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네 품안에서 순백의 나를 만나다
이름은 낯설지만 삼봉산은 겨울산행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산이다. 사실 이 산은 인근 덕유산의 설경에 묻혀버린 감이 있다. 겨울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상고대(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를 보기 위해 덕유산으로 몰려든다. 상고대는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오르면 바로 닿는 설천봉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삼봉산은 덕유산 백암봉 북동쪽 15㎞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척추 격인 백두대간상에 위치한 삼봉산은 덕유산과 한 능선을 이루고 있다.
삼봉산은 높이가 1254m나 되지만 오르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보통 등산은 ‘빼재’에서 시작한다. 삼봉산은 전북 무주군 무풍면과 경남 거창군 고제면의 도계선상 있다. 하지만 주능선이 거창군 쪽에 치우쳐 있고 출발점으로 삼고자 하는 빼재도 행정구역상 거창에 속해 있다.
무주와 거창을 잇는 37번 국도상에 자리한 빼재는 그 고도가 무려 1000m 가까이 된다. 빼재는 다른 이름으로 ‘수령’이라고도 하고 또 ‘신풍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는 동물의 뼈가 많아 ‘뼈재’라고 했다는데 어감이 안 좋아 빼재로 바꿔 부르고 그 말을 한자어로 옮겨 ‘빼어난 고개’ 즉 ‘수령’(秀嶺)이라고 칭하고 있다. 신풍령은 추풍령을 본 따 ‘바람도 쉬어 가는 새로 생긴 고개’라는 뜻으로 갖다 붙였다.
▲ 삼봉산 뒤로 소사마을 다랭이논이 보인다(맨위), 눈꽃이 하얗게 핀 빼재. 고도가 무려 1000m 가까이 된다. 맨 아래 사진은 덕유산 상고대 못잖은 빼재 구간의 눈꽃. | ||
빼재에서부터 소사마을 하산지점까지 등산 거리는 9㎞ 정도 된다. 빼제~삼봉산 구간이 4㎞, 삼봉산~소사재 2.5㎞, 소사재~소사마을 하산 목표점까지가 2.5㎞ 거리다.
빼재에서 37번 국도를 따라 100m쯤 거창 방면으로 내려가다 보면 왼쪽 경사면에 안내판과 나뭇가지에 매어 놓은 리본이 등산로임을 알리고 있다. 정보를 미리 숙지하지 않는다면 빼재 입구를 찾지 못해 고생을 할 수 있다.
빼재 등산은 수월하다. 오르막이 계속되긴 하지만 그리 경사가 심하진 않다. 다만 오를수록 눈이 깊이 쌓여 발걸음을 더디게 할 뿐이다. 백두대간의 줄기는 서해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이 부딪히는 곳이기 때문에 눈이 자주 오고 또 많이 쌓인다. 빼재도 마찬가지다.
빼재에서 30분쯤 가면 수령봉(빼재봉)이 나온다. 특별한 정상 표지석이 없다. 그리 큰 볼거리도 없다. 다만 멀리 덕유산이 보이는데 그 풍광이 참 좋다. 다시 길을 나서 앞으로 나아가자 멀리 벼랑처럼 우뚝 솟은 삼봉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호절골재를 넘어 삼봉산까지 내친김에 한달음으로 나아간다. 호절골재는 금봉암으로 내려가는 고개다. ‘원점회귀’ 산행으로 금봉암 아래 용초마을에서 삼봉산 등산을 하기도 하는데 이때 호절골재를 이용하게 된다.
삼봉산 정상에는 거창산악회에서 세운 정상비가 하나 서 있다. 정상은 그러나 조망도 썩 좋지 않고 넓은 편도 아니어서 다소 실망스럽다. 그러나 삼봉산의 백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곳에서 북릉을 지나 다시 소사재로 이어지는 길이 아주 멋스럽다.
정상을 지나자 밋밋하던 길은 갖가지 바위와 봉우리들을 보여주며 눈을 즐겁게 한다. 500m쯤 길을 걸어가면 1250봉이라 부르는 봉우리가 서 있다. 북릉 암부의 시작이다. 정상보다 높이가 4m 낮지만 오히려 이곳이 삼봉산의 정상다워 보인다. 1250봉 뒤로 소사재와 너른 품의 대덕산이 보인다.
길은 1250봉 좌측으로 우회하도록 나 있지만 욕심에 봉우리에 올라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주먹마디처럼 툭 튀어나온 바위를 올라서니 그야말로 최고의 진경이 펼쳐진다. 오른쪽으로는 아예 절벽이다. 절벽 아래로 소사마을이 보인다. 봉우리 주변은 눈꽃이 환상이다. 덕유산 눈꽃에 비할 만큼 아름다운 눈꽃과 나뭇잎이나 나무껍질에 달라붙은 서릿발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1250봉에서부터 북릉을 거쳐 소사재까지 이어지는 길은 내내 흥이 난다. 특히 이 길은 참나무와 소나무 등이 어우러져 있는데 눈꽃이 특히 화려하다. 눈꽃이 활짝 핀 숲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길을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소사재에서 대덕산으로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오른쪽 소사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겨울산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하산길은 매우 급한 경사다. 약 60~70도 되는 길이다. 반드시 아이젠을 착용하고 스틱을 잘 활용해야 한다. 마을에 도착할 때쯤 전나무숲길이 나타난다. 이파리 하나 남아 있지 않은 모습이지만 하얀 눈밭과 어우러져 볼만한 풍경을 선사한다.
여행 안내
★길잡이: 대전-통영 간 고속국도 무주IC→무주 방면 30번 국도→설천교에서 우회전 37번 국도→빼재
★먹거리: 빼재나 소사마을 쪽에는 음식점이 거의 없다. 빼재에서 무주 쪽으로 넘어가다보면 무풍면에 이르러 음식점들이 여럿 보이는데 그중 ‘구천동 송어마을’(063-322-0816)이 유명하다. 송어회와 쏘가리매운탕을 잘 하는 집이다. 주인이 직접 양식을 해서 내놓는데 깔끔하고 밑반찬도 푸짐하다. 송어회(1㎏) 2만 5000원, 쏘가리매운탕(4인) 4만 8000원.
★잠자리: 무풍면에 숙박시설이 많다. ‘시골길펜션’(017-405-3523), ‘문리버’(063-322-7009), ‘소망민박’(063-322-1661).
★문의: 거창군 문화관광포털(http://tour.gcgn.go. kr) 055-940-3000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