한층 고착할 전망이다. 친문계 표심이 한쪽으로 쏠릴 수도 있다는 의미다.
박 시장 측은 어떤 구도가 변수로 작용하든 ‘내 갈 길을 간다’는 입장이다. 박 시장의 강점은 현역 프리미엄이다. 친문계나 범야권의 견제에도 박 시장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미투 파문 이후 대안 부재론을 인식한 청와대 내부에서 ‘미워도 박원순’을 외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는 점은 천군만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재선 서울시장’이라는 프리미엄은 경선과 본선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도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도 다른 후보보다는 검증된 박 시장이 낫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점은 피로감이다. 1995년 민선 이후 3선 서울시장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박 시장 측이 3선 도전을 택하면서 “박원순의 길을 간다”고 천명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굵직한 업적이 없는 것도 약점이다. 전임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청계천 복원과 버스노선 개편 등은 지금도 정치권에 회자된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청계천 복원 등으로 여야가 극명히 갈리지 않았느냐”며 “이슈파이팅 요소로 최적화된 어젠다”라고 말했다.
불명예 퇴진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조차 떠오르는 업적이 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추진이다. 이 때문에 오 전 시장이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에서 방랑자로 전락했지만, 정치권에선 “업적이 떠오르지 않는 박 시장보다 낫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박 시장은 되레 전시행정 논란에 휩싸였다. 미세먼지 무료 대중교통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조차 박 시장을 비판했을 정도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파문 당시 박 시장의 단독 기자회견도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비판받았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대표는 문 대통령이었다. 친문 내부에선 문 대통령과 박 시장의 공동 기자회견을 추진했지만, 박 시장이 단독 기자회견을 열면서 양측 간 균열이 발생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민주당 수도권 중진 의원은 “친문계 중 ‘박원순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며 “이들 표심이 당락을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문팬(문 대통령 팬), 문심(문 대통령 의중)이 박원순에게 있다는 것 알고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영선 의원의 강점은 인지도다. MBC 경제부 기자와 뉴스 앵커를 거쳐 2004년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입했다. 이후 서울 구로을 지역에 내리 3선을 했다. 2007년 대선 땐 BBK 저격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로 박 의원의 몸값도 올라갔다. 선거 초반부터 ‘문재인 마케팅’에 나선 박 의원은 경기지사 후보인 친문 핵심 전해철 의원 등과 공조행보에 나서려는 전략을 세웠지만, 정작 전 의원 반응은 미지근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전 의원으로선 박 의원이 문재인 마케팅을 펼치는 것이 불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박 의원은 2014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세월호 특별법 법안을 놓고 당시 친문계와 정면 충돌했다. 당시 박 의원은 탈당을 고려했을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 탈당 대신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택한 박 의원은 이후 비문(비문재인)계로 분류됐다. 민주당 복수 관계자들은 “박 의원에게 상처받은 이들이 적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박영선 비토’ 기류는 경선 과정에서 확장성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른 관계자는 “행정 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도 아킬레스건”이라고 말했다.
우상호 의원의 강점은 문재인 정부 신주류와 궤를 같이한다는 점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과 함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이끈 핵심 인물이다. 우원식 원내대표 전임 시절 당직을 원활히 수행한 것도 강점이다. 우 의원 측 관계자는 “우상호 때문에 운동권 이미지를 바꿨다는 이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차르 리더십’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갈등을 빚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지만, 단 한 번의 잡음 없이 총선을 이끌었다. 단점은 낮은 인지도다. 이는 우 의원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운동권그룹이 가진 한계다. 제도권 정치입문 후 당 주류에 기대는 숙주정치·하명정치를 했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 변수의 처음과 끝은 ‘친문계 표심’이다. 민주당 경선 룰은 권리당원 50%+여론조사 50%다. 여론조사에선 박 시장이 우세하다. 다만 당 주류가 장악한 권리당원 표심은 민심과 괴리를 보일 수도 있다. 결선투표제까지 더해진다면 상황은 더 복잡하다. 박영선·우상호 의원 중 어느 후보가 결선을 가느냐에 따라 친문 결집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친문계 내부에선 “차라리 추미애 대표를 내세워야 하는 게 아니냐”고 대안 부재론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추 대표가 탄핵과 대선 정국 등을 거치면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직접 선수로 등판할 가능성은 낮다. 민주당 서울시장 변수는 후보 구도 변화 없이 3파전으로 치러진다는 얘기다. 변곡점은 친문계가 전략적 투표 기로에 설 ‘박원순 vs 반박원순’ 구도 재편 때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민주당 경선에서 ‘박원순 대세론’을 깨느냐가 관전 포인트”라며 “박영선·우상호 후보가 판세를 깰 승부수를 던지지 않으면, 후반으로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정치 9단’ 박지원 기로에 선 까닭? 지사와 킹메이커 사이 ‘고민’ ‘정치 9단’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의 고심이 깊다. 전남지사 출마부터 평화당의 존재감 확보 등 난제가 산적하다. 14석에 불과한 평화당은 6석의 정의당과 공동 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협상을 개시하면서 ‘신 캐스팅보터’로 급부상했지만, 6·13 지방선거 이후에도 존속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키는 박 의원이 쥐고 있다. 그는 전남지사 후보군으로 꾸준히 거론됐다. 박 의원은 3월 16일 서울 여의도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부엉이는 해가 져야 먹잇감 사냥에 나선다”며 “지금은 부엉이가 날 때가 아니라 점심시간”이라고 말했다. 전남지사 출마 여부를 밝힐 시점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치권에선 박 의원의 발언을 놓고 설왕설래가 오간다. 특히 그의 연대 ‘입구·출구론’과 맞물려 범진보연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다. 앞서 박 의원은 3월 9일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북콘서트를 찾아 “서울시장·경기지사는 연대의 입구, 호남은 출구”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평화당이 수도권과 호남에서 무공천 방식의 묵시적 연대를 한다면, 출마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실제 그는 “민주당 후보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 의원의 ‘전남지사 등판’ 여부가 반반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박 의원의 ‘불출마 가능성’은 연초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부인 이선자 씨가 지난해 12월 뇌종양 수술을 받은 게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한 측근은 “박 의원이 병간호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도 전남지사 출마 여부를 묻는 말에 “(부인) 밥도 먹여주고 운동도 시켜야 한다”고 고민이 적지 않음을 내비쳤다. 민주당 전남지사 구도가 급변한 것도 변수다. 애초 전남지사 출마에 가장 의욕을 보인 인사는 이개호 민주당 의원이었다. 이 의원은 민주당 내 유일한 전남지역 의원이다. 이 의원은 추미애 대표 등 당 지도부의 ‘현역 차출 불가론’에 출마 강행 의사를 밝혔으나, 결국 뜻을 접었다. 반면 전략공천론이 제기됐던 김영록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직을 벗어던졌다. 민주당과 평화당 내부에서 제기된 호남 묵시적 연대 가능성이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의원은 “애초부터 박 의원은 전남지사보다는 중앙정치에서 존재감을 확보하는 데 관심이 컸다”며 “20대 후반기 국회에서 상임위원장이나 다른 보직을 통해 호남 맹주를 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지사→차기 대권’의 길보다는 차기 총·대선에서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호남 맹주 자리를 유지, 차기 총·대선에서 킹메이커 존재감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 깔렸다. 이를 위해선 평화당의 캐스팅보트 포지션 구축이 필수다. 박 의원이 “개헌과 추경은 평화당의 몸값을 올리고 존재감 높일 기회”라며 평화당 지도부의 분발을 촉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