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기사 피해글 올리자 과거 도장 선배 사과문 게재…또다른 대형 도장서 성폭력 사건도
한국기원은 11일 국가대표와 연구생, 소소회(젊은 남녀프로기사들의 모임) 회원들을 대상으로 성희롱예방교육을 실시했다.
[일요신문] 미투 폭로가 사회 각계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바둑계에서도 ‘나도 당했다’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최근 (재)한국기원 내 프로기사 게시판에는 한 여자 프로기사가 자신도 과거 성적 피해를 당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여자기사는 “동료 선후배 기사분들 모두 안녕하신가요? 저는 요즘 안녕하지 않습니다”라고 운을 뗀 후 과거 자신이 중학생 시절부터 막 프로가 된 18세까지 다니던 바둑도장에서 겪은 피해 사례들을 담담히 써내려갔다.
이 글에서 그는 “최근 여자기사회 자체 조사 과정에서 과거 자신들이 당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면서 과거 프로가 된 도장 선배가 나이 어린 여자 연구생은 물론 자신에게도 성추행을 시도했었음을 고백했다.
그는 “당시 그 선배의 강제성과 힘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해 잊히지 않는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다니던 바둑도장 여자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되기도 했고, 다른 도장에선 직접 몰카를 찍다 발각되는 일도 있었다”며 바둑계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를 폭로했다.
이에 가해자로 지목된 남자 프로기사가 즉각 사과문을 올렸으나 글에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다수의 여자 기사들은 “가해자의 사과글이 안희정 지사의 그것처럼 피해자도 연애감정이 있는 줄 알았다는 등 가해자의 일반적 레토릭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며 분개하고 있어 논란은 사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바둑계 한 관계자는 “여자 기사들의 바둑계 성폭력 문제 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동안 여자 기사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문제해결을 호소해 왔으나, 유창혁 사무총장을 비롯한 한국기원 집행부는 이를 해결하기보다 덮는 데 급급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무총장 자신이 최근 성차별 발언으로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곤욕을 치렀음에도 이런 문제가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 바둑계 내 성문제는 성희롱을 넘어 성폭행 차원의 일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철저한 진상규명과 엄정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 바둑에 대한 국민적 이미지가 급속히 추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요신문 취재에 의하면 이 여자기사의 폭로 외에도 다른 대형 바둑도장에선 훨씬 심각한 성폭력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바둑계 미투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