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리모컨에 실세들 ‘빅뱅’
▲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맨 왼쪽)과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올초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얘기하는 모습. 가운데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 합성. 연합뉴스 | ||
이렇듯 현직 대통령의 재산 문제 등과 같은 민감한 의혹들이 줄줄이 제기되자, 이번 사건이 국세청 내부 인사 다툼에서 권력 차원의 게이트로 증폭될 가능성이 커져 여권에도 초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이 대통령의 도덕성이 크게 훼손되면서 국정 주도력 상실에 이은 레임덕의 도화선이 되는 첫 번째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상률 게이트’에 얽힌 남겨진 의혹과 그 후폭풍을 진단해봤다.
‘한상률 게이트’를 바라보는 여권 관계자들은 “드디어 이명박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끊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 이명박 정권 창출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여권 인사들은 이번 사건이 지난해 초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잉태됐었다고 단언한다. 물론 이 사건의 표면적 동기는 국세청 고위공무원 간에 벌어진 인사 암투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유임을 위해 TK 실세들과 친분이 깊었던 안원구 국장을 ‘이용’해 로비를 성공시켰지만 그 뒤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였던 안 국장을 ‘팽’시켰고, 이에 배신감을 느낀 안 국장이 권력 상층부의 비리를 녹취록을 통해 폭로하는 등 반격에 나서며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본질은 ‘한상률’이라는 한 고위 공무원을 두고 벌였던 2년 전 여권 권력 투쟁의 후유증이 지금에야 곪아터진 것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당시 여권의 양대 세력이었던 이상득-정두언파는 치열한 내부 권력 투쟁을 전개한다. 4대 권력기관 가운데 하나였던 국세청장 자리도 당연히 그 전쟁터의 한복판에 있었다. 현재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한상률 게이트’는 바로 그 전쟁의 후유증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소장그룹에서는 한 전 청장의 유임을 극구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명박 정권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유임시키면 언젠가는 뒤통수를 치게 될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나타냈던 것. 이런 걱정 뒤에는 “(한 전 청장이) 두뇌회전이 너무 빠르고 가벼운 면이 있어 나중에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라는 일부 여권 관계자들의 인상비평도 한몫을 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이명박 정권의 참여정부 국세청 역할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대선 과정에서부터 현 여권 캠프에서는 ‘노무현 정권이 이명박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해 재산 관련 비밀 파일(MB파일)을 작성해 보관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대응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세청이 대선 후보의 비밀 파일을 만들어 놓고 장난을 친다는 의구심도 이때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인수위 일각에서는 한상률 전 청장 아래 만들어진 MB파일의 실체를 규명해야 다시는 대통령 선거가 마타도어(흑색선전)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라는 명분으로 파일 작성자의 발본색원에 들어갔다. 이는 최근 안원구 국장 측이 “지난해 초 (안 국장이) 서울 그랜드스위스 호텔에서 한 전 청장을 세 차례 만났는데, 그중 두 번째(2월) 만났을 때 한 전 청장이 ‘정두언 의원으로부터 엠비(MB) 관련 자료를 달라는 추궁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힌 대목에서 확인이 된다.
