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와 공동 연구개발도 나서…신약개발 실패 부지기수 투자는 신중하게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 바이오기업과 산업이 과거와는 다르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연구성과나 실체가 없는 바이오기업도 적지 않았으나 지금 주식시장에서 관심을 끄는 기업들은 대부분 일정 부분 연구성과를 거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약개발이라는 것이 워낙 어렵고 불투명한 일이라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동반한다. ‘일요신문’은 창간 26주년 기획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바이오산업과 기업에 대해 알아봤다.
인천시 연수구(송도)에 위치한 셀트리온 본사. 이종현 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바이오산업이 주목받으면서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바이오주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투자 전문가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제약·바이오주가 주식시장을 견인했다고 평가할 정도다. 실제로 코스피와 코스닥 시가총액(시총) 상위권에는 바이오기업들이 여럿 포진하고 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수년 전 한미약품의 기술 수출이 바이오시장을 뜨겁게 달구다 재작년 계약 파기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며 “최근 바이오 시장은 지난해 신라젠을 필두로 한 열풍이 이어져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닥 대장주에서 지난 2월 9일 코스피로 둥지를 옮긴 셀트리온은 단숨에 코스피 시총 3위에 올라섰다.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을 연구개발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또한 지난 6일 기준 현대차를 제치고 시총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코스닥에서도 지난 6일 기준 시총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무려 8개가 바이오 기업이다. 1위 셀트리온헬스케어에 이어 신라젠(2위), 메디톡스(3위), 바이로메드(4위), 에이치엘비(6위), 셀트리온제약(8위), 코오롱티슈진(9위), 휴젤(10위)이 그 뒤를 따른다. 제넥신(14위), 코미팜(16위), 네이처셀(20위) 등도 시총 상위 자리에 있다. 이들 중에는 소규모 기업도 적지 않다. 그만큼 바이오주의 주가 상승이 폭발적이었다는 증거다.
바이오기업에 대한 기대와 주가가 강세를 보이는 데는 정부 지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인 ‘기술특례상장제도’다. 기술특례상장제도란 당장 수익성은 낮지만 기술력이 우수해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상장심사 기준을 완화해주는 제도다. 2005년 12월 바이오 의약품 개발 전문기업인 바이로메드가 이 제도를 통해 최초 상장한 이후 현재까지 49개 기업이 상장했다. 신약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탓에 장기적 목표를 두고 연구개발을 해야 하고, 임상시험 단계에서 손실액이 클 수밖에 없어 기술특례 제도를 통해 상장하는 바이오기업이 많다. 대형 제약사를 제외하고 주식시장에 상장된 소규모 바이오기업들의 실적이 대부분 적자인 것은 이런 부분 때문이다.
코스닥 시가총액 순위. 사진=다음 화면 캡처
바이오기업이 앞 다퉈 상장하는 이유는 바이오 기업에 대한 뜨거운 투자 열기도 한몫을 한다. 벤처캐피탈협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의료업종 신규 벤처투자 금액은 2014년 2928억 원에서 2015년 3170억 원, 2016년 4686억 원으로 해마다 증가했으며 2017년 3788억 원으로 소폭 하락했으나 올해 초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바이오기업 입장에서는 상장만 하면 연구개발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벤처캐피탈협회 관계자는 “업종별로 비교해 봤을 때 바이오산업은 지난해에도 두 번째로 투자비율이 높았다“며 ”바이오산업과 ICT산업은 4차 산업혁명 관련 유망사업으로 꼽히는 만큼 추후에도 투자가 증가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바이오산업과 기업의 투자 매력이 높은 까닭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 의지와 지원 확대도 큰 이유 중 하나다. 제약·바이오산업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고부가가치 창출 미래형 신산업)에 선정됐다. 정부는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에 헬스케어특위를 설치했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3500억 원의 예산을 바이오 분야에 투자할 계획을 밝혔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글로벌제약사와 공동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 역시 과거와 다른,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받는다. 국내 제약사들도 적극적인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통해 바이오벤처기업에 과감히 투자하고 있고 공동 연구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 면역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는 바이오기업 제넥신에 300억 원을 투자한 유한양행, 줄기세포 관련 연구개발을 하는 안트로젠의 지분 20%를 보유한 부광약품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바이오협회와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국내 제약사가 보유하고 있는 임상시험 진행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 수는 908개로 확인됐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중 임상시험 전 과정에서 파이프라인을 하나 이상 보유 중인 기업 수는 170개다. 다시 말해 현재 증시를 뜨겁게 달구는 대표 바이오 기업 대부분 파이프라인이라는 실체가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기존 의약품을 복제해 실패 가능성이 낮은 바이오시밀러와 달리 신약 개발은 여러 과정을 길게 거치면서 중도에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신약 개발은 신약 후보물질 발굴부터 전임상, 임상 1·2·3상, 정부 판매승인 등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최종 시판될 확률이 높지 않다. 미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06~2015년 10년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임상을 수행했거나 진행 중인 자료 조사 결과, 모든 의약품 후보물질에 대해 임상 1상부터 신약 승인까지 성공률은 평균 9.6%로 나타났다. 각 단계별로 살펴보면 임상 1상 통과 가능성은 63.2%, 임상 2상은 30.7%, 임상 3상은 58.1%, 신약 승인 단계인 NDA/BLA 통과 가능성은 85.3%다.
