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보살’ 곽도원, 소속사 대표 ‘꽃뱀’ 발언 지원했다 역풍 맞기도…“진정한 피해자 vs 꽃뱀” 이분법 벗어나야
배우 곽도원의 소속사 대표 임사라가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대표의 성폭력 피해자들로부터 금품 요구와 협박을 받았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사진=쇼박스
그러나 곽도원 측에서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고발자가 주장한 피해 기간과 곽도원이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한 기간이 맞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하마터면 거짓 미투의 피해자가 될 뻔 했음에도 곽도원은 허위 고발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투 운동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이유였다. 또 미투 운동을 지지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곽도원이 ‘미투보살’로 불린 것도 이러한 이유 덕이었다.
그 배우에 그 소속사 대표라고 해야 할까. 임사라 대표 역시 “미투 운동의 의미가 퇴색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퇴색’의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대표의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돌렸다.
곽도원의 연극계 후배이기도 한 피해자 4명은 지난 3월 23일 곽도원을 만났다가 임 대표와 곽도원에 의해 ‘꽃뱀’으로 몰렸다. 성범죄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아 오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 말투만 들어도 이건 소위 꽃뱀이구나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로 촉이 생기더군요. (중략) 안타깝게도…(피해자들을 보고) 촉이 왔습니다”는 게 임 대표의 이야기다. 임 대표는 이 문장이 논란이 되자 원본 글에서 곧바로 삭제했다.
그는 지난 3월 23일 밤 11시경 강남 논현동의 한 이자카야에서 곽도원과 동행했다. 이 자리에서 피해자 4명으로부터 “우리가 (곽도원을) 살려줄게”라며 금품을 요구받았다는 것이 임 대표의 주장이다. 거절하고 자리를 뜨자 이튿날 피해자들로부터 “너도 우리 말 한 마디면 끝나”라는 식의 ‘형법상 공갈죄’에 해당할 법한 협박성 발언까지 들었다고 덧붙였다.
곽도원 역시 임 대표에게 피해자들로부터 금전을 요구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술자리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임 대표가 곽도원에게 무슨 말이 오가는지 물었더니 “(피해자들이) 이윤택 사건 피해자 가운데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건 우리 넷뿐이니 우리한테만 돈을 주면 된다. 알려주는 계좌로 돈을 보내라”고 말했다는 것.
그런데 여기에 곧바로 피해자 4명의 반박이 따랐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피해자는 “(곽도원을 만날 때) 임 대표는 다짜고짜 후원에 대해서 얘기하며 스토리펀딩을 설명하고 ‘곽도원 씨 개인적으로는 후원할 수 없다’며 계속 돈 얘기를 꺼냈다”며 금전 요구를 먼저 한 것이 자신들이 아님을 강조했다.
오히려 돈을 지원해주겠다고 한 것은 곽도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앞선 피해자는 “술에 취한 우리의 하소연을 듣고 (곽도원이) 감정이 북받쳤는지 울면서 ‘개인 계좌번호 불러! 내가 돈 줄게!’라고 소리쳤고, 나는 ‘절대 선배 돈은 받지 않겠다’고 강하게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이윤택 고소인 공동 변호인단은 지난 3월 29일 임사라 오름엔터테인먼트 대표(사진)를 이윤택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훼손(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사진=임사라 페이스북
그런데 임 대표로부터 피해자들의 이른바 ‘꽃뱀 녹취록’을 받았다는 이윤택 고소인 공동변호인단이 지난 3월 29일 임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해당 녹취록은 임 대표가 피해자들로부터 금품 요구, 협박 등을 받았다고 주장한 근거였다.
공동변호인단 측은 “임 대표가 일방적으로 보내 온 녹음 파일은 전체가 아닌 일부 파일이고, 해당 내용과 피해자들이 녹음한 내용, 상호 주고받은 문자 등은 협박이나 금품요구와는 무관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즉, 임 대표가 주장한 ‘꽃뱀 녹취록’은 임 대표가 임의대로 한 쪽에게 유리하게 수정한 것일 수 있다는 것.
더욱이 변호인단은 녹취와 문자 내용 속에 금품 요구와 협박의 의도가 없는 것으로 파악됨에도 임 대표가 ‘꽃뱀’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가한 것을 지적했다. 피소된 후 임 대표는 문제의 페이스북 글에서 ‘꽃뱀’이라는 단어들만을 수정한 채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곽도원은 자신의 공식입장 글을 지우고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성폭력 사건에 대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피해자의 태도를 문제 삼는다. 피해자가 성적으로 문란했고, 성관계 또는 성적 언동 등이 자연스럽게 오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고소·고발을 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해석한다”고 짚었다. 이 때문에 성범죄 피해자는 타의에 의해 ‘꽃뱀’과 ‘진정한 피해자’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대중들은 다른 범죄와는 달리 성폭력 피해자에게만 ‘피해자로서의 완벽함’을 가장 강하게 요구한다”라며 ‘전형적인 꽃뱀 논리’를 설명했다. 그는 “예컨대 사건 당시 성폭력에 저항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선 안 되고, 사건 후 피해 보상을 요구해서도 안 되며, 심지어 사건 발생 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고소해서도 안 된다. 하나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피해자는 ‘꽃뱀’이라고 불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도 억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재판은커녕 수사기관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성범죄자라고 혐의를 확정짓고 사회적인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은 용인하면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측의 결백을 의심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왜 거부되냐는 것.
한편 앞선 임 대표의 ‘꽃뱀론’이 대두됐을 때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이윤택 사건을 폭로했던 김보리 씨(가명)가 지난 3월 23일 곽도원이 만난 이윤택 사건 피해자 가운데 곽도원으로부터도 피해를 받은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해당 글은 댓글에서 김보리 씨의 실명을 언급한 사람이 나타나면서 원본이 삭제됐다. 이 사안에 대해서도 곽도원 측은 어떠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
이와 관련 한 연예계 관계자는 “이윤택 피해자들이 곽도원을 찾아가서 ‘너 살려 줄 테니까 우리 계좌에 돈 보내라’라고 말해야 할 이유가 대체 뭔지 모르겠다. 이걸 꽃뱀 짓이라고 한다면 곽도원이 이 피해자들에게 꽃뱀 짓을 당할 만한 뭔가가 있었다는 말로도 볼 수 있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곽도원은 이미 지난 2월 자신에 대한 허위 미투 고발을 해명하고, 피해를 입었더라도 미투 운동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허위 사실 유포자를 고소하지 않겠다 하지 않았나. 그 덕에 ‘곽보살’이라는 이미지까지 얻었다. 대체 그가 무슨 일 때문에 ‘살려주겠다’는 말까지 들으며 협박을 당했다는 건지 속시원히 해명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