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힙합에 빠져 개성 과시…“쇼트트랙 재미 널리 알리고 싶어”
서이라는 평창올림픽 직후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 불참했다. 박정훈 기자
1, 2차에 걸친 대표 선발전 결과가 나온 이후인 19일, 경기 화성시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평소 ‘힙합 사랑’으로 유명한 그는 이날도 마치 힙합 뮤지션과 같은 모습으로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옷차림에서 서이라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 ‘평창 멤버’ 대부분이 자신을 제외하고 국가대표에 재발탁되었음에도 그의 표정은 밝았다.
선발전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부터 물었다. 그는 막힘없이 대답을 이어갔다.
“2014-2015 시즌부터 이번 올림픽 시즌까지 쉼 없이 국가대표 소속으로 지냈다.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들이었지만 쉬어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대표팀에 뽑혀 선수촌 생활을 하다보면 휴식시간을 받아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시즌 동안 소속팀에서 훈련하면서 내년을 노리겠다.”
그는 선발전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동료들을 응원했다. 선발전을 지켜본 소감으로 “다들 너무 잘 타더라. 다음 시즌에는 나도 다시 나가야 하는데 좀 긴장도 되더라”라고 말했다. 이번엔 링크 밖에서 경기를 지켜봤지만 다음 선발전엔 참가할 의사를 확실히 했다.
# “결과에 만족” 행복했던 평창올림픽
평창올림픽에서 동메달 획득 이후 특유의 손동작을 선보이는 서이라. 연합뉴스
서이라의 이 같은 계획에는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가 계기가 됐다. 그 역시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이전까지 모든 초점을 올림픽에 맞추고 있었다. 그에게 올림픽은 어떤 의미였을까.
“많은 분들이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시지만 개인적으로는 결과에 만족한다. 그래도 시상대에 한 번은 올라가지 않았나(웃음). 기대도 많았고 준비도 많이 했다.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것이 선수생활뿐만 아니라 평생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는 기회다. 너무 신기하면서도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지난 3월 중순에는 시즌 마지막 대회인 세계선수권 참가로 몬트리올에 다녀왔다. 올림픽 직후 펼쳐진 대회라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서이라의 성적은 저조했다. 1500m에서만 파이널 B에 올랐다. 포인트 1점만을 획득해 종합순위 13위에 올랐다. 2017 세계선수권 챔피언으로선 분명 아쉬운 성적이었다.
뒤이어 그가 선발전 불참 선언을 하자 팬들은 몸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냐며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며 “경기 운영 면에서 잘 안 풀렸던 것 같다. 반칙성 플레이에 당하기도 했고…”라고 말했다.
국제대회에서 매번 좋은 성적을 올리는 쇼트트랙 대표팀은 다른 동계 종목과 달리 많은 고정팬들이 존재한다. 국내 대회가 열리면 많은 팬들이 몰리고 열띤 응원으로 아이돌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기도 한다. 서이라 또한 오랜 기간 국가대표로 활약했기에 팬들이 존재한다. 그는 이들에 대한 감사함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는 “팬들이 없으면 나도 그냥 ‘스케이트 좀 타는 애’에 불과하다고 느낀다. 항상 관심 가져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 ‘노랑’, ‘힙합’ 톡톡 튀는 서이라의 확실한 취향
팬들과 함께하기 위해 올림픽 이후에는 ‘굿즈’도 제작했다. 그는 “소속사와 함께 이야기해서 소박하지만 제 시그니처 손동작(하와이에서 시작된 ‘샤캬’)이 새겨진 모자를 제작했다. 팬분들이 좋아해주셨고 저도 모자가 예쁘게 잘 나와서 기분 좋다”고 말했다. 최근 소속사 동료 배구선수 김연경도 중국 출국 당시 이 모자를 착용했다. 서이라는 “나도 사진으로 봤다. 연경 누나도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다”며 웃었다.
모자의 색상은 노랑으로 제작됐다. 노랑은 서이라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다. 하지만 “노랑색이라고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며 확고한 취향을 드러냈다. 그의 손목에는 노랑색 세월호 팔찌가 걸려 있었다. 최근엔 노랑색이 인상적인 스포츠카의 주인이 되기도 했다.
서이라는 최근 자신의 ‘드림카’를 구매했다. 박정훈 기자
어린 나이에 고가의 스포츠카를 타고 다녀 ‘올림픽 나가서 돈 좀 벌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는 “제가 아직 돈은 많이 못 벌었다. 그 차 절반 이상은 은행 돈이다”라며 크게 웃었다.
서이라는 힙합 음악을 즐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평창 대회에서 ‘자작랩을 하겠다’는 금메달 공약을 밝힌 바 있다. 동메달을 획득했지만 빗발치는 요청에 기자회견 자리에서 랩 실력을 공개했다. 그는 “주변에서 반응도 별로고 감독님은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고 하시더라”며 민망해 했다.