미국바이오협회는 임상 1단계에서 높은 성공률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1단계 실패 사례를 대중에 미공개 또는 지연보고 함에 따라 더 높게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임상 2상 단계 성공률이 현저히 낮은 이유에 대해서는 “환자를 대상으로 처음으로 약물로서 가능성에 대해 진행되는 단계이기 때문”이라며 “이 단계는 후보 신약 개발에 많은 비용이 드는 임상 3상으로 계속 진행해야 할지, 여러 사유로 연구를 종료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단계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국내 환경에서는 신약 개발을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신약 개발에는 최소 10년가량의 기간과 조 단위의 R&D 비용이 투입되는데, 이를 감당할 만한 규모의 기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중간 단계에서 기술을 수출하고 파이프라인 확보에 주력하는 기업이 다수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국내 자본이나 기술만 갖고 완제까지 끝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 국내 바이오기업은 대부분 기술이전, 라이선스 아웃(기술 수출) 등의 방법을 진행한다”며 “파이프라인 중 효과가 검증된 것을 다국적 제약사에 판매하고, 이를 다시 투자해 파이프라인을 여러 개 확보하고 임상을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투자 전문가들은 바이오기업의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 한편, 투자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하태기 골든브릿지투자증권 연구원은 바이오기업의 강세에 대해 “현재 제약 바이오산업은 시대적 흐름에서 높은 성장시대를 맞고 있다“며 ”노령화를 기반으로 매출과 이익이 증가하고 있으며, R&D 투자가 증가하고 기술 수준이 발전하면서 한국 제약 바이오기업의 신약 파이프라인 가치가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관측했다. 그렇지만 “임상이 진행 중인 신약 파이프라인에 대한 가치는 평가자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고, 그 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적정한 주가 컨센서스가 형성되기 어렵다“며 “투자자가 이 모두를 알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 대형 제약사 관계자는 “신약 개발의 경우 임상시험 단계에서 무산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개발 과정이 오랜 기간 지속되기 때문에 기대감에만 의존해 단타를 노리고 투자하는 개인투자자가 많다. ‘상장만 되면 개미들이 돈을 끌어다 준다’는 생각을 하는 기업이 있을 정도”라며 “특히 바이오 벤처기업의 경우 기초체력이 약하지만, 투자자들이 이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바이오기업들 주력 파이프라인은? 셀트리온 10여 개 보유 지난 6일 현재 코스피 시가총액(시총) 3위인 국내 최대 바이오제약 기업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와 항체 신약 개발 사업을 한다. 셀트리온에 투자한 대표적 기업으로는 글로벌 투자은행인 JP모건과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 등이 있다. 셀트리온에서 현재 개발이 완료돼 상용화된 바이오시밀러는 램시마, 트룩시마, 허쥬마 총 3개다. 또 자체 개발 신약으로 10여 개의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개발 완료돼 상용화된 신약은 아직 없지만 다수 신약 개발을 진행 중”이라며 “현재 인플루엔자 신약후보 물질이 임상 2b상 단계에 있으며, 나머지는 비임상 단계”라고 전했다. 코스피 시총 5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통해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해 8월 일본의 다케다제약과 바이오신약 개발을 공동으로 진행하는 계약을 맺고 급성 췌장암 치료 후보물질 ‘TAK-671’의 공동 개발에 들어갔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위탁 생산하고,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바이오시밀러와 신약개발을 전담한다”며 “에피스는 아직까지 완제 신약을 보유하지는 않았으나 지난해 신약 개발에 나섰으며, 임상시험 과정 전 단계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항암제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하는 신라젠에는 투자자문업체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와 L&S벤처캐피탈 등이 투자했다. 