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전 거취 결론” 관측도…정치권선 친문·비문, 내부선 서울대·비서울대 경합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황 회장은 직접 성화 봉송에 참여하며 구설에 올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로 정권 눈 밖에 난 상황에서 재신임받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평가도 나왔다. 경찰은 KT가 강릉올림픽파크에서 ‘5G 홍보관’ 개관식을 열던 당일 수사에 착수했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경찰이 자체 판단으로 KT를 수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황창규 퇴진’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시그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KT 안팎에선 황 회장의 거취와 관련해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KT 한 간부는 “직원들 피로도가 상당하다”며 “이쯤 되면 본인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해관 KT새노조 경영감시위원장도 “(황 회장이) 정말 회사를 생각한다면 후임을 위해 벌써 자리에서 물러났어야 한다”며 “(불법 후원 사건이) 조직 전체에 부담을 주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KT 내부에선 수사 진행 추이를 볼 때 오는 6월 지방선거 전에는 황 회장의 거취가 어떤 형태로든 결론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자연스레 KT 안팎의 시선은 차기 회장 후보군에 쏠린다. KT 사정에 밝은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KT 차기 회장으로 거론되는 인사는 알려진 것만 10명이 넘는다. 서로 다른 지지 기반을 가진 후보가 난립하면서 물밑 신경전도 치열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선 친문과 비문, KT 내에선 서울대와 비(非)서울대 출신 간 경합이 이뤄지고 있다. 이들 경쟁에서 아직 뚜렷하게 우위를 점한 후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관 위원장은 “김기식 금감원장 사례에서 보듯 고위직을 바라보는 국민 눈높이가 이전과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단순히 정권과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서 회장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때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 한국블록체인협회 회장은 2008년과 2013년에 이어 또 다시 차기 회장 하마평에 올랐다. ICT(정보통신기술) 부문 국내 최고 전문경영인으로 불리는 진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삼성그룹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스펙’을 갖고 있다.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KT 일각에선 진 회장의 ‘옹립’ 가능성이 점쳐진다. 2000년대 들어 KT 최고경영자를 지낸 이상철·이용경·남중수 전 사장 모두 경기고-서울대 출신이다. 출신 고교는 다르지만 이석채 전 회장, 황창규 현 회장도 서울대를 졸업했다. 참여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차관을 역임한 서울대 출신 관료그룹이 이 같은 이유로 진 회장과 함께 KT 차기 회장 후보군에 포함됐다.
그러나 현 정부와 껄끄러운 관계인 삼성 출신이 중용될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 나온다. 황 회장에 이어 또 다시 ‘삼성맨’을 선택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올 초 KT 차기 회장 후보로 참여정부 OB의 이름이 돌았는데 KT 안팎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며 “현재는 다른 대안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고리로 한 비(非)서울대, 청와대 직속 라인이 차기 회장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지난 2월 KT는 주주총회에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이강철 전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과 김대유 전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을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했는데 이 과정에 이른바 ‘변양균 라인’이 역할을 했고, 장기적으로 차기 회장은 옛 청와대 출신 몫이란 내용이다.
그러나 이 또한 변 전 실장을 정치적으로 견제하려는 세력의 음해일 수 있다는 반론이 나온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회장 하마평에 오른 인사는 100% ‘자가 발전’이거나 주위 반응을 떠보려고 하는 ‘정치권 찌라시’의 희생양으로 판단된다”며 “BH(청와대)가 아직까진 특정 후보를 밀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 KT사옥. 박정훈 기자.
KT 전·현직 임원들도 자천타천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된다. KT와 마찬가지로 ‘오너 없는 회사’인 포스코는 지난 보수 정부 10년간 내부 출신 회장을 경험했다. 반면 KT는 내부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지난 대선 기간 문재인 캠프와 직간접적 인연을 맺은 KT 전·현직 임원들은 대부분 차기 회장 하마평에 올라 있다.
오석근 전 KT 사업지원실장은 문재인캠프 출신으로 국회와 청와대, 민간기업, 사립대학을 모두 경험한 대외협력(CR) 부문 전문가다. 오 전 실장은 언론인 고(故) 리영희 선생의 사위이기도 하다. 김상영 전 KT 상무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ICT 전문가 1004명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공식 지지를 선언했다. 전인성 KT희망나눔재단 이사장은 1980년대 KT에 입사한 ‘내부 순혈’로 CR 총괄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 이사장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과 관련해 증인으로 법정에 서기도 했다.
황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구현모 KT 경영기획부문장도 차기 회장 후보로 언급된다. 또 다른 후보였던 임헌문 전 KT Mass 총괄사장은 최근 사임했다. KT 내부에선 그 어느 때보다 내부 출신 회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핵심 공약인 통신비 인하를 관철시키고, 조직 내 적폐를 해소하기 위해선 외부 출신이 적임자라는 시각도 있다. 경쟁사인 SK텔레콤 출신 가운데 친문 인사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전직 임원 A 씨 등이 조심스레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치권 일각에선 지난 보수 정부 기간 국회 관련 상임위(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한 전직 국회의원 B 씨도 후보로 오르내린다. 정권 교체 후 CEO 교체 시기를 놓친 까닭에 되레 여러 후보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꼴이다.
황 회장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후보자간 합종연횡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회장 공모에 참여할 후보자 윤곽이 드러나면 ‘내부 출신 대(對) 외부 출신’으로 논의가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3월 바뀐 정관에 따라 KT 차기 회장 선출 권한은 이사회에 넘어갔다. 현 정부가 “민간기업 회장 선출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이사회를 설득하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회장 자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몇몇 후보는 언론 등을 통해 이사회와 접촉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KT는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황 회장이 재판을 받아도 자진 사임은 없을 것이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쪼개기 후원금’ 파장 다음은 어디? 황창규 KT 회장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이른바 ‘쪼개기 후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는 가운데 다른 기업도 유사한 방식으로 정치인을 후원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 따르면 KT는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매해 이를 다시 현금화하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뒤 2014~2017년 4억 3000여만 원을 의원 90여 명에게 제공했다. 정치후원금이란 합법적인 제도를 이용했지만 법인 돈을 로비 자금으로 유용했다는 점에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임원 명의를 빌려 출처불명의 자금을 국회에 전달했다는 의혹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종의 ‘관행’이었다는 것. 특히 국회 대관업무가 잦은 기업들이 KT와 마찬가지로 임직원 명의를 빌려 정치후원금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법상 300만 원 이상 정치자금을 후원할 경우 명단이 공개되는 점을 악용해 200만~299만 원을 보내는 식으로 감시망을 빠져나갔다는 증언까지 나온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 사례에서 보듯 국회 상임위 관련 기업이 의원에게 ‘잘 보이기’ 위해 편의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몰래 후원금을 보낸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원장 낙마로 국회의원에 대한 민간기관의 편법 지원이 도마에 오른 가운데 청와대는 전수조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