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기름 전략물자로 묶여 장마당 물가 폭등” “북·중 회담 직후 ‘사업성과 내라’ 김정은 지시 주목”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압록강 철교. 철교 위로 북한에서 나온 화물차량들이 이동하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일요신문’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다롄(大连)을 거쳐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단둥(丹東)으로 향했다. 3월 30일 오전 북-중을 잇는 압록강 철교를 찾았다. 이 철교의 물동량은 곧 북-중 무역 상황, 더 나아가 두 나라 관계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기에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북한에서 들어오는 화물차량은 몇 시간 동안 수십 대가 지나갔을 뿐이었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이 다리로 하루 평균 최소한 수백 대가 오갔다고 한다. 현재 단둥과 신의주의 사정에 대해선 다음 연재에 더 자세히 후술하겠지만, 북-중 정상회담 직후 상황이 급변한 것은 아니었다.
우선 접경지대와 인근 도시에서 주재 혹은 북-중을 오가면서 활동 중인 북한 관리들과 만나 현재 구체적인 북한 안팎의 상황과 북-중 관계에 대한 전망을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일요신문은 그곳에서 북한 무역기관 소속의 고위급 관리자 A 씨, 안보기관 소속의 고위급 관리자 B 씨, 그리고 또 다른 무역기관 소속으로 북-중을 오가는 하급 관리자 C 씨 등과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은 취재원 신변 보호 차원에서 공개하지 않는다.
중국 단둥에서 바라본 북한 신의주 시내 풍경. 물놀이장 뒤 건설 사업이 한창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공통적으로 이들은 북-중 정상회담 전 올 초부터 현재까지 북한 내부 경제적 상황이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지난 연말부터 해상과 육로를 가리지 않고 ‘전략물자’를 중심으로 거래를 대대적으로 막아온 중국의 압박에 북한 내부가 직격탄을 맞았다는 것이다.
특히 ‘쌀’을 비롯한 기본적인 식량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확인된다. 춘궁기 동안 안정적인 ‘쌀 공급’이 필수지만, 중국이 전략물자로 이를 묶어 가로막는 바람에 농촌 동원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B 씨는 “지금 쌀이 약 35만 톤 정도 부족한 상황이다. 4월 말부터 5월 사이에 꼭 필요한 물량”이라며 “시장 가격도 급등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B 씨는 취재진에 오히려 “혹시 한-중 사이에 ‘선’이 있으면 쌀을 구해줄 수 있느냐”고 진지하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할 정도였다.
김정은 위원장 ‘만세’ 문구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 앞을 화물차가 이동하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무역기관 소속의 A 씨 역시 “쌀 확보에 대한 상부의 지시가 있었지만, 어려운 상황”이라며 “돈이 있어도 확보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신의주와 단둥을 오가며 일하는 무역기관 하급관리 C 씨는 보다 자세한 북한 내 시장 상황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 북한 장마당 모든 물건의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전략물자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빗자루’ 가격까지 따라 오르고 있다”고 한다.
기름 역시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한다. C 씨에 따르면, 신의주 장마당 기준으로 한때 휘발유 1kg(약 1.4L에 해당)이 중국 돈으로 14원(한국 돈 2360원)까지 치솟았으며, 지금은 그나마 10.5원대(한국 돈 1770원)를 유지하고 있단다. 현재 압록강 넘어 중국 현지에서 1kg당 약 6원(한국 돈 1010원)에 거래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비싼 가격인 셈이다.
이 때문에 전기 공급 역시 여의치 않다고 한다. C 씨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10월부터 전기난이 악화되고 있다”라며 “신의주 기준으로 이전에는 잘 주면 저녁에 두 시간, 새벽에 한 시간 정도 전기가 공급됐지만, 요즘은 30분 정도만 공급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돈 있는 사람들은 디젤 발전기를 쓴다지만, 요즘 이것도 원유(중유를 항간에서 말함) 가격이 급등하는 바람에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한의 군용 전략물자 구축 역시 비상이 걸린 형국이다. B 씨는 “북한에선 고무 생산이 영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 기름 다음으로 중요한 게 고무”라며 “특히 탱크에 입히는 특수용 타이어 공급이 부족해서 제대로 훈련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북한 주민들이 타고 있는 어선. 압록강에서 조업이 한창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이러한 사정 탓에 중국에 주재하거나 북-중을 오가는 북한 주재원들의 고통도 심각한 수준이다. A 씨는 “요즘 간부들 정말 일하기 힘들다”라며 “위에선 계속 하라고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 않나”라며 “이 때문에 여기(해외) 간부들도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급 관리에 해당하는 C 씨 역시 “3년이면 3년, 그래도 중국 갔다 오는 일을 하면 살림살이가 좀 나았다”라며 “그런데 요즘 정말 무역하는 사람들 답답하다. 진짜 답답하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처럼 올 초부터 꽉 막힌 북-중 해상 및 육로 무역 길 탓에 북한은 여러모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극비 방중은 이들에게 강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김정은의 이번 방중은 워낙 급작스레 이뤄졌다. 소속기관의 고위급에 해당하는 A 씨와 B 씨도 김정은의 방중 사실을 불과 며칠 전에서야 중앙으로부터 통보받았다고 한다.
