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경기장서 북한과 혈투 이어 아시아 예선 ‘죽음의 조’ 선전까지
‘대한민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의 미소’ 2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달성한 여자축구 대표팀. 사진=대한축구협회
[일요신문] 대한민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2회 연속 진출이란 쾌거를 달성했다. 대표팀은 지난 17일(한국시간) 필리핀을 상대로 5-0 대승을 거두며 2019 프랑스 여자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월드컵 본선이라는 결과를 얻기까지 대표팀은 1년여에 걸친 험난한 과정을 뚫어야 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 같았던 여자축구 대표팀의 지난 여정을 들여다봤다.
#서로 다른 남녀 아시아 축구 양상
남자 대표팀은 오는 6월 열리는 러시아 월드컵을 포함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이에 때론 월드컵 본선 진출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남녀 대표팀 모두 현재 아시아 내 피파랭킹 4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시아 남녀 축구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남자 대표팀은 이란, 호주, 일본에 이어 아시아 4위(전체 61위)를 기록 중이다. 아시아 축구가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정상급 수준에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 과정에서도 한국은 다소 좋지 못한 경기력을 보였으나 시리아, 우즈베키스탄 등 경쟁국들이 무너지며 본선에 올랐다. 이에 일부에선 ‘본선 진출 당했다’는 조롱이 나오기도 했다.
반면 여자축구의 상황은 다르다. 아시아지역은 전 대륙을 통틀어서도 밀리지 않는 전력의 강팀들이 즐비해 있다. 남자 축구의 아시아 강국들이 월드컵에서 큰 힘을 쓰지 못한 것과 대조된다. 상위권의 호주(피파랭킹 6위), 북한(10위), 일본(11위), 중국(17위) 모두 세계무대에서 자신들만의 족적을 남겼다. 일본은 지난 2011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중국은 최근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월드컵 역대 전적에서 패배보다 승리가 많은 아시아 유일의 국가다.
남자 축구와 달리 여자 축구에는 강호들이 아시아에 몰려 있어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자체가 도전인 셈이다. 한국 여자축구는 역대 단 2번의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예선 참가 국가가 남자에 비해 적어 규모 또한 작다보니 조편성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월드컵 본선 진출 결정지은 최종전에서 선제결승골을 넣은 장슬기. 사진=대한축구협회
이번 월드컵 예선은 아시안컵 대회를 겸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여자축구 대표팀에겐 아시안컵 본선 진출조차 쉽지 않았다. 대표팀은 예선부터 어려운 조편성으로 시험에 들어야 했다.
북한은 지난 대회에 참가하지 않아 불이익을 받았다. 조편성 과정에서 상위 포트로 분류되지 못했다. 한국은 그런 북한을 만났다. 북한의 불이익을 한국이 고스란히 함께 떠안게 된 셈이다. 대표팀은 이전까지 북한과 17번 만나 1승 2무 14패의 절대 열세였다. 한국은 북한을 비롯해 인도, 홍콩, 우즈벡과 함께 B조에 편성됐다.
대표팀의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아시안컵 예선 경기의 개최지는 북한 평양이었다. 한국은 가장 경계해야할 팀의 안방이자 가장 생소한 환경에서 경기를 갖게 됐다.
예상대로 북한과의 경기는 어려운 승부였다. 경기 초반 패널티킥을 허용했지만 골키퍼 김정미의 선방으로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전반 막판 선제 실점을 한 대표팀은 후반전 터진 장슬기의 동점골로 가까스로 무승부를 만들어냈다. 북한전 전후로 10-0, 6-0 등 대승을 이어간 대표팀은 북한에 다득점에서 앞서며 힘겹게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동아시안컵에서는 3패로 쓴맛을 보기도 했다. 아시아 정상급 국가인 일본, 북한, 중국과의 격차를 확인하며 다가올 아시안컵에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아시안컵 본선의 조편성 역시 대표팀을 돕지 않았다. 개최국 요르단이 1포트를 받으며 후순위로 밀린 한국은 호주, 일본, 베트남과 B조에 묶였다. 중국, 태국, 필리핀, 요르단이 속한 A조였다면 조 2위로 여유 있게 4강에 오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 대회는 5위까지 월드컵 본선 티켓이 배정돼 있었다.
대표팀은 열세로 평가 받던 호주전과 일본전에서 무실점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호주를 상대로는 몸을 사리지 않는 육탄 방어가 돋보였다. 일본에겐 초반 찬스를 살렸다면 이길 수도 있는 우세한 경기를 이끌어내 호평을 받았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베트남을 상대로 4-0 대승을 거뒀다. 호주, 일본, 한국이 각각 1승 2무 승점 5점으로 동률을 이뤘지만 다득점에서 밀리며 3위를 기록해 4강 진출에 실패했다. 결국 월드컵으로 가는 ‘외나무다리’인 5·6위 결정전을 치러야 했다.
대표팀은 A조 3위 필리핀을 상대로 5-0 기분 좋은 승리를 따내며 프랑스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주장 조소현이 멀티골을 기록했고 장슬기, 이민아, 임선주도 각각 골맛을 봤다. 사상 최초로 2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약 14개월 뒤면 여자 대표팀이 역대 3번째로 참가할 월드컵이 개막한다. 새로운 역사를 쓴 태극낭자들의 눈길은 벌써부터 프랑스를 향해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왜 우리가 3위야?” 아시아축구연맹(AFC)만의 독특한 순위 산정 대한민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은 이번 2018 요르단 여자 아시안컵에서 호주, 일본과 차례로 무실점 무승부를 거두면서 선전했다. 마지막 상대적 약체 베트남을 상대로 승리한다면 일본-호주 경기 결과에 따라 4강 진출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3팀이 승점이 같았던 2018 요르단 여자 아시안컵 B조 상황. 사진=AFC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동시간대 열린 경기에서 일본과 호주가 1-1 무승부를 거두며 한국 대표팀이 손 써볼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를 지켜보던 팬들은 혼란스러웠다. 3팀(호주-일본-한국)이 1승 2무 승점 5점으로 동률을 이룬 상황서 한국이 베트남을 상대로 5점 이상을 넣는다면 골득실 4를 기록한 일본에 앞설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이 같은 계산은 이번 대회에서 통하지 않는다. AFC만의 독특한 순위 결정 방식 때문이다. 다수 축구팬들이 익숙한 방식은 승점>골득실>다득점 순서의 순위 산정이다(다만 K리그는 골득실보다 다득점을 우선으로 한다.). 이에 따르면 이번 대회와 같은 상황서 한국이 베트남을 상대로 5골을 득점했다면 골득실에서 일본을 앞서 4강에 진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AFC는 이 상황에서 ‘승점이 같은 팀간의 경기만을 대상으로’ 골득실과 다득점을 따진다. 이에 한국은 호주, 일본과의 3자간 대결에서 득점이 없었던 반면 일본과 호주는 1골씩을 주고받았기에 한국을 앞섰다. 이에 프랑스 출신 라바 벤라르비 필리핀 감독은 “AFC는 조별예선 룰 변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한국은 호주, 일본전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며 “과거 FIFA도 이런 룰을 사용했지만 변경됐다”고 말했다. AFC는 클럽대항전인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이러한 규정을 적용시키고 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