이 사건의 전후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 한 전 청장은 안원구 국장을 앞세워 박영준 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 이상득 의원 등에게 유임 로비를 벌였던 의혹을 받고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한 전 청장은 정 의원의 ‘질책성 자료 요구’에 낙마의 위협을 느끼고 그 사실을 자신이 기대고 있던 이 의원 측에게 ‘이 대통령 자료를 여럿이 알아서 좋을 게 뭐 있느냐’라는 식으로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이 의원은 정 의원을 불러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고 심하게 야단을 쳤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정 의원을 직접 불러 “왜 내 뒷조사를 하느냐”며 심하게 꾸짖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일이 있고 3일인가 지난 뒤 정 의원을 비롯한 소장개혁그룹은 인수위의 핵심 의사결정 구조에서 배제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한 전 청장의 유임 로비 후유증이 여권의 권력 구도를 이상득 의원 중심으로 재편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셈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때 여권 핵심부가 일부 실세들의 정실에 치우친 인사를 거부하고 원칙대로 국세청장을 새로 뽑았다면 지금과 같은 국기를 흔들 만한 대형 권력 비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여파가 박연차 게이트와 현직 대통령의 재산 실제 소유 여부로까지 확산될 만큼 대형 사건이 되었다는 점을 놓고 보면 당시의 인사 결정 하나가 얼마나 큰 후유증을 남기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 처리를 두고 청와대의 정무라인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원구 국장을 긴급 체포하면서 민정라인 일각에서는 “괜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조용히 해결하자”라는 신중론이 있었다고 한다. 홍보라인에서도 “안 국장을 구속하게 되면 사건이 정치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라는 보고서를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강공으로 밀고 나갔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여권의 한 전략 관계자는 “지금 청와대에 있는 참모들은 누구도 선뜻 나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예스맨들만 있다. 대선 캠프에서 활약했던 일명 선수들이 청와대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안 국장의 ‘미공개 X파일’이 아직 더 남아 있다는 점이다. 구속된 안 국장을 면회하며 폭로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은 “기존에 공개한 것은 안 국장의 파일 중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 여야 간에 더욱 뜨거운 진실게임이 펼쳐질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문답으로 풀어보는 남은 의혹
“도곡동 땅 주인 아는 사람 더 있다”
1. 청와대의 사퇴 압력설 진상은?
안원구 국장을 만나 ‘윗분’들의 뜻이라며 사퇴를 종용했던 임 아무개 지방국세청장의 말을 두고 그 윗분이 청와대 인사라는 의혹이 있다. 임 청장은 사퇴를 이끌어내기 위해 윗분을 들먹인 것이지 실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이 인사가 이상득 의원 라인의 청와대 A 씨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최고위층은 아니지만 여권 핵심부의 의견을 그대로 전달할 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는 해석이 많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A 씨는 향후 인사조치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2. 한상률 전 청장은 왜 안원구 국장을 ‘팽’시켰을까?
사실 이번 사건은 한상률 전 청장이 자신의 유임에 절대적으로 도움을 준 안 국장을 ‘이유도 없이’ 내치게 되면서 잉태됐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 전 청장이 이명박 정권에서 3년 유임을 하기 위해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인 안 국장을 유임 로비 성공 뒤 내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한 전 청장 입장에서는 안 국장이 정통 TK 출신에 행정 능력도 뛰어나고 이상득 의원의 아들 등과도 상당한 친분이 있다는 점을 볼 때 자신이 3년간 유임을 하기 위해서는 안 국장이라는 ‘위협 요소’를 제거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한 전 청장은 “나는 국세청장 임명 당시부터 3개월 정도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로비를 한다고 유임되는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3. 이명박 대통령 도곡동 땅 실제 소유 여부 밝혀지나?
안원구 국장은 ‘이명박 대통령 서울 도곡동 땅 소유’ 문건 실존 여부에 대해 “문서를 직접 봤지만 정치적 사안이어서 ‘보안조치’를 지시했다. 문서는 전표 형태로, 그 중간에 ‘도곡동 땅 소유자 이명박’이라고 써 있었다”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안 국장이 그 문서를 폐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당시 그 일을 담당했던 국세청 조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실체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대해 백용호 국세청장은 “그런 문서는 없는 것으로 보고받았다”라며 존재 사실을 공식 부인했다.
4. 안원구 폭로,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친다?
안원구 국장은 이번 사건에 대비하면서 치밀한 대응책을 마련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자신을 도우려고 만났던 지인들과의 대화까지도 모두 녹취하는 등 오랫동안 이번 사건을 준비한 것으로 확인된다. 자신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부인 홍혜경 씨까지도 구속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 회계 관련 자료 일체를 회계법인에 넘겨 투명하게 처리함으로써 회계와 관련하여 문제가 될 여지를 사전에 없앴다고 한다. 그리고 향후 현 정부 및 검찰과 긴 싸움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서 폭로와 관련된 중요자료들은 변호사 사무실 등에 분산 보관하는 등 치밀하게 대응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민주당은 안 국장에게 건네받은 녹취록 가운데 핵심 내용을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어 향후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상득 의원 등 여권 핵심 실세들에 대한 직격탄이 또 터져 나올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한상률 정권 실세 극비 세무조사
채찍질 시켜놓고 막아준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