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입당에 시샘반 원망반
▲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0일 마포구 창전동 국민참여당 당사에서 입당 기자회견을 가졌다. | ||
‘1만4188명.’ 지난 11월 20일까지 국참당에 등록된 당원 수다. 눈에 띄는 점은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유 전 장관이 당에 들어온 11월 10일 이후에 입당 신청서를 냈다는 것이다. 국참당 측은 이를 “유 전 장관 지지자들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유시민 효과’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국참당은 ‘정당별 홈페이지 방문자 수’에서도 유 전 장관 입당을 전후로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을 제치고 줄곧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 전 장관의 ‘후광’은 여론조사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11월 18일 발표한 ARS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4.1%가 ‘유시민 전 장관 등 친노 세력’을 야권에서 가장 호감 가는 정치세력이라고 답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 세력’은 18.4%로 2위를 기록했고, ‘정동영 전 장관 등 비주류’와 ‘정세균 현 대표 등 주류’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대해 국참당 측은 “유 전 장관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참여정부가 추진한 정책을 가장 잘 계승할 것이란 기대가 반영된 수치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국참당은 유 전 장관 입당으로 어려운 자금 사정(<일요신문> 913호 참고)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권태홍 국참당 기획단장은 “(유 전 장관 입당 이후) 당원 수가 늘면서 기본적으로 당비가 늘었다. 또한 특별회비도 계속해 들어오고 있어 다소 나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국참당에 따르면 11월 한 달만 따질 경우 처음으로 지출액보다 수입액이 앞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그동안의 적자 누적으로 창당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도 자연스레 수그러들었다고 국참당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처럼 유 전 장관 가세로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국참당이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일부 당원들은 ‘유시민 입당 거부 서명’ 운동을 준비 중이라는 말도 들린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친노 인사는 “학습 효과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유 전 장관이 지난 2002년 대선 직전 개혁국민정당(개혁당) 창당을 주도했다가 1년여 만에 해산시키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던 사실을 당원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은 “100년 갈 정당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로 2002년 11월 노무현 지지정당인 개혁당을 만들었지만 이듬해 11월 해체를 결정했고, 결국 개혁당은 열린우리당에 흡수·통합됐다. 당시 개혁당 ‘사수파’들은 유 전 장관을 강하게 비난했고 그 과정에서 법적 공방이 오가는 등 갈등을 빚기도 했다.
앞서의 친노 인사는 “당시 사수파들은 유 전 장관이 개혁당 간판으로는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해 열린우리당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중 일부는 유 전 장관 낙선 운동을 펼치기도 했을 만큼 원망이 깊은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유 전 장관의 국참당 입당에 우려를 나타내는 당원들 중 상당수가 과거 개혁당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인사들인 것으로 알려진 점도 ‘학습 효과’ 주장에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사실 개혁당과 국참당은 비슷한 부분이 적지 않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며 당원 중심의 새로운 정당을 추구한다는 점 등이다. 유 전 장관 역시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혁당과 국참당이 공통분모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다.
국참당 창당 작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한 당원은 “국참당에 참여한 당원들은 보스 중심의 기존 정당 틀을 깨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유 전 장관 입당으로 사실상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고, 뜻하지 않게 주류와 비주류가 생길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과거 개혁당 시절에도 소수 지도부에 의해 당의 존폐와 같은 중요한 문제가 결정되자 실망을 느끼고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원도 “유 전 장관이 들어오면서 인지도는 높아지긴 한 것 같은데 ‘판’이 깨질 것 같아 걱정된다”면서 “서민 당원들 돈으로 창당한 뒤, 기득권 세력과 연합하려는 개혁당 전철을 밟을 경우 이번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 일각에서는 유 전 장관이 친노 그룹의 ‘파견인’ 역할로 국참당에 뛰어들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잔류’와 ‘국참당 입당’으로 나뉜 친노 인사들이 상황이 무르익으면 어느 한 쪽으로 힘을 실어줘 2012년 대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장기 플랜’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국참당의 성공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 친노 그룹에서 유 전 장관이 대표로 온 것 같다. 향후 판도에 따라 민주당 혹은 국참당으로 모일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가 그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 역시 “이해찬 한명숙 등 핵심 친노 인사들은 신당 합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일단 민주당 안에서 유 전 장관의 국참당과 보조를 맞추며 추이를 지켜볼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유시민 전 장관이나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는 모두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잠재적인 라이벌인 셈이다. 끝까지 ‘같은 듯 다른’ 배를 타고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와 다른 입장을 피력했다.
‘유시민 반대파’들이 개혁당 사례와 함께 거론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무임승차론’이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창당 준비 작업엔 전혀 관여하지 않다가 불과 창당을 두 달여 앞둔 시점에 입당 원서를 낸 것을 놓고 ‘숟가락만 올리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국참당의 한 관계자는 “10월 재·보궐 선거가 끝나고 들어온 것에 대한 비난도 높다. 만약 양산에서 친노 세력이 선전하지 않았더라면 유 전 장관이 입당했을지 의문이다. 극적인 효과를 높이는 데 성공했을지라도 진정성을 심어주기엔 너무나 ‘기회주의적’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참당 측에서는 유 전 장관을 놓고 불거지고 있는 이러한 잡음들을 ‘흠집내기용’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국참당에 참여하고 있는 한 친노 인사는 “국내 정치 현실을 외면한 일부 당원들의 ‘억지’일 뿐이다. 개혁당 해체 역시 왜곡된 사실이 많다”면서 “지금 상황에서 유시민만 한 인물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권태홍 기획단장 역시 “특정 인물 중심의 정당이 될 것이란 우려가 있는 것은 맞다. 유 전 장관 역시 입당 전에 이 부분에 대해 고민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이러한 논란들을 당이 더 잘 되기 위한 건설적 비판 정도로 봐 달라”고 주문했다. 유 전 장관을 포함한 당원 모두가 결코 ‘국민 참여 정치’라는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당내에서 ‘유시민 논란’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는 듯한 양상이다. 그동안 창당이라는 ‘목표’ 아래 단결된 모습을 보였던 당원들 일부가 이 문제로 감정싸움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유 전 장관이 국참당에서 활동하는 동안 향후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는 불협화음의 뇌관인 셈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국참당이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번에 그냥 넘어가더라도 향후 당직자 선정이나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이 문제가 또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참당이 내건 정치실험은 ‘유시민’이란 인물이 당에서 어떤 포지션을 취하느냐에 따라 그 성공여부가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참당 중앙당 창당 종이당원 모집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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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전 장관 입당으로 당원 수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반색하고 있는 국참당에게도 말 못할 고민은 있다. 당원들 중 대부분이 ‘온라인’을 통해 가입했다는 점 때문이다. 90% 이상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양승태)에 따르면 중앙당을 창당하기 위해서는 시·도당 5곳을 창당해야 하는데, 시·도별로 1000장의 ‘본인 서명이 있는 종이 입당원서’를 제출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국참당은 아직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창당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는 것이다. 국참당이 종이 입당원서 확보에 ‘비상’이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온라인 회원 중 상당수가 이를 꺼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한 당원은 “국참당에 참여한 대부분이 전문 정치인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다. 생활 속에서 참여하는 정도다. 나만 해도 종이 입당원서를 쓰면서까지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인터넷상에서 (당원으로서)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온라인 당원들의 이 같은 인식 때문에 국참당은 이병완 창당준비 위원장을 필두로 당원들에게 팩스나 우편으로 입당원서를 보내줄 것을 권유하는 등 적극 홍보에 나선 상태다. 국참당으로선 정말 ‘참여’가 절실한 셈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