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아이돌 팬덤 화력을 누른 비정상적 상승세…“유령 계정 이용·매크로 등 조작 가능성 열어둬야”
지난해 10월 발매한 앨범의 ‘역주행’으로 각종 음원 차트 1위에 오른 인디 가수 닐로. 사진=리메즈엔터테인먼트 제공
SNS나 유튜브 등 온라인으로 먼저 눈길을 끈 가수들이 이른바 ‘역주행’이라는 이름으로 음원 차트 상위권을 휩쓴다. 이는 그렇게까지 생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경우도 음원 차트가 ‘빈집’일 때야 수월하게 이뤄진다. 막강한 팬덤을 가진 아이돌 그룹이 컴백하는 주기라면 아무리 입소문으로 탄탄하게 무장했거나 ‘음원 강자’라는 별명을 가진 대중적인 가수라 하더라도 차트 순위권에 입성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가수를 컴백 주간에 차트 1위에 올려 놓기 위한 팬덤의 스트리밍 총공(차트 상위권을 점유하기 위해 하나의 음원을 계속해서 반복 재생하는 것) 때문이다. 적게 잡아도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이 몰리는 공격적인 스트리밍에 일반 가수들은 차트 중~하위권을 맴돌아야 했다.
그런만큼 엑소와 트와이스가 한꺼번에 컴백한 주에 이들을 모두 누르고 혜성처럼 등장한 인디가수에게 대중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인디가수 닐로는 지난 3월 23일 처음으로 음원 사이트 ‘멜론’의 차트 100위권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5년에 데뷔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던 그는 지난 2월 새로운 소속사인 ‘리메즈엔터테인먼트’로 둥지를 옮기면서 조금씩 빛을 받기 시작했다. 먼저 86만 명의 팔로어들을 거느린 페이스북 음악 소개 페이지 ‘너만 들려주는 음악’을 통해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 ‘너만 들려주는 음악’ 측은 닐로에 대해 “나만 알고 싶었던 가수”로 소개하면서 그의 음원 차트 순위권 진입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닐로의 음악 영상에 찍히는 ‘좋아요’ 수는 8000건을 넘어서 200~1000건에 머무른 다른 가수의 영상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런 가운데 닐로의 멜론 차트 상위권 진입이 시작됐다. 닐로의 곡 ‘지나오다’는 지난 3월 22일 멜론 차트 21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 순위가 페이스북 페이지에 영상이 공개되고 난 23일 자정을 기점으로 갑자기 급상승해 47위까지 올라갔다. 100위권에도 올라오지 못하던 무명의 인디가수가 팬덤 화력을 등에 업은 아이돌 그룹 이상의 결과를 보인 것이다. ‘지나오다’는 지난해 10월 31일 발매된 곡이니 사실상 비인기 가수들이 가장 바란다는 ‘차트 역주행’을 한 셈이다. 이 역주행의 급상승세는 4월 12일까지 지속되면서 결국 닐로는 지난 9일, 10일 각각 컴백한 트와이스와 엑소의 유닛 ‘CBX(첸백시, 첸+백현+시우민)’을 넘어서 1위에 올랐다.
50대 멜론 이용자들이 선택한 음원 차트에 닐로의 ‘지나오다’가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를 누르고 1위를 달성했다. 사진=멜론
아무리 입소문을 탔다지만 이해가 어려울 정도의 인기였다. 의구심을 품은 대중들이 주목한 것은 닐로의 급상승세에서 보인 기계적인 스트리밍 증가율이다. 이제까지 뒤늦게 대중들의 선택을 받아 인기 가도를 달려온 다른 ‘역주행’ 곡들과는 전혀 다른 그래프를 보여줬기 때문.
‘위아래 춤’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확산돼 인기몰이를 하면서 음원 역주행의 새 역사를 썼던 EXID의 경우, 주간 차트 1위까지 오르는데 역주행 시점부터 12주가 걸렸다. 가온차트에 따르면 가장 최근 역주행에 성공한 윤종신의 ‘좋니’ 역시 10주가 걸려 주간 1위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즉, 이제까지 특정 SNS 또는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와 일반 대중 모두가 체감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역주행 곡들도 주간 차트 상위권을 점유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상승 추세로 간다면 닐로의 ‘지나오다’는 가장 길게 잡아도 5주 안에 주간 1위에 오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가온차트 측은 특히 닐로의 차트 순위 변화가 다른 역주행 곡들과 전혀 다르다는 점을 짚었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위원은 “EXID의 경우 10위권에 진입 후 7위-5위-5위-5위-3위의 과정을 거치는 등 대부분 역주행곡은 수평적으로 바닥을 다지며 순위가 상승했다”라며 “그런데 닐로는 236위-60위-28위로 거의 수직에 가까운 상승세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닐로의 곡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갈 무렵 노래방에도 등록되지 않은 곡이었다. 이 때문에 인기를 체감하지 못한 대중들의 눈에 더욱 띌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 과정에서 닐로의 소속사인 리메즈엔터테인먼트가 스텔스 마케팅으로 닐로를 SNS에 홍보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스텔스 마케팅이란 소비자들이 판매나 홍보임을 눈치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마케팅을 말한다. 당초 닐로의 음악 영상을 줄곧 홍보해 왔던 ‘너만 들려주는 음악’ 측은 마케팅 의혹에 “금전적인 대가를 전혀 받지 않았고 그저 추천을 많이 받은 가수의 노래를 올렸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일한 닐로의 영상을 같은 문구로 홍보한 내용이 ‘너만 들려주는 음악’ 외에도 ‘너를 위한 뮤직차트’ ‘헤어진 다음날’ 등 음악 전문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사실이 확인됐다.
