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님, 왜 목포를 그에게 주셨나요’
▲ 20년 만의 화해 지난 11월 26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주재로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화합 만찬의 자리가 있었다. 연합뉴스 | ||
11월 26일 저녁 서울 63빌딩의 한 중식당에서는 한국 현대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군사정권 시절엔 피를 나눈 정치적 동지로, 민주화 이후엔 불구대천의 정치적 맞수로 경쟁했던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김영삼 전 대통령(YS) 주재하에 ‘화해의 장’을 마련했던 것. 김대중 전 대통령(DJ) 서거 당시 ‘주군’을 잃은 동교동계를 위로하고 싶다는 YS의 결단이 연출한 장면이었다. 참석자만 90여 명으로 양 계파의 간판들은 모두 모였다. 이날 두 시간여의 만찬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상도동과 동교동이 만나 이렇게 흐뭇한 적은 없었을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화합을 이뤘다”고 만면에 웃음을 머금었다.
그러나 ‘2% 부족’했다. 특히 동교동의 인적구성이 그랬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DJ 차남인 김홍업 전 의원도 자리에 있었지만 박 의원의 빈자리를 메우지는 못했다. 이날 만남을 ‘떠난 사람’(DJ)과 ‘남은 사람’(YS)의 진정한 화해로 해석하기가 여전히 찜찜했던 것도 박 의원 부재 때문이었다.
사실 그의 불참은 진작부터 예정돼 있었다. 박 의원은 앞서 11월 10일 동교동계의 DJ 고향방문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동교동계 일부에서는 “앞으로 ‘동교동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행사에서 박 의원의 모습을 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들려오던 참이었다. ‘박지원 왕따설’의 시작이었다.
같은 시각, 전남대 법학대학원 대강당에서 특강 중이던 박 의원은 동교동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동교동계 이름으로 정치활동을 하지 말라고 했고 저는 그 뜻을 따르고 있습니다. 퇴임하셨을 때도 동교동계가 민주당과 대통령 당선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이제는 개인적으로 정치를 잘해서 국민 지지를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YS에 대해서도 “(DJ와) 화해를 했다면서도 모 주간지와 인터뷰에는 ‘DJ는 독재자다. 1년 반 동안 내 뒤를 캐고 청문회에 날 나오게 하려고 했다’며 험담을 하는 걸 보면 역시 YS답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동교동계도 발끈했다.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는 일주일 뒤인 11월 17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동교동이란 이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따르는 국민과 언론이 붙인 것으로 누가 쓰라 말라 할 권리가 없다”고 맞받았다. 한 전 대표는 또 열흘 뒤인 27일에도 “‘동교동계가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는 것과 동교동이 없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며 박 의원의 지적을 일축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동교동계와 박 의원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DJ 입원 당시엔 박 의원이 동교동 가신그룹을 제쳐두고 일방적인 일처리를 했다는 이유로, 또 서거 이후엔 ‘공인되지 않은’ DJ 유언을 공개했다는 점 때문에 충돌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11월 25일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된 DJ 서거 100일 추모 기도회에서 박 의원과 동교동계 인사들은 멀리 떨어져 앉아 눈길도 마주치지 않았다.
▲ 박지원 의원. | ||
그러다 보니 박 의원이 동교동계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 지역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달갑잖아 하는 분위기다. 양측 간 균열이 본격화된 것도 박 의원이 2008년 4월 목포 출마를 선언하면서부터라는 것이다. 또 다른 동교동계 인사는 “목포가 박 의원의 고향(전남 진도)도 아닌데 동교동계 사람들 중 누가 이를 선뜻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일부 동교동계 인사들 사이에선 김홍업 전 의원의 정치 재개 필요성과 함께 박 의원이 목포 지역구를 양보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박 의원 측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민주화 투쟁을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동교동계가 외면했던 ‘퇴임 후 DJ’를 끝까지 모셨고 이제는 홀로 남은 이희호 여사까지 챙기는 사람이 박 의원 말고 누가 있냐는 것이다. 박 의원과 가까운 한 인사는 “(박 의원이) 요즘도 매일 아침마다 동교동에 들러 이 여사께 문안인사를 여쭙고 출근하고 있더라”며 충성심과 부지런함에 혀를 내둘렀다.
문제가 되는 목포 출마 역시 박 의원 뜻이 아닌, DJ의 결정이었다는 전언이다. 박 의원이 최근 사석에서 “난 광주 출마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DJ가 목포에 나가라고 했다. 총선 직전 DJ를 모시고 목포에 갔더니 지역신문에 ‘박지원 당선시키려고 DJ가 직접 목포에 내려왔다’는 식으로 부정적 기사들이 많았다. DJ께 보고를 드렸더니 ‘박 실장은 이제 선거운동 따로 안 해도 되겠구먼’이라며 격려해주시더라”고 말했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이들 사이의 갈등은 향후 지방선거, 더 나아가서는 차기 당권투쟁을 둘러싼 국면에서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게 민주당 안팎의 지적이다. 서거 정국을 거치면서 ‘DJ 적자’로 자리를 굳힌 박 의원이 호남 맹주로 서기 위한 행보를 시작할 경우, 같은 호남을 기반으로 정치활동 재개를 꾀하려는 동교동계와 ‘지분 싸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박 의원이 정책위의장직을 수락함으로써 정세균 대표를 위시한 민주당 신주류 진영과 손을 잡은 것이나, 동교동계가 무소속 정동영 의원 등 비주류 진영과 연대할 것이란 관측이 도는 것도 당권 투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전쟁’이 조만간 가시화될 수 있음을 예고한다는 지적이다. DJ라는 한 우산 아래 있던 양측의 ‘마이웨이’는 이제 점점 먼 곳으로 향하고 있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