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때 덮은 재벌 자제 병역의혹 포착…영포빌딩선 MB 측에 돈 준 기업 메모도 발굴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영포빌딩 건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를 제외한 각 부처는 별도의 적폐청산 TF를 만들어 지난 정권 부조리 등을 파헤쳤다. 과거 정권에서 이뤄진 부적절한 조치를 바로잡고 개선책을 마련해 시스템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관가에선 보수 성향 정책을 뒤집고 여기에 가담한 공무원들을 처벌하기 위한 차원 아니냐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4월 10일 “(적폐청산은) 공직자 개개인을 처벌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고 강조한 것은 이러한 기류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한 친문 의원은 “최근 공직사회 불만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낙하산 인사와 맞물리면서 ‘적폐청산도 결국 자기 사람 심기 위한 것 아니냐’라는 말들도 계속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적폐청산 작업에 나선 결과 비리로 추정되는 정황들도 드러난 것으로 알려진다. 현 정권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바로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것들도 제법 있다. 공무원들의 정책적 판단과 같은 부분이 아니라 뇌물수수나 이권개입 등 사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한 전직 차관급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각 부처를 탈탈 털면 솔직히 안 걸리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 그러나 이마저도 정치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과거 정권에서 잘나갔던 인사들 위주로 조사를 할 것이란 얘기다. 어차피 그들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치권 또는 특정 기업과 엮여 있다는 것을 과거 정권에서 몰랐겠느냐. 알고도 모른 체한 게 부지기수다. 내가 일했던 부처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 역시 비슷한 상황이라고 들었다.”
현 정권의 적폐청산을 재계가 전전긍긍하며 바라봤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불똥이 언제든 재계로 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한 부처에서 적발된 인허가 비리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대기업이 박근혜 정권 시절 사업 허가를 받기 위해 부처 고위 공무원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로비를 벌였을 뿐 아니라 친박 실세들을 동원했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정부부처뿐 아니라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 사정기관들도 앞다퉈 지난 정권 적폐청산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도 많은 재계 인사들의 비리가 모였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재벌가 인사들의 병역 비리와 관련된 첩보다. 박근혜 정부 때 한 사정기관이 병역 브로커를 조사했는데, 3~4명의 재벌 자제들이 연루됐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수사는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다.
앞서의 사정당국 인사는 “확인해보니 혐의가 풀린 게 아니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중단됐다. 병역 브로커는 그 후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안다. 외압이 행사됐다면 그것 역시 적폐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 때의 병역 비리가 은폐됐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이어 그 인사는 “각 부처와 사정기관 등에서 올라온 것들 중 이런 부분들은 따로 추려내 향후 수사에 참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는 두 전직 대통령 수사에서도 재계를 겨눌 무기를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정권과 특정 대기업 간 유착 관계를 뒷받침할 자료들이 나온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수사했던 한 재벌 총수 비자금 내역도 그중 하나다. 이 대기업의 경우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수사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종결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비자금 조성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흔적이 포착됐다고 한다.
MB의 ‘스모킹건’을 무더기로 발견한 영포빌딩 지하실 압수수색에서도 대기업과 관련된 자료들이 나왔다. MB 정부 초반 핵심 친이 인사에게 자금을 건넨 기업 명단들이 메모 형식으로 정리돼 있었다. 여기엔 MB 정부와 가깝다고 알려진 곳 말고도 여러 대기업들 이름이 적혀있다. 이밖에 통신사업, 4대강 사업 등과 관련해 대기업에 특혜를 준 것으로 의심되는 내용들도 포함돼 있었다.
현 정권은 적폐청산에서 나온 자료들 중 심각한 사안에 대해선 정식 수사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대기업 건 역시 마찬가지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비리가 있었는데도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무마됐다면 이것 역시 적폐다. 재벌들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비리를 파헤치는 것은 물론 왜 수사가 중단됐는지도 들여다볼 것”이라고 했다. 사정당국 고위인사도 “이제 재계를 겨냥한 수사가 시작될 것이다. 어느 곳이 첫 타깃이 될지 모르지만 ‘실탄’은 넉넉한 상황이다. 그 밑바탕은 적폐청산에서 확보한 자료들”이라고 전했다.
정치권에선 문재인 정부가 지금의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재계를 향한 사정드라이브에 나설 것으로 전망한다. 문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의 한 친문 인사는 “이번 정권의 소명은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는 일이다. 그걸 하라고 문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아준 것이다. 이를 멈추면 지지율은 떨어진다. 임기 내내 멈추지 않을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는 시작에 불과하다. 재벌들에 대한 수사와 개혁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적폐청산”이라고 설명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