그는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에도 비와이의 ‘My Star’라는 음악을 설정해 놓을 정도로 힙합에 빠져 있다. 최근 식케이(Sik-K)의 곡을 즐겨 듣는다는 그는 지난 평창 대회 기간 중 다이나믹듀오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인데 정말 운 좋게 만나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며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쇼트트랙 선수이자 25세 청년 서이라의 목표
이번 시즌은 소속팀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지만 서이라는 내년엔 다시 대표팀에 도전한다. 선수 생활에서의 목표도 확고하다. 그는 “쑥스럽지만 월드컵,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등 큼직한 대회에서 다 금메달을 땄다”면서 “평창에서 너무 행복했지만 금메달은 못 땄다. 올림픽 금메달에 입을 맞춰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더 많은 팬들이 쇼트트랙을 좋아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단순히 성적만 내는 것이 아닌 경기장 내에서 멋진 장면을 연출하거나 좋은 경기력을 보여서 사람들이 쇼트트랙이 생각보다도 더 재밌는 종목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또 재밌는 경기를 펼친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쇼트트랙 리그’를 제안하기도 했다. “지금도 쇼트트랙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말마다 팀들이 참가해서 리그전을 펼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팬들도 늘어나고 여름철엔 링크장이 시원하니까 팬들에게도 새로운 재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선수생활 이후로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서이라는 “많은 선수들이 그렇듯 지도자 생활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 쪽에 큰 뜻은 없다. 지도자를 하더라도 단순히 코치라는 직업이 아니라 정말 어린 친구들을 좋은 선수로 길러내는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빙판을 떠나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다. “선수생활을 마치면 음악을 해보고 싶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음악을 듣기만 하는 것을 넘어 최근엔 새로운 시도를 계획 중이다. 그는 “혼자서 작곡을 하거나 컴퓨터 음악 프로그램을 만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알아보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노랑색과 힙합을 좋아하는 서이라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경기장에서 결과에 크게 웃음 짓고 자신이 좋아하는 손동작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꼬리표를 떼지 않은 채로 쓰고 다니는 모자에 대한 질문에 “이런 게 ‘스웨그(swag)’ 아니겠어요?”라고 웃으며 노랑 스포츠카에 올라탔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목동왕자 별명 붙은 사연은? 평창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서이라에게는 ‘목동왕자’라는 별명이있다.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리는 대회만큼은 빠지지 않고 상위권에 들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목동에서만 잘하고 해외에선 기대에 못 미친다’며 그에 대한 아쉬움을 꼬집는 별명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이 같은 별명을 알고 있을까. 쇼트트랙팬 사이에서 ‘목동왕자’라고도 불리는 서이라. 박정훈 기자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지난 월드컵 때 목동왕자는 끝난 거 아닌가(지난해 12월 목동에서 열린 4차 월드컵에서 이전과 같은 압도적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라며 웃었다. 이어 “유난히 목동에서 잘 풀렸던 경기가 있었던 것 같다. 칭찬해 주시는 별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게 더 많은 팬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상]. |
‘Jesus love you’ 악플에도 의연한 크리스천 서이라는 평창 동계올림픽 대회 기간 중 외국인들의 악성 댓글에 ‘유연한 대처’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몸싸움이 치열한 종목인 쇼트트랙은 때론 선수들이 일부 팬들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중국 선수와 경쟁을 벌였던 서이라도 소셜미디어에서 중국팬들로부터 ‘폭격’을 맞았다.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거나 큰 상처를 받는 일부 선수들과 달리 서이라는 ‘F** Korean’이라는 댓글에 ‘Jesus love you’라는 답글로 응수했다. 이어지는 악성 댓글에 국내 팬들이 반응하자 ‘사랑으로 대해주세요~’라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면 그 사람들도 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상] |
평창 다음 세대는? 올림픽 이후 첫 국가대표 선발전 풍경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1, 2차에 걸친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렸다. 최민정과 황대헌은 이미 지난 3월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국내 최고 순위를 기록하며 대표팀에 자동선발됐다. 남은 7자리를 두고 국내 내로라는 쇼트트랙 선수들이 총출동했다. 오목교역에 걸린 김아랑 응원 광고판. 사진=김아랑 인스타그램 캡처 매년 열리는 선발전이지만 올림픽 직후였기에 더 많은 시선이 쏠렸다. 첫날인 11일은 평일임에도 많은 관중들이 찾아 경기를 지켜봤다. 목동아이스링크 객석은 선수들을 응원하는 현수막으로 도배됐다. 인근 지하철역 오목교역에는 ‘평창 스타’ 김아랑을 응원하는 광고까지 걸렸다. 그럼에도 한 빙상계 관계자는 “요즘 연맹에 시끄러운 일이 많아서 인지 예년보다 분위기가 좀 조용한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경기장에선 인기 선수의 등장 때만 나오는 약간의 환호를 제외하면 각 팀 코칭스태프의 외침만이 울려 퍼졌다. 다만 주말인 14일과 15일 열린 2차 대회에서는 많은 팬들이 객석을 채워 응원전을 펼쳤다. 2018-2019 시즌 국가대표를 노리는 선수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올림픽보다 어렵다는 선발전이 치열하게 진행됐다. 실제 올림픽보다 선두와 후미간의 간격이 더 좁은 경기도 많았다. 유난히 많은 선수들이 넘어지는 대회이기도 했다. 김아랑은 1차대회 첫 날 부상으로 남은 일정을 포기해야 했다. 판정 시비가 불거지기도 하는 쇼트트랙이기에 이번 선발전 또한 외국인 심판들이 링크에 섰다. 지난해에도 빙상연맹은 국제빙상연맹(ISU)로부터 빙판 위 외국인 심판 3명과 비디오 심판 1명을 초빙한 바 있다. 이번 선발전에서는 평창에서 활약한 멤버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남자부에선 임효준(1위)과 곽윤기(4위)가 대표팀에 재승선했고 이준서(2위), 홍경환(3위), 김건우(5위), 박지원(6위), 박세영(7위)가 이들과 함께 생활하게 됐다. 여자부는 심석희, 김지유, 김건희, 김예진, 최지현, 노아름, 신새봄(이상 성적순)이 대표로 나선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