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점에 대한 인식엔 여야 없어…노 전 대통령은 정치자금법 개혁 전도사
국회의원 ‘배지’를 가장 많이 날리는 정치자금법 개정 논의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계속됐다.
“정치자금은 더 투명해져야 합니다. 아울러 제도는 합리적으로 보완되어야 합니다. 현행 정치자금 제도로는 누구도 합법적으로 정치를 하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당 대표나 후보 경선을 위한 선거자금 제도, 그리고 지방자치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를 위한 정치자금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부실한 제도를 만들어 놓고는 투명한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뜻있는 젊은이들이 친구나 친지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떳떳하게 정치에 입문하고 출발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의정연설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의 관심은 계속됐다. 2003년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은 노 전 대통령이 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문재인 민정수석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현실에 맞지 않는 조항 때문에 위반자를 양산하는 정치자금법의 악순환이 그칠 수 있도록 차제에 정치자금법 등 관련 법·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과 적극적인 드라이브와 함께 당시 야당이었던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해 정치자금법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오 전 시장이 통과시켜 ‘오세훈 법’이라 불리는 개정된 정치자금법은 선거공영제, 지구당 폐지, 법인 및 단체 기부금 불가 등을 골자로 한다.
2011년 오찬간담회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최고 업적을 정치자금법 개정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정치자금법, 선거법 개정으로 깨끗한 선거풍토를 만들었다. 오래전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말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에도 지금도 오세훈 법은 정치인들의 ‘공공의 적’이다.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시 국민과 괴리가 너무나도 컸던 정치를 깨끗하게 만들었다는 업적이 분명히 있지만 이제는 모순이 너무 커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훈 법의 가장 큰 맹점은 앞서 노 전 대통령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개정됐기 때문이다. 오세훈 법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히는 지구당 폐지에도 노 전 대통령은 반대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지구당은 정치권과 시민을 이어주며 일상의 공간에 정치를 깃들게 한다. 지구당을 폐지하기보다는 운영을 혁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또한 오세훈 법이 통과되고 3년이 지난 2007년 ‘제헌절에 즈음하여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은 관련 법률 개정을 촉구한다. 이 글에서 노 전 대통령은 “현행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 헌법적 정치제도들이 국민의 정치활동의 자유와 참여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며 관련 법률의 개혁을 촉구했다.
하지만 오세훈 법 통과 이후 정치자금법 문제는 지지부진하다. 일단 ‘후원금 제도’를 손질하려는 시도만 나오면 여론의 뭇매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뭇매 역시 여야 가리지 않는다.
2010년 현 문재인 정부 민정비서관인 백원우 전 의원도 의원 발의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냈다가 여론의 폭격을 맞고 좌초된 바 있다. 백 전 의원의 법안은 ‘법인·단체 기부 허용, 공무원·교사의 후원 허용, 후원자 정보공개 확대, 중앙당 후원회 허용’ 등을 골자로 했다.
반면 정치자금법 개정이 지속적으로 좌초되는 까닭을 민주당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대체로 국회의원만을 위한 법이 많았다”며 “국회의원만이 아닌 정치권 전체에 도움될 만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나왔다면 국민적 공감을 더 얻지 않았을까 싶다”고 귀띔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