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엽서 한 장 쓰고 싶다
▲ 달빛이 내려앉으면 더욱 정겨운 구둔역. | ||
이용객의 감소도 한 이유지만 구둔역의 운명은 중앙선 복선화와 맞물려 있다. 중앙선을 수도권 전철화한다는 계획에 의해 구둔역은 곧 ‘무정차 간이역’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덕소에서부터 팔당을 거쳐 내년 말이면 용문까지 전철이 들어오고, 2010년 이후에는 원주까지 노선이 연장된다. 역마다 마을주민들의 발이 되던 기차는 전철에 점점 밀려날 것이 분명하다. 구둔역과 가까운 지평역, 석불역, 매곡역, 양동역도 결코 그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
1940년 4월 1일 문을 연 구둔역은 2년 전, 문화재청이 선정한 ‘등록문화재 제296호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건물 지붕은 마치 첨탑처럼 뾰족하다. 우리의 전통적인 건축양식과는 많이 다르다.
이곳은 역무원 6명이 3조 2교대로 근무하는 배치간이역이다. 이따금씩 역무원들이 철로의 안전을 점검하거나 찌뿌드드한 몸을 풀기 위해 나올 때 말고는 사람 그림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역사 외벽에는 역무원들이 이용하는 자전거 두 대가 기대어 서 있다. 워낙 사람이 다니지 않다보니 나그네라도 지날라치면 구둔역을 지키는 백구가 반갑다고 난리를 친다.
70년 가까이 된 건물답지 않게 역사는 무척 깔끔하다. 역사 내에는 긴 나무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철로 한편에는 노란색 보선차량이 정차돼 있다.
구둔역에서는 승차권을 판매하지 않는다. 1996년 이후로 승차권 ‘차내 취급역’으로 바뀌었다. 일단 탑승한 후에 승무원에게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역사는 고요하다. 기차가 궤도에서 멈춰도 마찬가지. 구둔역에서는 상·하행 하루 일곱 차례 기차가 선다. 청량리에서 구둔역으로 거쳐 안동, 강릉, 제천으로 가는 기차는 매일 8시 26분, 13시 19분, 20시 29분에 선다. 반대편은 6시 35분, 8시 9분, 12시 15분, 18시 14분에 도착한다. 기차는 매일 정해진 시각에 역사 플랫폼으로 들어오지만 내리고 타는 이가 극히 드물다.
주변 여섯 개 마을 300여 명이 이용한다는 이 기차역은 그나마 봄이 가장 활기가 넘치는 편이다. 산나물을 캐러 오고가는 사람들이 꽤 이용하기 때문이다. 가을쯤에도 이용객이 더러 있다. 구둔역 은행나무단풍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구둔역은 밤이 되면 더욱 고즈넉하고 아름다워진다. 멀리 시선이 닿는 끝까지 철로를 따라 듬성듬성 등불이 걸리고 역사에도 불이 켜진다. 역사 아래 마을교회에서는 저녁예배를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한번쯤 붓을 잡고픈 풍경이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