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성 문서 조작 놓고 ‘손타쿠’ 논란…아베 내각 총사퇴 가능성도
한동안 잠잠했던 사학 스캔들이 재점화되면서 일본 곳곳에서는 ‘아베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3월 15일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벌어진 시위 모습. EPA/연합뉴스
사학 스캔들의 중심에 서 있는 모리토모학원은 ‘보수적 애국주의 교육’ 방침으로 유명한 곳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단체 ‘일본회의’ 임원인 가고이케 야스노리가 이사장을 맡았는데, 그는 아베 총리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졌다.
논란의 출발점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모리토모학원은 초등학교를 건설하려고 재무성으로부터 땅을 매입했다. 문제는 국유지를 감정가보다 무려 80억 원가량이나 싸게 사들였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매각 금액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2017년 도요나카시의 의원이 정보공개를 요구하며 제소한 끝에 이러한 사실이 밝혀졌다.
더욱이 “아베 총리 부인인 아키에 여사가 이 학교의 명예교장에 올라 있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국유지 헐값 매각에 ‘총리 부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자 아키에 여사는 명예교장직을 사퇴했고, 아베 총리 역시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나와 아내가 관련됐다면 총리직까지 사퇴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렇듯 아베 총리는 강경하게 부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일본 국민들은 “더욱 구체적인 해명이 필요하다”는 반응이었다. 여론이 나빠지면서 아베 총리 지지율은 급격히 추락했다. 하지만 곧 전세가 뒤집혔다. 일등공신은 북한이다. 때마침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면서 아베 총리가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며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이른바 ‘북풍몰이’로 비리의혹 물타기에 성공한 셈이다.
이후 아베 총리는 ‘중의원 해산’ 카드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2017년 10월 22일 총선에서 압승했다. 이대로 가면 “아베 총리가 오는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도 3연임을 달성해 2021년까지 장기 집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야말로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그런데 상황이 급반전했다. 판을 뒤흔든 것은 ‘아사히신문’이다. ‘아사히신문’은 3월 2일자에 “재무성이 모리토모학원과의 계약 문서를 변조해 국회에 제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조사 결과, 총 14개 문서에서 아키에 여사와 전직 각료들의 이름을 지운 것으로 드러났다.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당시 국유지 매각의 실무자였던 공무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책임자였던 국세청장은 사임했다.
이번에도 아베 총리는 사학 스캔들 관련성을 재차 부정했다. 문서 조작과 관련해 “재무성 내에 그런 결재문서가 있다는 것도 몰랐기 때문에 지시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행정 전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고, 행정의 수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사학 스캔들 관련 재무성의 문서 조작이 드러나면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급락했고 3연임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사진은 3월 19일 참의원에 출석해 눈을 질끈 감은 아베 총리. AP/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의 1인 독주체제가 장기화되면서 나타난 폐해”라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관료들이 총리의 눈치를 보느라 ‘손타쿠(忖度·스스로 알아서 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함)’가 이뤄진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아사히신문’은 “아베 총리가 2012년 말부터 정권을 잡은 뒤 관료사회에 손타쿠가 퍼졌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니혼TV가 지난 3월 16~1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30.3%에 그쳤다. 2월보다 무려 13.7%포인트 급락한 수치다. 비슷한 시기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도 각각 13%포인트, 12%포인트나 떨어졌다. 이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집권 이후 ‘최대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띄는 점은 “결재문서 조작 책임이 아베 총리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많다는 점이다. 또 응답자의 60%는 “아키에 여사의 의회 증인 출석요구가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이번 스캔들을 재무성의 문제가 아닌, 아베 총리 부부의 비리 의혹으로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꼬리 자르기만으로는 일본 국민이 수긍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집권 자민당 내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주간아사히’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3연임을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의원이 거의 없다. 최근 자민당원 조사에서도 아베 지지율은 9%까지 하락했다. 이에 총리관저 관계자는 “스가 관방장관, 이마이 총리비서관 등이 머리를 짜내고 있지만 실은 자포자기 상태에 가깝다. 아베 총리의 기가 많이 죽어 있다”고 전했다.
일본 언론들 사이에서는 “아베 정권의 2인자 아소 재무상이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아소 재무상이 사퇴하면 아베 정권이 단숨에 와해될 가능성도 있어 총리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아소는 자민당 내 제2파벌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아베 총리가 오는 9월 총재선거에서 3연임을 하려면 그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유명 저널리스트인 다하라 소히치로는 “아베 총리가 지지율을 반등시킬 카드가 없어 앞으로 지지율은 계속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만일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이 ‘아베 내각을 지키는 것보다 자민당을 지키겠다’고 선택하면 아베를 포함한 내각 총사퇴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총재선거가 앞당겨 치러질 수 있다.
올해는 3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총재선거의 해다. ‘총재 야망’이 있는 의원에게는 ‘아베 1강’을 무너뜨릴 천재일우의 기회인 셈이다. 자민당의 한 간부는 “물밑에서는 이미 총재선거를 위한 각 파벌의 공작이 시작됐다. 착착 아베 포위망을 갖춰가고 있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자민당의 차기 총재 후보로는 누가 있을까. 경제지 ‘프레지던트’는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 노다 세이코 총무상, 고노 다로 외무상 등을 거론했다. 여기서 자민당 총재에 오르는 자가 차기 일본 총리가 된다.
한편 ‘주간아사히’는 “궁지에 몰린 아베 총리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고 보도했다. 최근 스포츠센터에서 아베 총리를 만났다는 재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10명 정도 경호원을 거느리고 나타난 총리가 옆에서 잠깐 러닝머신을 타는가 싶더니 곧 사라졌다. 하지만 ‘총리 동정(動静)’에는 ‘4시간 헬스장 체류’라고 보고돼 있더라. 짬을 내 치료라도 받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주간아사히’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궤양성 대장염을 지병으로 갖고 있어, 오래전부터 게이오대학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게이오병원 관계자는 “종양센터 교수들이 총리의 주치의다. 가끔은 스포츠센터가 있는 호텔에 호출돼 링거 같은 간단한 치료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총리의 얼굴이 꽤 부어 있는데, 상당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