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등 ‘서울고 라인’이 면죄부 관여”
사정기관 관계자는 “특정 상고 출신 작전 세력이 차병원 상장 과정에 개입해 MB 측근과 돈을 나눠가졌다는 의혹이 있었다”고 말했다. 차병원 홈페이지 캡처.
차병원 핵심 계열사인 차바이오텍(옛 차바이오앤디오스텍)은 2008년 12월 코스닥 상장사이자 광학렌즈 제조사인 디오스텍과 합병을 통해 우회상장했다. 합병 직전인 2008년 10월 2000원이었던 차바이오텍 주가는 2009년 4월 2만 2000원대까지 수직 상승했다. 같은 해 6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안’을 이례적으로 대표 발의했다. 신생아 탯줄에서 나온 혈액인 제대혈은 차병원 줄기세포 연구의 주된 원료다. 관련법 시행과 함께 차병원은 안정적으로 제대혈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차병원 우회상장을 전후로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차바이오텍 주가 흐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자체 조사를 벌였다. 호재성 미공개정보를 활용해 부당 이득을 챙긴 것으로 의심되는 ‘작전 세력’을 포착한 것이다. 당시 상폐 위기에 놓인 디오스텍은 2008년 6월 튜브투자자문전문회사1호(튜브 1호)가 인수하면서 280만 주의 신주를 발행했고, 두 달 후인 8월부터 디오스텍 주가는 급등했다. 한국거래소는 삼성증권 특정 계좌에서 차바이오텍에 대한 대량 매수주문이 잇따른 것을 확인하고 투자주의 공시를 냈다. 투자주의 공시로 주춤하던 디오스텍 주가는 같은 해 11월 또 다시 급등했고, 같은 달 차바이오텍은 디오스텍과 합병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디오스텍 2대 주주는 법원에 튜브 1호의 신주 발행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했으나 기각됐다.
대량의 신주를 발행한 튜브 1호는 차바이오텍에 경영권과 주식을 넘기면서 수백억 원의 차익을 거뒀다. 튜브 1호가 주당 2305원에 인수한 차바이오텍 주식 78만 3151주는 매입가의 6배인 주당 1만 4045원에 팔렸다. 튜브 1호의 잔여 주식 355만 5244주도 시장에 차례로 풀렸다. 튜브 1호 신주 발행에 공모한 투자자도 차바이오텍 주가가 1만 원대로 급등하면서 3~4배의 차익을 거뒀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특정 상고 출신 작전 세력이 상장 과정에 개입해 MB 측근과 돈을 나눠 가졌다는 의혹이 있었다”고 말했다.
비정상적 주가 흐름은 차바이오텍 계열사인 CMG제약(옛 스카이뉴팜) 인수 과정에서도 반복된다. 양피원단 제조업체인 피엠케이는 2008년 2월 셀라트팜코리아를 합병하고 스카이뉴팜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스카이뉴팜은 이후 2011년 태양광 발전업체인 콘센트릭스솔라코리아란 회사 지분 20%를 확보하는 등 성장을 도모했지만 오히려 경영난에 빠지면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한국거래소는 2011년 6월 특정 계좌의 스카이뉴팜 주식 집중 매수와 시세 변동을 확인했다. 시장에선 차바이오텍의 스카이뉴팜 인수 소식이 퍼졌지만 당사자들은 이를 부인했다. 한국거래소는 2012년 4월 큰 폭의 주가 등락을 반복하는 스카이뉴팜을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지정하고, 같은 해 10월 상장폐지 실질 심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같은 달 루비콘 1호 조합은 스카이뉴팜 신주인수권부사채(BW) 760만 1713주를 인수한다. 토러스벤처캐피탈과 새벽 1호 조합 등도 스카이뉴팜의 BW를 898~934원에 대량 인수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 달 차바이오텍은 스카이뉴팜 인수 소식을 발표했다. 이후 스카이뉴팜 주가는 2013년 5월 기준 2000원대까지 상승했다.
차움의원 입구에 프리미엄 건강검진을 소개하는 게시물. 박정훈 기자
차병원을 둘러싼 이 같은 의혹에도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은 정식 수사로 전환하지 않았다. 검찰 일각에선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이른바 ‘서울고 라인’이 차병원에 면죄부를 내리는 데 관여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명박 후보 대선 캠프 출신으로 2010~2012년 차병원 부회장을 지낸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원 전 원장과 같은 서울고 동문이다.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수석전문위원으로 CMG제약 시세조종 의혹 당시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지낸 최수현 전 금감원장도 서울고 출신이다.
복수의 금융권 관계자는 “최 전 원장이 한나라당 쪽과 가까웠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당시 차병원 비리를 알고 있던 A 검사가 어느 날 차병원(차움)에서 부인과 함께 ‘종합 케어’를 받았다고 자랑하기에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국정원 쪽에서 검찰의 사건 진행을 막았다는 의혹이 있었다”고 말했다. A 검사는 현재 퇴직 상태다.
2011년 차병원은 창업주인 고(故) 차경섭 차병원 명예이사장의 아들 차광렬 차병원 회장과 딸 차광은 전 차의과학대 대외부총장 간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에 차병원 비리와 관련한 투서가 전달됐다는 것이 전직 차병원 임원과 법조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투서에 대한 세부 ‘기억’은 다르다. 전직 임원은 “2011년께 누나(차광은) 쪽에서 참여정부 인사를 내세워 병원을 제외한 부수사업을 가져가려 했는데 검찰 내사 결과 별다른 혐의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임원이 말한 참여정부 인사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그러나 법조계 관계자는 “당시 ‘수사를 위에서 눌렀다’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때라 참여정부 실세(변 전 실장)와 가까운 ‘누나’ 쪽에 유리한 수사를 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당시 여당이었던 심재철 의원, 친박인 정하균 의원 등은 국회 공식석상에서 차병원과 관련한 규제를 풀어줄 것을 정부 부처에 당부했다. 또 이명박 정부는 줄기세포 관련 연구를 ‘녹색성장 동력’으로 분류하고, R&D 예산을 1000억 원까지 증액하는 육성책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2년 경찰은 차병원 계열사인 CMG제약에 대한 불법 리베이트 수사를 벌였지만 별다른 결과를 내지 못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