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업계 “미용업계의 ‘의료기기’ 사용 막아야” VS 미용업계 “미용 목적 기기는 합법화 해야”
한 조사에 따르면 70%에 육박하는 피부미용업소에서 의료기기를 1대 이상 보유·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소연 디자이너
최근 강남 일대 피부미용업소에선 산전·산후 관리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질 마사지’가 화제다. 그 가운데서도 ‘질쎄라’ 시술이 최근 일부 피부미용업소에 퍼지면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질쎄라 시술은 초음파 에너지를 조직 내에 조사해 생성된 열에너지가 질의 콜라겐 합성을 촉진하고, 섬유 근육층의 수축을 일으켜 질벽을 타이트하고 두껍게 만드는 기술이다. 시술 시간은 보통 20분 내외다.
강남에 위치한 한 피부미용업소 관계자는 “업계에 2~3년 전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에야 기기가 대중화돼 가격이 저렴해져 찾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라며 “보통 산전·산후 관리로 많이 이용하고 미혼 여성들도 종종 찾는다”고 말했다.
앞서의 관계자는 “원래는 병원에서 하는 시술이다. 우리 업소에선 산전·산후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해 기계를 들여온 것”이라며 “피부미용업소 20군데 가운데 1~2군데꼴로 질쎄라가 있다”고 했다. 이어 “병원에선 질쎄라를 못 쓰게 하지만 대형 에스테틱에선 고주파 기기 등은 다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 산부인과 관계자는 “피부미용업소의 질쎄라 시술은 불법”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 또한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기로 허가를 안 받고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중국에서 역수입하는 것으로 안다. 불법인데 쉬쉬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불법’과 ‘편법’ 사이를 넘나드는 것도 문제지만 전문가들은 ‘안전성’을 더 큰 문제로 꼽았다. 앞서의 산부인과 관계자는 “의료인에게 의료기기로 시술을 받는 이유는 부작용이 생기거나 문제가 생길 경우 때문이다. 의사는 바로 처치가 가능하다. 또 해부학적 구조를 잘 알아야 같은 시술을 해도 좀 더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병원 고주파 장비와 인터넷에서 구입한 고주파 기기는 수준이 다르다. 최소 65도까지 올라가야 세포가 파괴되고 재생이 되는데 일반 장비들은 온도가 그 정도까지 올라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시술 체험 사진. 기사와는 상관 없다. 연합뉴스
보건복지부의 2008년 조사에 따르면 피부미용업소 4948개소 가운데 66%인 3265개소에서 의료기기법상 의료기기를 1대 이상 보유·사용 중이었다. 피부미용업소에서 피부 미용을 위해 사용하는 주요 의료기기는 초음파 자극기(38%), 적외선 조사기(37%), 고주파 자극기(36%)로 조사됐다.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르면 미용업을 하는 자는 의료기구와 의약품을 사용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할 경우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및 영업 정지 또는 영업소 폐쇄 명령 등이 부과될 수 있다.
또한 의료기기 사용행위를 의료행위로 볼 경우 미용업자가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의료법에 따라 무면허 의료행위로 간주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또한 “의료인만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 받은 제품을 피부미용 숍에서 사용했다면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처럼 피부미용업소에서 사용하는 기기에 따라 합법 여부가 달라진다.
하지만 의료기기에 대한 세부적 규정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기기법에 따르면 의료기기는 ‘사람이나 동물에게 단독 또는 조합하여 사용되는 기구·기계·장치·재료 또는 이와 유사한 제품’을 뜻한다.
이혜진 로펌 ‘고우’ 변호사는 “법적으로 어떤 기기가 의료기기인지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미용업계에서 합법적인 기기 사용이 쉽지 않다”면서 “법에서 미용업이란 의료기기나 의약품을 사용하지 아니하는 행위만으로 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용업계에서 의료기기를 사용해 미용행위를 한다거나 ‘의료기기’지만 ‘미용기기’이기도 하다는 등의 변명 자체가 애초에 통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조수경 한국피부미용사회 중앙회 회장 또한 “우리나라에선 미용기기로 식약처에서 승인된 게 하나도 없다. 미용 목적인 기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의료기기로 묶여 있다. 미용이 전문화되지 않았을 때 얘기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외국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기로 묶여 있는 종류 가운데 일부는 미용인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합법화돼 있다. 미용 목적이라면 피부미용인들도 사용할 수 있게 합법화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관련 법안은 지난 18대 국회에서부터 몇 차례 발의됐지만 의료계의 강한 반발로 폐기된 바 있다. 20대 국회에선 김기선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6년 보건복지부 장관 고시로 미용기기를 정의할 수 있도록 하는 공중위생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미용기기를 의료기기와 구분해 질병 및 상해의 진단, 완화 등의 목적이 아닌 순수한 미용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정의하는 등 미용기기의 정의를 명시했다. 이와 함께 보건복지부 장관이 품질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미용기기에 대한 기준 규격 및 영업에 사용 가능한 미용기기의 유형을 정할 수 있도록 하고, 미용기기의 안전관리 등에 관해 규정했다.
김 의원은 “전 세계적으로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여러 기기들이 활용되고 있어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는 인증과 같은 절차를 거치면 미용 목적 기기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미용기기와 관련된 규정이 없다”면서 “현재 다수 피부미용업소가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 받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고·저주파 자극기 등의 의료기기를 사용해 영업을 하고 있는 등 미용기기의 사용에 혼란이 있는 상황이므로 이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검토 의견을 통해 “무자격자가 의료기기에 준하는 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저해한다”며 “의료기기는 의료기기법에 의거해 사용 목적과 사용 시 인체에 미치는 잠재적 위해성 정도에 따라 이미 등급 분류가 돼 있는 만큼, 미용 목적의 기기를 별도로 분류해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 및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안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이혜진 변호사는 “기기를 이용한 시술이 불법적인 의료행위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단순히 판매자의 ‘괜찮다’는 말만 믿고 고가의 장비를 구입했다가 그로 인해 의료법 또는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처벌되거나 공중위생관리법 위반으로 영업정지 처분까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의료기기의 정의가 폭넓게 규정된 만큼 미용업계에서 사용 가능한 미용기기의 범위를 규정하고 사용을 허용하는 입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