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정권 비자금‘’ 불어야 족쇄도 풀릴까
현재 사법당국은 조 씨가 벌금을 전액 납부하면 일시적으로 출국을 허용해줄 뜻을 내비치고 있지만 조 씨로서는 이마저도 쉽지는 않을 듯하다. 자금 출처에 대한 의구심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근 검찰이 김대중 정권 비자금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도 조 씨의 운신 폭을 좁히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수천억 원대 ‘자산가’로 전해진 조 씨가 고작(?) 172억 원을 내지 못해 출국하지 못하고 있는 속사정을 들춰봤다.
대우그룹 부도를 막기 위해 정·관계에 로비를 한 것으로 의심받아 온 조풍언 씨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지난해 3월 8일이었다. 조 씨 신병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던 검찰이 출국금지 조치를 취한 것도 같은 날이다. 그로부터 2주일 후 조 씨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당시 조 씨의 갑작스런 입국을 두고 온갖 억측이 나돌기도 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조 씨가 지인들에게 “한국에 가면 구속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절대 가지 않겠다”고 수차례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조 씨가 현 정권과의 ‘교감’하에 들어왔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정권이 바뀐 후 이명박 대통령과의 친분(고려대학교 경영학과 2년 선배)을 과시했던 조 씨가 수사에 협조하는 대신 신변보호를 보장받았을 것이란 소문이 흘러나왔던 것. 조 씨 수사에 관여했던 한 검찰 관계자도 “김우중 전 회장 은닉재산과 로비실체를 규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검찰로서는 조 씨 소환이 큰 도움이 됐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조 씨가 들어온 배경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조 씨는 수사 내내 뭔가 든든한 뒷배가 있는 듯한 당당함을 보였는데 이는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라고 귀띔했다.
조 씨 수사는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검찰은 입국 세 달여 만인 지난해 6월 3일 조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강제집행면탈(강제집행을 면하기 위해 재산을 은닉·허위 양도하여 채권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했고, 7월 9일엔 재벌가 자제가 연루된 주가조작 사건에 가담한 혐의(증권거래법 위반)도 추가했다. 또한 추징금 301억 원을 확보하기 위해 조 씨 소유의 국내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하기도 했다. 조 씨는 공판 과정에서 이러한 혐의들에 대해 ‘모르쇠’ 혹은 ‘부인’으로 일관했고 검찰은 ‘증거가 확실하다’며 승리를 자신했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이 아닌 조 씨 손을 들어줬다. 지난 1월 22일 검찰이 15년형을 구형한 대우그룹 로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주가조작 및 강제집행면탈 혐의에 대해서만 공소내용을 받아들인 것이다. 법원은 조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72억 원을 선고했다. 이러한 판결은 6월 17일 열린 항소심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검찰로서는 ‘치욕’적인 결과였던 반면, 조 씨로서는 ‘면죄부’를 얻은 셈이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한 관계자는 “재판부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내부 자성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면서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판결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2심 판결 직후 조 씨는 서울행정법원에 출국정지를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 씨 변호인 측 사무실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이 언제 날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그때까지 무작정 출국을 금지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이를 기각했다. 법원 측은 “정확한 사유는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 조 씨는 1심이 끝난 후에도 출국금지 취소소송을 냈으나 법원으로부터 기각을 당했다고 한다. 총 두 번 신청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특히 조 씨는 첫 번째 소송이 무산되자 지난 4월경 제3자 명의의 여권을 가지고 미국으로 출국하려다 공항에서 제지를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측은 “검찰의 요청으로 조 씨의 출국금지 기간을 연장했고 아직 그 기간은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 씨는 검찰 측에도 출국금지를 해제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상태다.