B 씨는 “보통 김정은 위원장이 움직이면 ‘첩보’라도 나오기 마련인데 이번엔 그런 낌새조차 없었다”라며 “갑자기 움직여서 우리도 적잖게 당황했다. 아무래도 두 정상 간 직통 라인이 가동된 게 아닌가 싶다”고 조심스레 추측했다. A 씨 역시 “여기 나온 일반 간부들은 전혀 몰랐다. 나조차 직전에서야 통보받았다”라고 귀띔했다.
이들에 따르면, 접경지역 안보기관 간부들은 중국 공안과의 협조 구축을 위해 불과 며칠 전에 지시를 받았으며 높은 패널로 가려진 철도와 공안 인력 도열로 단둥 일대가 장관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북한 신의주 시내에서 조업을 끝내고 이동하는 노동자들 모습.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A 씨는 특히 앞서 북한 식량 등 물자 사정과 연결 지어 “‘패싱’에 대한 우려 탓에 중국도 급했지만, 결국 김정은 위원장이 움직였다는 것은 양측 간 거래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졌을 것”이라며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례를 비춰본다면 외화를 제외하고 최소 1억 달러 수준의 현물, 특히 기름과 식량 지원에 대한 합의가 당연히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취재진이 귀국하기 직전에 다시 한 차례 더 만난 A 씨는 “김정은 위원장이 4월 1일 중국 주재 고위급 간부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가지고 맡은 바 사업에서 성과를 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사항은 4월 2일 하부 관리들에게 하달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는 곧 북-중 간 합의가 있었음을 추측케 한다. 그동안 묶였던 식량과 기름을 비롯해 어느 정도 전략물자 거래가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다.
중국 다롄·단둥=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창간특집] 북-중 접경지대를 가다2’ 이어짐
그들이 본 ‘북한 핵 폐기’ 가능성은? “그럴 일 없습네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북-중 정상회담 이후 회담 결과와 관련해 ‘단계적 핵 폐기’를 언급했다. 그동안 완전 검증 가능한 ‘선 핵 폐기’를 줄곧 주장해 온 미국의 입장과는 상당한 온도차를 드러낸 셈이다. 실제 ‘완전한 핵 폐기’ 가능성에 대해 중국에 주재 중인 관리들 대부분은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심지어 이들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 단정했다. 안보기관 소속의 B 씨는 오히려 “핵 폐기? 그것을 당신은 믿나”라고 반문하며 “이미 중국은 속도조절에 들어갔다. 중국도 극단적인 속도의 핵 폐기에 대해선 당연히 부담스러워 할 것이고, 이러한 입장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달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급 관리에 해당하는 C 씨는 북한 물밑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핵 폐기에 대해 “말도 안 된다. 도대체 뭔 소리인가”라고 피식 웃으며 “북한 내부 인민들은 (김정은) 원수님이 남측과 협의했다는 내용만 알지, 비핵화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 그런 것은 아예 싹 빼고 보도했다”라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C 씨는 “설령 비핵화에 대한 소문이 난다면, ‘전략전술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고 하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는 5월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이 실제로 성사되기까지 험로가 예상되는 부분이다. [한] |
휘발유 가격 폭등에 때아닌 ‘태양광’ 인기 앞서 북한 내부 관리자들이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한의 고질적인 전기난이 지난 연말부터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제법 살림살이를 갖춘 가정들은 디젤 발전기를 갖춰 전기를 생산해 쓰고 있었지만, 시장의 휘발유 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는 것이 요지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태양광 발전기’가 북한 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목돈으로 한 번 태양광 패널을 마련하면, 꾸준하게 소규모 전력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무역기관 소속 하급관리 C 씨는 요즘 전력난을 언급하며 “그나마 요즘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12볼트짜리 태양광 빛 판(패널)에 의존하는 집들이 좀 있다”라며 “그것 있으면 조그만 TV는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C 씨가 언급한 12볼트짜리 소규모 태양광 패널은 중국의 몇몇 업자들이 아예 북한 시장을 겨냥해 저가 모델로 제작한 기종들이라 한다. 이 기종들은 일반적인 태양광 발전 패널보다 전기 생산량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고작 작은 TV 하나와 전등 하나 정도를 작동시키는 수준이지만, 북한에선 이것마저도 아쉬운 실정이라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요즘 기현상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과거 높은 값에 잘 팔리던 대형TV들의 값은 갈수록 떨어지고, 태양광 패널로 구동이 가능한 소형TV가 오히려 값이 오르고 있다고 한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