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 사람 목숨보다 중하냐” 부글부글
일본 스모계의 성차별 관행이 전세계적인 비난거리가 되고 있다. 사진은 쓰러진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급히 도효에 뛰어든 여성 관객. 황당하게도 이 여성은 수차례에 걸쳐 “내려가 달라”는 장내방송을 들어야 했다.
“여성은 씨름판 ‘도효’에서 내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남성이 올라가 주세요.” 지난 4일, 교토부 마이즈루시의 한 스모 경기장에서는 다급한 장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날은 연례행사인 스모 춘계대회가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도효 위에서 인사말을 하던 다타미 료조 시장(67)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모두들 놀라 웅성거리던 때, 한 여성 관객이 급히 도효 위로 뛰어 올라 응급조치를 했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여성은 도효에서 내려가 달라”는 안내방송이 수차례 반복됐다.
이후 구급대에 의해 다타미 시장이 후송되면서 상황이 종료되자, 이번에는 스모협회 측이 경기장 여기저기에 대량의 소금을 뿌렸다. 스모에서는 부정한 기운을 씻어낼 때 정화의 목적으로 소금을 뿌리는 전통이 있다.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은 SNS를 통해 일본은 물론,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 퍼져나갔다. 인명보다 관례를 우선시하는 스모협회의 조치에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생명을 구하는 일에도 여성은 도효 출입금지’라는 제목을 달고 “일본 전통 스포츠인 스모가 차별적인 관습으로 세간의 눈총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7년판 ‘세계 성별 격차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은 144개국 중 114위를 차지했다. 이를 근거로 ‘뉴욕타임스’는 “마이즈루시의 스모 경기장 사건은 일본에서 여성의 위치가 어떤가를 잘 보여준다”며 통렬하게 비판했다.
또한 ‘워싱턴포스트’는 “일본 스모협회가 ‘도효에서 여성은 내려와 달라’고 요구한 것은 스모가 일본의 토착신앙 의식에서 비롯됐으며, 여성을 부정(不浄)하게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매체는 “아베 총리가 위미노믹스(Womenomics)을 내걸며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호소하고 있지만, 모든 면에서 일본 여성들은 차별과 장애물에 직면해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BBC방송도 “스모협회를 향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네티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소개했다. 특히 스모협회가 여성이 내려간 후 대량의 소금을 뿌린 일과 관련해 “이것이 생명을 구하려고 한 사람에 대한 대응인가. 소금은 스모협회에 뿌려야 한다”는 어느 트위터 유저의 일침에 주목했다.
비난이 들끓자 결국 일본 스모협회는 사과문을 발표해야만 했다. 핫카쿠 스모협회 이사장은 “순간적으로 응급조치해준 여성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관객석에서 ‘여성이 올라가도 괜찮나?’라는 웅성거림을 듣고 젊은 심판이 놀라 ‘여성은 내려가라’는 방송을 했다. 어떤 경위라도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인명과 관계된 상황에서 협회의 장내 방송은 부적절한 대처였다”며 사과했다. 아울러 “병원으로 옮겨진 다타미 시장은 다행히 의식을 회복했으며, 생명에도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씨름판에 대량의 소금을 뿌린 일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오구루마 스모협회 사업부장은 “여성이 도효에 올라간 걸 정화하기 위해 소금을 뿌리고 여성을 경시했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뿌린 것은 아니다”며 강하게 부정했다. “스모는 경기장뿐만 아니라 연습장에서도 누군가가 다치거나 피를 보는 사고가 있을 땐 액땜을 하기 위해 소금을 뿌린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석간후지’는 “스모협회에게 있어서 이번 사건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거나 마찬가지다”고 분석했다. 전부터 ‘여성은 도효에 오를 수 없다’는 스모계의 금기가 ‘구시대적인 관습’이라는 비판이 많았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2000년 일본 최초의 여성광역단체장이었던 오타 후사에 오사카부 지사가 스모대회 우승자에게 상패를 전달하려고 했지만, 스모협회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성차별이라는 논란이 거셌다고 한다.
스모는 신 앞에서 힘을 바치는 의식에서 비롯됐다. 종교 의례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무기를 지니지 않고, 몸에 띠만 두른 채 힘을 겨룬다. 특기할 만한 점은 스모선수는 물론 심판, 경기진행 보조 등 스모계 종사자들이 모두 남성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주간겐다이’는 “도효는 예로부터 성역으로 여겨졌으며, 피를 멀리하는 관습이 있어 여성이 도효에 올라서는 행위가 금기시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원래부터 스모가 여성을 배제하던 스포츠는 아니었다. 2008년 홋카이도교육대학이 펴낸 간행물에 따르면, 일본 역사서에서 ‘스모’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일본서기’로 유라쿠 일왕(469년) 때다. 당시 기록에는 궁녀들이 스모를 했던 모습이 담겨 있으며, 무로마치 시대에도 비구니들이 스모를 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에도시대부터 여성은 스모를 관람하지 못하게 됐고, 1872년 즈음 다시 여성도 스모 경기를 관전할 수 있게 됐다.
변화를 맞은 건 서구화정책을 추진한 메이지시대가 계기였다. 스모가 야만적인 풍속이라며 배척을 받게 되자, 스모업계는 1909년 상설관을 설치하고 이름을 ‘국기관’이라고 명명했다. 법률적으로 일본정부가 스모를 국기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스모업계는 국기로서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다. “그 결과 ‘스모=국기’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갔다”고 간행물은 지적했다. 말하자면 ‘스모계의 마케팅 승리’인 셈이다.
특히 메이지시대 말기, 국기로 자리 잡은 스모는 단순 구경거리에서 ‘특별한 스포츠’라는 권위를 스스로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일본 토속신앙인 신도와 불교를 도입하게 됐으며, 전통과 역사에 기초한 정당한 문화 계승자임을 강조해나갔다. 연구자들은 “이 흐름 속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신도의 ‘부정’ 개념을 이용해 스모 안에서도 ‘금녀(禁女)의 공간’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스모가 완전히 ‘여성금지’를 한 것은 고작 100~200년 전이다. 근래의 역사를 전통이라 우기며 불합리한 처사를 하는 스모협회를 이해할 수 없다”며 비난했다. 다만, 스모 팬들 가운데는 “100년의 전통도 충분하다. 경시하는 것도 문제다” “구조 활동 중인 여성에게 내려오라고 한 것이 잘못이지, 도효에 여성금지라는 전통을 없애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의견도 찾아볼 수 있었다.
현재까지 스모협회는 여성금지라는 전통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물론,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