검찰과 정보기관의 복수 관계자들에 따르면 조 씨는 이처럼 출국금지 상태가 계속되는 것에 대해 조바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당초 조 씨는 한국 체류가 1년을 넘기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도 걱정하는 가족들 및 지인들에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켰을 정도로 여유를 부렸다는 말도 들렸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기획 입국설’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입국한 지 20개월을 넘기며 사건이 ‘장기전’으로 들어갈 양상을 보이자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조 씨 근황을 알고 있다는 한 인사는 “오랜 재판과 수사로 상당히 지쳐 있는 상태다. 거처도 불안정해서 빨리 LA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법조계에서도 조 씨의 출국금지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한 변호사는 “검찰의 공소사실 중 핵심 부분이 무죄로 밝혀졌는데도 출국금지를 계속 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고 털어놨다. 반면 조 씨가 내야 할 벌금액이나 다른 범죄와의 관련성 등을 감안해 출국금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하다. 이에 대해 사법당국은 단호하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우중 전 회장의 은닉재산은 대부분 환수하지 못한 상태다. 이를 찾기 위해서는 조 씨에 대한 추가수사가 불가피한데 만약 미국으로 가서 영영 안 오면 어떡할 것이냐. 또 벌금을 납부하지도 않았는데 출국금지를 풀어주면 국민들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조 씨가 수사 과정과 공판에서 ‘말 바꾸기’를 해 검찰이 ‘괘씸죄’를 적용하고 있다는 소문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다만 조 씨에게도 ‘실낱같은’ 희망은 남아 있다. 부과된 벌금 172억 원을 전액 납부할 경우 출금을 일시적으로 풀어줄 수 있다는 뜻을 사법당국에서 전해왔기 때문이다. 법무부의 한 내부 인사는 “고령인 조 씨를 무작정 잡아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일단 벌금을 다 내면 분위기 조성은 되는 것 아니냐. 구체적인 안이 거론된 것은 아니지만 검찰과 조 씨 사이에 벌금 납부와 출국금지 해제여부를 놓고 어느 정도 의견이 오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는 않을 듯하다. 조 씨가 처한 현 여건상 172억 원이라는 ‘거액’을 마련하기가 녹록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는 대저택과 골프장, 그리고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는 국내외 주식과 부동산을 합치면 수천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조 씨이지만 그것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부동산을 당장 현금화하기도 어렵거니와 거액의 벌금을 내면 그 자금 출처를 놓고 검찰이 칼날을 들이댈 가능성도 크다. 또한 이로 인해 조 씨가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또 다른 비자금 사건에도 ‘불똥’이 튀는 것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조 씨는 최근 검찰 측에 현금 50억 원을 일단 내고 나머지는 은행권 보증으로 대신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거부로 알려진 조 씨가 벌금을 내지 못하고 끙끙대자 ‘자기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내비치고 있다.
이러한 조 씨 입장을 검찰도 모를 리 없다. 이 때문에 검찰청사가 위치한 서울 서초동 주변에서는 검찰이 조 씨와 ‘빅딜’을 하기 위해 ‘압박용’으로 출국금지 카드를 계속 쥐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DJ 정권 비자금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조 씨가 입을 열 경우 출국금지를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검찰이 DJ 정권 시절 특혜를 받았던 기업과 비리들에 대해 전 방위적으로 내사를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소문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조 씨는 대우그룹 로비뿐 아니라 DJ 정권의 의혹들을 푸는 키를 가지고 있는 인사다. 조 씨가 도움을 준다면 (수사는)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 지난 10월 초 검찰이 DJ 정권 때 요직을 지낸 현역 의원 A 씨에 대한 비자금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중견 건설업체 B 사를 압수수색한 배경에 조 씨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끈다. 과연 조 씨가 그토록 오매불망 그리던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풍언 일산집 밀린 종부세 납부한 까닭
DJ 옛집이라 부담 느꼈나
<일요신문>은 지난 903호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5년부터 1999년까지 거주했던 일산 옛 자택이 고양세무서로부터 압류조치를 당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 1999년 7월 DJ로부터 6억 원에 이 자택을 사들인 조풍언 씨가 수년째 종합부동산세 629만 원가량을 체납했기 때문이었다. 검찰에서도 추징금 확보를 위해 이 집에 대해 가압류를 청구해 놓았던지라 대통령을 배출한 ‘역사적 명당’은 ‘이중 압류’를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난 9월 28일 그간 밀린 조 씨의 종합부동산세가 전액 납부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고양세무서 관계자는 “누가 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해당 주소에 체납세금은 없다”고 밝혔다. ‘조 씨가 DJ 옛 집에 생채기를 냈다’는 여론이 그를 움직였던 것일까.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