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회담은 대립 당사자에 다리 놔준 역할…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성패’ 달려
남북정상회담 향후 전망을 묻자, 대북 소식에 밝은 정부 관계자가 내놓은 진단이다. “이미 큰 틀에서 합의한 남과 북이 만나는 것은, 더 첨예하게 대립하는 북한과 미국의 길잡이 역할을 할 뿐 메인(Main)은 아니”라는 것. 미국과 북한의 ‘핵 폐기’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대화로 전락하게 된다는 게 그의 전망이다. 그럼에도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를 낮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북미정상회담까지 감안해 의제를 선정했고 미국과도 지속적으로 이를 공유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분위기는 좋은데, 그런 맥락에서 한국이 이번 회담을 시작으로 앞으로 벌어질 북미 소통 과정에서 얼마나 중간에서 양측의 입장을 전달하고 설득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부터 짚어보자. 남한과 북한의 하나의 입장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결정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비핵화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는 1992년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이어 26년 만에 나온 새로운 남북 비핵화 선언이다. 남과 북은 성명서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고 약속했고,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했다. 이를 위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약속했다.
정치·경제계 일각에서는 이번 남북정상회담 분위기에 기대어, 북한과의 경제 협력 등 각종 정책 실현 가능성 등을 언급하고 있다 실제 남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겠다는 문장도 넣었다.
하지만 외교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북한과 미국이 ‘화해’를 하기 전까지 우리가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UN 안보리에서 북한에 대해 강도 높은 제재안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풀어야 모든 협력이 시작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아 설명한다.
실제 UN 안보리는 지난 2016년 12월 대북제재 결의 2321호를 통해 북한의 석탄수출에 상한선을 설정했다. 지난해 8월에는 제재결의 2371호를 통해 석탄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석유 수입에도 제재를 가하는 한편, 북한 측 자산으로 추정되는 선박 등에 대해서도 자산 동결 조치를 하고 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구애 때문에 북한이 테이블에 나왔다고 칭찬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아니더라도 김정은 위원장은 대화를 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몰렸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실제 북한은 미국의 압박을 받은 중국까지 일부 제재에 동참하면서, 달러 등 외화를 공급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북한이 대화를 원하는 것은 남한이 아니라, 대립당사자 미국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그동안 북한은 핵 개발의 주된 이유로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을 들었다. 미국 역시 핵무기뿐 아니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북한에 강도 높은 제재로 대응해 왔다.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과 비핵화가 맞교환되어야지 남북정상회담의 합의가 실현될 수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긍정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4월 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면담을 언급하며 “매우 훌륭한 만남이었으며, 인사 차원을 넘어선 대화였다”고 높게 평가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역시 상원 청문회에서 “최대 압박 캠페인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며, 북한과의 협상이 결실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기 통일연구원 평화협력연구실장은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낙관적으로 평가한다”며 “지난 3월 있었던 남북합의에서 북한은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안전보장을 조건으로 해서 비핵화를 할 의사가 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혔고 그 직후 3월 9일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공식적으로 합의되는 과정에서 남한·북한·미국 정상들 사이에는 대략적으로는 비핵화와 북한체제안전보장, 북미관계 정상화에 대한 큰 틀에서의 공감대는 이미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협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단순히 핵무기의 제조와 저장을 금지하고, 만들어진 핵과 실험장소에 대해 폐기 과정을 밟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 핵무기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미사일(대륙간탄도미사일 ICBM급) 등에 대한 미국의 폐기 요구가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얘기다. 박주화 통일연구원 평화협력연구실 부연구위원은 “북한이 얘기하는 핵폐기는 현재 핵을 유지하면서 감시를 동의하는 수준의, 더 이상 확산을 하지 않는 것이거나 군비 축소을 의미할 수도 있다”며 “이것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정의가 다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각종 제재를 어떤 시점에, 어느 정도 풀어줄 것인지에 대한 북한의 요구사항이 관철될지도 관건이다. 북한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핵폐기’ 과정을 미국 등 UN에게 확인시켜줬을 때 UN이 제재를 풀어주는 게 가장 통상적인 시나리오인데, 단계적 이행 과정에서 미국이 언제쯤 북한에 대한 경제 규제를 풀어줄지, 북한 체제를 인정해줄지 서로 원하는 시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합의 과정에서 변수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유분방한 스타일도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다른 해외 정상을 만났을 때 강한 악수로 상대방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등 자유로운 행보를 보여왔다. 특히 SNS를 통해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본인의 의견을 언제든 전달하며, 상황을 유리하게 끌고 나가기도 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2020년 11월에는 차기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어,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던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확실한 성과가 필요한 상황. 조금이라도 상황이 유리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 테이블을 박차고 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사상 처음 열릴 것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연신 기대감을 드러내면서도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은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유지될 것”이라며 엄포를 놓는 것을 빼놓지 않고 있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남북회담에서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대해 일정수준의 의지를 확인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결정적으로 합의되고 실행되는 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서”라며 “비핵화, 평화정착이라는 두 가지 매듭을 풀 수 있는 최종결정권자인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 손에 달려 있다”고 평가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