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인지 니가 나인지 ‘숲과 하나’
▲ 솔밭의 새벽 풍경을 담는 사진가. | ||
보은군은 안개의 고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이다. 크고 작은 저수지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데다가 강물이 마치 모세혈관처럼 보은의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기 때문이다. 탄부면에 위치한 임한리는 삼가천변에 자리하고 있는 탓에 더욱 안개가 짙게 끼는 곳이다.
첫새벽에 임한리로 찾아가는 길은 안전운행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쏟아질 듯 수많은 별들을 안고 있는 청명한 하늘이 임한리에 가까워오면서 갑자기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안개로 뒤덮인다. 그 안개 속을 헤치며 천천히 나아가다보면 마을 어귀에 희미한 실루엣으로 눈에 잡히는 숲 하나가 나타난다. 250년 이상 된 노송 수백 그루가 모여 있는 임한리 솔밭이다.
솔밭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역시 새벽안개에 젖었을 때다. 묵직한 안개가 숲을 휘감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여백을 모두 채운다. 소나무 너머로 보였던 난삽했던 풍경들이 안개에 밀려 모두 지워지고 남는 것은 오로지 형극의 세월을 산 듯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는 소나무들뿐이다.
안개는 태양이 솟아오르면서 생명을 다한다. 솔밭의 풍경이 변하는 때다. 안개가 풀풀거리면서 흩어지고 나면 사방이 훤해지며 하늘이 열린다. 그리고 소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내린다.
솔밭 앞에는 철모르는 해바라기가 가득 피어 있다. 무려 6만㎡(약 1만 8000평)에 이르는 넓이다. 여름이 벌써 지난 줄도 모르고 이제야 꽃을 피우는 해바라기들도 있다. 솔밭 주변 도로에는 대추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가로수를 대신하는 대추나무다. 빨갛게 익은 대추들이 탐스럽다. 이번 주말(10일~12일) 솔밭에서 보은군 대추축제가 열린다.
임한리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마로면 원정리에서는 이번 주가 아니면 감상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안개와 벼가 연출해내는 자연의 수묵화다. 이 풍경은 단풍보다 더 짧고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마는 것이어서 지체할 틈이 없다.
원정리는 1리와 2리로 나뉘는데 찾아가고자 하는 곳은 1리에 있다. 2리에서 1리 방면으로 500m쯤 가면 왼쪽에 거대한 느티나무를 안은 평야가 나타난다. 바로 목적지인 이른바 ‘느티나무가 있는 황금 들판’. 느티나무는 논을 가로지르는 하얀색 시멘트길 오른쪽에 다소곳이 서 있다. 그야말로 서정적인 시골 풍경이다.
▲ 황금색 들녘과 느티나무가 서정적인 원정리(위). 솔밭 앞에 가득한 해바라기. 가을이 한창인데도 해바라기는 이제야 여름을 맞은 듯 생생하다. | ||
원정리의 이 그림 같은 풍경은 이번 주가 지나면 사라져버릴 가능성이 크다. 대체적으로 지난해까지 원정리의 벼 수확은 10월 중순경 시작됐기 때문이다.
원정리 느티나무와 작별하는 길에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성하마로영업소 너머 언덕 능선에 있는 삼층석탑도 찾아보자. 고려시대 것으로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18호로 지정된 석탑이다.
임한리와 원정리의 안개를 불러일으킨 삼가천은 내속리면 삼가저수지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다. 삼가저수지는 새벽이면 인근의 산골짜기를 다 덮을 만큼 짙은 물안개를 피워 올린다. 이 물안개는 저수지를 돌아 가장 깊은 골에 자리한 구병리에도 찾아든다.
구병리는 온갖 꽃으로 뒤덮인 마을. 속리산 천왕봉과 구병산에 둘러싸인 구병리는 오지에 가까운 산촌이다. 삼가저수지를 돌고 돌아 4㎞가량 들어가야 겨우 마을에 닿는다. 커다란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마을 입구를 지나면 산비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집들이 보이고 해바라기와 구절초, 코스모스 따위가 길가며 밭 한 귀퉁이에 심어져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메밀밭이 넓게 드리워져 있다. 산자락 휴경지 4만㎡에 메밀을 심은 것이다. 지금은 다소 시기가 지나긴 했지만 아직도 메밀꽃을 볼 수 있다. 새벽의 희부연 안개에 휩싸인 메밀꽃밭이 무척 인상적이다.
구병리를 찾은 김에 구병산행도 도전해보자. 구병산은 속리산과 더불어 보은을 대표하는 산이다. 주능선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뻗으면서 마치 병풍을 두른 듯 아홉 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다고 해서 구병산이라고 불리게 됐다. 높이는 876m로 그리 높지 않지만 바위산으로 등산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 구병리에서 능선안부를 거쳐 구병산 정상을 왕복하는 코스가 4시간 정도. 적암리 방면으로 내려가게 된다면 노랗게 익은 감나무 밭의 정겨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한편 보은에는 향토민속자료전시관과 오장환미술관 등 둘러볼 만한 전시관들이 몇 곳 있는데 그중 비림박물관을 추천하고 싶다. 수한면 동정리 옛 동정초등학교 자리에 개장한 박물관으로 ‘비림’이란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의 업적을 비석에 각인해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이곳 비림박물관에는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 등 국보급 글씨 300점이 비석에 각인되어 있다.
★길잡이: 경부고속국도 청원분기점→청원·상주 간 고속국도→속리산IC→25번 국도→임한리→마로면 방면→관기삼거리에서 우회전→505번 지방도→원정리
★잠자리: 메밀밭이 아름다운 구병아름마을(043-544-0708)에 문화관, 연화동, 대래동 등의 독립적인 객실을 갖춘 펜션이 있다.
★먹거리: 속리산면 사내리 법주사 앞 상가단지에 자리한 신토불이식당(043-543-0433)이 산약채정식으로 유명하다. 속리산에서 나는 다양한 약초와 나물을 이용해 한상을 내는데 그 향기에 먼저 취한다. 이 음식점 외에도 상가단지에선 반찬을 많이 내기로 유명한 경희식당(043-543-3736)과 버섯전골을 잘 하는 천지식당(043-543-4419) 등이 맛집으로 꼽힌다.
★문의: 보은군 문화관광포털(http://www.tourboeun.go.kr) 문화관광과 043-540-3391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