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사업보다 백수가 낫다?
▲ 2002년 7월 히딩크 감독 명예시민증 수여식에서 히딩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이시형 씨(왼쪽)와 사위 조현범 씨. 당시 이명박 시장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 ||
그러나 기자는 이 씨의 퇴사에 이 대통령 측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몇몇 정황들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일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10월 초부터 여러 라인을 통해 이 씨 관련 소문들을 보고받은 이 대통령이 잡음을 미리 차단하고자 아들의 퇴직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씨의 입사 후 행적과 퇴사를 결심하게 된 배경을 추적했다.
한국타이어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기업이다. 이 대통령 셋째딸인 수연 씨는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둘째아들 조현범 부사장과 지난 2001년 혼인을 맺었다. 당초 해외 유학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이시형 씨가 한국타이어 인턴사원 신청서를 제출한 것도 매형인 조 부사장의 강력한 권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 역시 아들의 입사에 대해 사전에 사돈 측과 의논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어디에 보내건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가장 안전한 곳에 보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양가의 뜻(?)대로 이 씨는 지난해 7월 21일 한국타이어에 첫 출근을 했다. 3개월간의 인턴근무를 마친 뒤 정직원으로 고용된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 씨 취업을 두고 야당과 몇몇 시민단체들은 ‘특혜’라며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이 씨가 ‘2009년 2월 졸업 예정자’라는 인턴사원 응모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 이 씨는 미국에 위치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를 이미 2005년에 졸업한 상태였다. 이에 대해 한국타이어 측은 “우수 인재를 수시로 채용하기 위한 인턴 전형”이라며 “이 씨가 먼저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서류를 접수해와 엄격한 서류전형 끝에 채용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그 이후 이 씨의 회사 생활에 대해서는 그리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이 씨가 국제영업부문 중동·아태팀에 소속돼 해외영업담당을 맡았다는 것 정도가 몇몇 언론에 보도됐을 뿐이었다. 또한 이 씨가 청와대에서 나와 강남의 모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한국타이어의 한 관계자는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지만 아무것도 알려주지 말라는 것이 회사 방침이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 씨는 영어에 능통했고 주로 수출과 연관된 해외바이어들을 만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기자가 지난 몇 달간 한국타이어 직원들을 만나 이 씨에 대해 물어본 결과 입사 초반 그에 대한 평판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업무 특성상 주로 해외에 나가거나 외근이 잦아 사내에서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았지만 비교적 성실하고 동기들에 비해 업무능력이 우수했다는 게 공통된 증언이었다. 한 직원은 “대통령 아들이 입사한다고 할 때부터 누굴까 굉장히 궁금했다. 그러나 같이 근무하고 밥도 먹으면서 그냥 평범한 청년임을 알 수 있었다. 신입사원치고는 일도 잘하는 편이었다. 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본인이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시선을 굉장히 부담스럽고 답답해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직원은 “회사 안에서는 수많은 직원 중 하나로 여겨졌을 뿐 그리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출·퇴근 때 경호원들이 따라붙는 것을 보면서 ‘신분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부터 이 씨를 둘러싸고 몇 가지 소문들이 회사 안팎에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씨가 회사에 잘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도 그중 하나였다. 일각에서는 이 씨가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아 ‘겉돌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이 씨와 비슷한 업무를 담당했다는 한 직원은 “사실 이 씨가 동료들과 가깝게 지냈던 것은 아니었다. 친해지려면 회식도 참가하는 등 스킨십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입사하고 나서 몇 개월 뒤부터는 얼굴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회사에서도 거의 ‘터치’를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 씨 역시 초반과는 달리 업무에 그다지 적극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 씨가 자신이 맡은 해외지역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고 있으며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소문이 회사 내에 파다하게 돌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국타이어 측은 “사실 무근이다. 갑작스럽게 그만둔 것을 두고 여러 억측이 나오는 것 같은데 근무하는 동안엔 열심히 일했다”고 반박했다.