부산시는 L&S벤처캐피탈을 통해 신라젠에 투자해 주가가 1년 사이 5배 폭등하는 ‘대박’을 쳤다. 신라젠은 아직 상용화된 제품은 없으나 항암바이러스 파이프라인 ‘펙사벡’을 활용한 9개의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4건이 임상 1b상을 준비 혹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1호로 널리 알려진 바이로메드의 경우 지난 2007년 녹십자 생명보험과 이연제약 등으로부터 60억 원의 투자를 받은 바 있다. 한화기술금융, 화이텍 기술투자, 교원나라 벤처투자 등도 2005년 32억 원을 바이로메드에 투자했다. 바이로메드 관계자는 “바이로메드의 경우 현재 기업보다는 개인 주주들의 투자 비중이 많은 편”이라며 “현재 2개의 치료후보물질에 대한 임상3상 시험이 미국에서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코오롱생명과학 자회사 티슈진은 지난달 16일 그룹 정체성 강화를 목적으로 ‘코오롱티슈진’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티슈진은 무릎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 ‘인보사’ 개발에 성공해 바이오업계 최대 유망 기업으로 떠올랐다. 최근 미국계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에 인수된 휴젤파마(휴젤)의 주력 신약 제품은 ‘보툴렉스’다. ‘보툴렉스’는 메디톡스의 ‘메드톡신’과 함께 국내 보톡스 시장 70%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차세대 단백질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벤처 기업 제넥신은 제약사 한독의 자회사다. 한독은 제넥신의 최대주주로 18.7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오는 5월 2500억 규모의 자금조달을 통해 신약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제넥신의 주력 제품인 면역항암제 ‘하이루킨’은 국내 임상 1상 단계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 |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 바이오주 거품 주의보 최근 줄기세포 연구기업인 네이처셀과 차바이오텍에 불어닥친 연이은 악재로 ‘바이오 거품론’이 재부상했다. 먼저 시장을 뒤흔든 것은 ‘네이처셀 쇼크’다. 네이처셀은 지난 3월 19일 개발 중이던 퇴행성 골관절염 줄기세포 치료제 ‘조인트스템’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건부 허가를 받지 못한 사실을 공시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네이처셀 주가는 곧바로 하한가로 치달았다. 이전까지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6만 원 위까지 고공행진하던 네이처셀 주가는 불과 일 주일 만에 2만 원대까지 폭락했다. 네이처셀 쇼크가 채 가시지도 않은 3일 후인 3월 22일에는 ‘차바이오텍 쇼크’가 터졌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결산 결과 별도 재무제표 기준 4년 연속 영업손실이 확정됐다며 차바이오텍을 관리종목으로 지정했다. 차바이오텍 주가는 당일 10% 하락했고 이튿날에는 하한가로 추락했다. 코스닥 상장법인은 4년 연속 영업손실을 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5년째 이익을 내지 못하면 상장폐지 실질검사 대상으로 분류된다. 4만 원이 넘던 차바이오텍 주가 역시 일 주일 만에 1만 9000원대로 반 토막 이상 났다. 코스닥 시총 2위 신라젠 주가도 현재 진행 중인 임상이 중단됐다는 루머가 돌면서 크게 흔들렸다. 코스닥 시장을 주도하던 이들 3개 바이오기업이 휘청거리자 전체 바이오주가 큰 충격을 받았다. 꿈을 좇던 개인 투자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투자전문가들은 “바이오주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또 그간 기업과 해당 기업이 보유한 파이프라인의 가치를 파악하지 못한 채 상승곡선만 보고 투자한 투자자들이 시장을 대하는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실제 투자자들이 바이오기업들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증권사들도 바이오기업에 대해서는 의견을 내기 힘들어 할 정도다. 최근 3개월간 1건의 투자의견도 제시되지 않은 26개 종목 가운데 절반이 넘는 15개 종목이 제약바이오다. 김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신약개발의 성공 가능성과 실적 영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제약바이오 주가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투자자 몫”이라며 거듭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