리메즈엔터테인먼트는 다수의 음악 추천 페이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홈페이지 회사 소개란에도 가수의 바이럴 마케팅을 의뢰받고 있다고 명시했다. 이번 닐로의 ‘이상한 역주행’과 관련해서도 “SNS 바이럴 마케팅이 효과를 본 것일 뿐, 일각에서 제기하는 음원 사재기나 차트 순위 조작 같은 것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모든 결과는 자신들의 전문적인 ‘마케팅 노하우’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리메즈엔터테인먼트가 주장하는 ‘마케팅 노하우’가 2013년부터 지속적으로 불거져 나오고 있는 ‘음원 사재기 브로커’ 문제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3년 SM, YG, JYP, 스타제국 등 국내 대형 연예기획사들이 검찰에 음원 사재기 브로커 수사를 의뢰한 적이 있다. 이런 브로커들은 국내 음원사이트에 해외 계정을 포함해 적게는 수백 개, 많게는 수천 개의 계정을 보유하고 있다. 매크로를 이용해 상대적으로 경쟁이 뜨겁지 않은 이른바 ‘빈집털이’ 시즌에 차트 순위 상위권 진입을 시도하는 식이다. 즉, 아이돌 팬덤의 화력이 넘치는 컴백 시즌이나 새벽 시간대를 피해 한적한 시간대를 노린다는 것.
멜론 차트 측은 이런 의혹에 대해 “시스템상으로 유령 계정 등의 매크로 같은 비정상적인 움직임이나 이용행태는 없었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유사한 특정 아이디를 가진 계정 여러 개가 하나의 곡을 특정시간에 반복하는 등의 이용행태가 보일 경우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차단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닐로의 급상승세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인디 레이블 관계자는 “초반에는 음원 브로커들이 대형 기획사, 또는 최소한이라도 사람들에게 알려진 가수의 소속사에 접근해 바이럴 마케팅 의뢰를 요구했지만 요즘은 인디 밴드들에게도 제안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는 “볼빨간사춘기나 문문처럼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떴다는 가수들의 예시를 들면서 SNS 마케팅과 함께 음원차트 입성까지 책임지겠다는 식”이라며 “어떤 방식으로 차트 입성까지 가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페이스북에서 유령 계정을 사들이듯 음원 사이트에서도 같은 짓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닐로의 음악을 지속 홍보해 온 페이스북 페이지 ‘너만 들려주는 음악’. 리메즈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의 음악을 중점적으로 홍보해 왔다. 사진=너만들려주는음악 페이지
실제로 이들 브로커의 제안을 거절했다가 음원 사이트에서 유령 계정들로부터 악플과 평점 테러를 받았던 인디 가수도 있다. 이 가수의 소속사 마들렌뮤직의 이동수 대표는 “3년 전 인스타그램 홍보를 해주겠다며 광고비를 요구한 사람의 제안을 거절했더니 그 다음날 소속 가수 1집 앨범 댓글창에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악플들이 무더기로 달리고 앨범 평점까지도 확 깎였다”고 밝혔다. 이상해서 악플을 단 계정들을 하나씩 살펴 보니 음원 브로커와 연결된 계정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 홍보를 거절한 소속사들이 악플을 밀어내기 위해서라도 다시 홍보를 부탁하게 만들려 한 브로커의 계획으로 추정됐다.
닐로 역시 소속사가 직접 운영하던 페이스북 음악 소개 페이지를 비롯해 멜론, 트위터 등에서도 닐로를 홍보하는 유령 계정들이 속속 발견됐다. 이 계정들은 같은 이름 뒤에 숫자만 하나씩 바꾸는 식으로 생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유령 계정 또한 소속사가 관리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음원 차트에서의 비정상적인 상승세에 이들 역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의심되고 있는 상황이다.
리메즈엔터테인먼트 측은 닐로의 음원 차트 조작 의혹이 불거진 후 공격적으로 언론 플레이에 나섰다. 닐로가 아니라 소속사 대표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해명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의혹에 대해서는 단순히 ‘마케팅 노하우’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이렇다 보니 이 ‘마케팅 노하우’라는 것이 결국 차트 조작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명확히 밝히지 않는 게 아니냐는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더욱이 리메즈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닐로에 앞서 역주행에 성공했던 가수 장덕철도 차트 조작 의혹에 휩싸였다. 가온차트에 따르면 장덕철과 닐로의 차트 순위권 진입과 상승세 그래프가 유사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같은 소속사이고, 장덕철 역시 ‘너만 들려주는 음악’ 페이지로 지속적인 홍보를 받아왔던 만큼 그의 역주행에도 의혹의 눈초리가 모인다.
앞선 인디 레이블 관계자는 “방송 출연이 어려운 인디 가수들에게 홍보 채널은 정말 절실하고 소중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유명 SNS 페이지에 한 번 영상을 올리는 것이 방송 출연보다 더 확실한 효과를 발휘해 그 수요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정작 브로커의 힘을 빌려 차트 1위에 오르고 홍보를 하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이 효과가 오래 가지 못한다”라며 “이미 대중들이 조작이라는 의혹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가수와 소속사는 오명을 쓰고, 브로커는 뒤로 빠져나간 뒤 오히려 이 결과를 가지고 다시 다른 소속사에 접근해 자신들의 ‘마케팅의 힘’이라고 홍보할 것”이라고 짚었다.
한편 한국매니지먼트연합은 이번 ‘닐로 사태’와 관련, 지난 18일 정기 운영회의를 열고 “닐로의 음원 차트 1위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뤄진 것일 경우 공동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다만 지난 2013년 음원 사재기 브로커들에 대한 검찰 고발이 증거불충분 무혐의로 흐지부지 끝났던 만큼,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는 좀 더 신중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