10월 초엔 이 씨가 중국 지역에서 사업에 뛰어들 것이란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기자는 국내의 한 중소 자원개발업체 A 사에 이 씨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접촉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A 사는 중국에서 광물 개발을 위해 탐사를 하고 있는 업체다. A 사의 한 관계자는 “9월 중순경 이 씨의 대리인으로부터 사업을 같이 하고 싶다는 권유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 씨 측이 A 사에 투자금액 절반가량을 대고 수익은 4 대 6으로 나누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판에 이 씨 측이 갑작스레 입장을 바꿔 계약은 무산됐다고 한다. A 사 관계자는 “도장 찍을 일만 남았었는데 일방적으로 안 한다고 통보를 해왔고 그 뒤엔 연락도 아예 되지 않았다. 그 대리인이 이 씨를 사칭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그 대리인에게 수차례 연락했지만 통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 후에도 이 씨가 경북 지역 에너지업체인 B 사, 중국에서 교육관련 사업을 계획 중에 있는 C 사 관계자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첩보들이 일부 정보기관 레이더에 감지되기도 했다. 특히 이 씨는 C 사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C 사는 설립된 지 2년도 채 안 되는 신생업체로 대기업 한 곳으로부터 일부 투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C 사의 한 관계자는 “이 씨를 본 적은 없지만 사업에 관해 의논은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직접 이 씨가 왔던 게 아니고 제3자가 이 씨를 거론하며 우리 측 인사와 만났다고 한다”고 전했다. C 사 역시 중국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곳인지라 이 씨가 중국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조만간 구체적인 ‘액션’을 취할 것이란 말은 점점 확산됐다.
이 대통령이 이 씨에게 회사를 그만두라고 권유한 것도 이 무렵인 것으로 관측된다. 이 대통령 역시 그동안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으로부터 기사에서 언급한 이 씨 관련 사안들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이 씨 소문은 사실 여부를 떠나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사소한 것이라도 빠짐없이 체크해서 보고하고 있다. 여기엔 회사 생활과 최근 몇 달 전부터 나오기 시작한 사업 참여설 등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특히 몇몇 언론과 민주당 등에서 이 씨에 대한 취재에 나서자 이 대통령은 아들의 퇴사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민주당에서 ‘저격수’로 불리는 한 의원은 A 사와 만났다는 이 씨 대리인의 행방을 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씨가 사업을 하려 했다면 그 자금은 어디서 나왔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민정팀에서도 이 씨는 ‘1급 관심 대상’으로 분류된다. 그렇다고 성인을 일일이 감시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 그렇지만 소문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더 이상 다니기 힘들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 물론 이 씨는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재취업보다는 유학길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최근 ‘형님’ 이상득 의원이 ‘한상률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최측근’으로 통하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의 계보 의원들이 잇달아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자 ‘친·인척 및 여권인사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전언이다. 여기서 문제가 더욱 확산될 경우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수정 추진은 고사하고 정권이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의 청와대 관계자는 “이 씨 문제는 형님이나 최측근의 경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자칫 불법이라도 드러날 경우 바로 ‘정권의 사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라도 사표를 내라고 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 씨에게도 몇 차례 주의를 줬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통령 사돈기업' 한국타이어 눈부신 실적
너무 잘나가도 '눈치'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눈부신 실적을 기록했다. 회사 2대 주주(지분율 7.10%)이기도 한 이 대통령 ‘사위’ 조현범 부사장이 주가조작 의혹을 받았고, 많은 노동자들이 돌연사를 당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경제 불황 속에서도 실적만은 가파르게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한국타이어는 약 4조 4000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는데 이는 2007년에 비해 무려 9000억 원가량이 늘어난 것이다. 동종업계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올해 역시 3분기까지(1월~9월)의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봤을 때 매출액 5.2%, 당기순이익 218%가 늘어났다.
재계 일각에서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한국타이어’를 시샘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작년 타이어 업계는 비교적 호황이어서 대체적으로 매출액이 늘어났는데 그중에서도 한국타이어는 돋보였다”면서 “사돈기업이라는 타이틀과는 무관하겠지만 그래도 득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