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 꽃송이의 열망 ‘가을아 멈추어다오’
▲ 담벼락과 지붕에 국화를 ‘심어’놓은 안현돋음볕마을(아래). | ||
고창읍을 지나 백양사 방면으로 5분쯤 길을 달리면 석정온천지구와 마주친다. 바로 국화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멀리서부터 보이는 화려한 꽃물결에 축제 장소임을 직감할 수 있다. 100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땅에 무려 300억 송이의 국화가 가득 채워져 있다. 엄청난 장관이다. 언덕이며 평지며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국화밭이다.
지난 10월 18일부터 시작된 축제는 이번 주말까지 계속되는데 처음엔 사실 개화가 늦어져서 말이 많았다. 축제 개막일에는 대부분 몽우리도 올라오지 않아 허탈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던 여행객들이 많았다. 국화는 11월로 넘어오면서 슬슬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중앙꽃밭이 먼저 만개한 국화로 찬란해졌고 그 주변의 국화들도 꽃을 하나둘 피워나갔다. 이번 주말이면 더 이상 늑장을 부리는 국화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축제장은 상설전시장과 공연장, 세계민속장터, 야외꽃밭 등으로 구성돼 있다. 상설전시장에서는 국무총리배 국화경진대회 출품작들이 전시되고 있다. 100여 점의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국화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수백 수천 송이로 만든 국화작품들이 공룡이 되어 행사장을 걸어 다니고 때론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다. 또 사랑의 징표인 커다란 하트가 되어 연인들의 앞날을 축복하기도 한다. 국화로 만든 이곳의 한반도에는 휴전선이 없다.
공연장에서는 동춘서커스, 품바공연 등이 연일 이어지고 세계민속장터에서는 각 나라 현지인들이 만든 이색적인 물품들이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 등지의 10여 나라의 민속장이 섰다. “원래는 3만 원인데 2만 원만 받겠다”며 어눌한 우리말로 손님들을 붙잡는 아프리카 아가씨는 제법 흥정에 이력이 붙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국화축제의 한 재미다.
▲ 단풍으로 물든 선운사(사진 위). 전시장에는 100여 점의 창의적인 국화작품이 눈길을 끈다. | ||
이번 주에는 국화밭에서 수확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바구니 가득 국화를 따서 압화도 만들고 차도 만들어 마시는 특별한 가을걷이 체험이다.
고창에는 또 하나의 ‘국화 명소’가 있다. 안현돋음볕마을이다. 이 마을은 1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 국화마을이다. 고창군 부안면 송현리 미당시문학관 맞은편에 자리한 이 마을은 벽과 지붕이 온통 국화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이 기발하고 엉뚱한 프로젝트는 지난해 시작됐다. ‘2006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된 후 집집마다 둘러친 1000m가 넘는 담벼락과 슬레이트지붕이 공공디자인연구소 송주철 소장의 지휘 아래 국화그림으로 단장됐다.
담벼락에 그려진 국화만큼이나 시선을 끄는 것은 동네 주민들의 초상화. ‘국화 옆에서’의 한 구절처럼 ‘내 누님같이 생긴 꽃’들이 실제로 그 ‘누님’들과 함께 피어 있다. 자연 속의 국화들도 담벼락 아래와 마당 귀퉁이에 피어 있는데 미안하게도 그림꽃들이 더 고와서 향기로운 국화에는 좀처럼 눈길이 가지 않는다.
마을에서 약 300m 앞에 자리한 미당시문학관은 선운분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것으로 2001년 개관했다. 미당만큼 우리 문학사에 논란이 많은 작가도 드물다. 작품의 우수성엔 모두 공감하지만 그의 친일과 군사정권 찬양 행적이 문제였다. 시라는 장르의 특성상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서 보기는 힘들다는 평가와 작가와 작품은 별개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어쨌든 문학관에는 미당의 부끄러운 친일 시편들과 그에 대한 자기고백의 글들이 전시돼 있다. 한편 문학관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는 미당 생가가 복원돼 있다. 초가집 두 채가 조붓한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여행 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 고창IC→15번 국가지원지방도→고창읍→석정온천지구(축제장)
★먹거리: 선운사 앞 인천강에서 자라는 풍천장어는 고창 최고의 먹거리. 선운사 입구에 풍천장어집이 즐비하다. ‘연기식당’(063-562-1537), ‘가마골가든’(063-561-3155) 등이 유명하다. 일반 장어구이 1인분 1만 5000원. 갯벌풍천장어구이 2만 5000원.
★잠자리: 선운사 관광단지에 ‘선운산관광호텔’(063-561-3377), ‘동백호텔’(063-562-1560) 등이 있고 고창읍내에는 ‘아리랑모텔’(063-561-5595)이 깔끔하다.
★문의: 고창군청(www.gochang.go.kr) 문화관광과 063-560-2234~5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