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로 사드 배치 명분 사라져“ vs “정상회담과 연계하는 건 시기상조”
마을회관에 앉아 있던 소성리 주민 김 아무개 씨는 경찰들을 향해 “정부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며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 이후에 사드 최종배치를 결정하기로 해놓고 환경평가는 시작도 안한 채 공사를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일단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받고 부지 조성을 하는 게 순서라는 것이다.
국방부는 지난해 사드 부지 약 70만㎡ 중 32만 9000㎡에 대해 소규모 환경평가를 실시한 뒤 레이더 1대와 미사일 발사대 6기 등 1개 포대를 임시 배치했다. 이를 두고 사드 반대단체 등은 33㎡ 이하의 부지면적에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된다는 점을 노려 국방부가 사드배치를 서둘러 마무리하려는 것이라고 반발하는 상황.
25일 취재진이 찾은 경북 성주 소성리 모습.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6월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지시했다.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최종배치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는 아직 시작도 못한 상태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 측이 작성 중인 사업계획서가 확정되면 절차에 따라 진행될 예정”이라며 “정확한 일정은 알 수 없고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물리적 충돌로 불거지기도 했다. 지난 4월 23일, 국방부가 기지 내 장병들의 생활 개선 공사를 위한 장비와 자재 등을 반입하자 반대단체와 일부 주민 등이 진밭교 부근 통행을 막았다. 이들은 소규모 환경평가가 편법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이에 근거한 공사는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8시부터 경고방송을 한 뒤 3000여 명을 동원해 이들을 강제 해산시키고 공사 장비와 인부 등을 실은 차량 22대를 들여보냈다. 이 과정에서 주민 10여 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과 보건소 등으로 이송됐다. 이후 추가 충돌은 없었지만, 1000여 명의 경찰은 소성리에 주둔하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만약에 대비해 경계를 서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사드 배치 갈등에 새로운 국면이 될 전망이다. 사드 배치가 북한 핵에 대한 우려에서 도입된 전략무기이기 때문. 사드 배치 논의는 지난 2016년 북한이 4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면서 본격화됐다. 국방부는 사드 도입 당시 “북한이 보유한 1000여 발의 탄도미사일 중 85% 이상이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며 “사드체계는 이런 스커드, 노동미사일과 같은 단·준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무기체계”라고 설명했다. 사드는 고도 40~150km 상공에서 북한의 사거리 3000km급 이하 단·준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요격해 핵 및 화학탄두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미국 미사일방어국은 지난해 실시한 사드 요격 시험에서 중장거리탄도미사일의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체를 명중시킨 후 “사드는 이번까지 14차례의 요격 시험에서 모두 성공해 ‘100% 명중률’을 보였다”고 배치 이유를 설명했다.
25일 성주 모습. 경찰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계를 서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에만 중∙단거리 미사일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급을 13차례 발사했고,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9월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 반입하면서 1개 포대의 임시배치를 완료했다. 국방부는 사드 포대가 작전 운용상태에 돌입하면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와 다층방어체계를 이뤄 요격률을 높이게 된다고도 강조했다. 사드가 패트리엇 미사일이 방어하는 지역보다 더 넓은 지역에 대한 방어가 가능하므로 현재의 한미 패트리엇과 함께 다층방어체계를 구축해 최소 2회 이상 추가 요격기회를 가질 수 있어 요격 성공률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의제로 올랐다. 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내정자를 만나 완전한 핵 포기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는 직접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와 지역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로 향한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국제정치 구도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이제는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도 필요없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북부 핵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쳤다”고 했다.
사드 반대단체 등은 이를 근거 삼아, 사드 배치의 명분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강현욱 소성리 종합상황실 대변인은 “우리가 1년 넘게 사드 철회와 함께 외쳐왔던 것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라며 “회담을 통해 사드 배치의 유일한 핑계인 북핵 위기가 사라진다면 사드 또한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탄핵 전 러시아 시보드냐 통신과의 서면인터뷰에서 “북한의 핵위협이 제거되면 자연스럽게 사드 배치의 필요성도 없어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는 점도 사드 반대단체들이 내세우는 근거다.
23일 경찰 - 단체 간 충돌 때 모습.
하지만 자유한국당 등 보수세력들은 사드 철수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은 “북한의 핵 폐기가 완전히 이행되고 검증될 때까지는 안보를 위해 사드를 유지해야 한다”면서도 “사드를 도입할 때 북한 핵 위협 대비가 목적이라는 것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핵 폐기가 이뤄진다면 철회 주장이 유효할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역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화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핵화 자체가 어떤 미사일 공격이나 안보 위협으로부터 남한이 안정적으로 보호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며 “사드를 현재 남북 정상회담 이슈와 연계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진단했다. 또 다른 전문가 역시 “북핵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들여온 것은 맞지만, 북핵 문제가 확실하게 마무리되려면 최소 6개월은 걸린다”며 “사드 철수를 북핵 폐기와 맞물려 한다면 최소 몇 개월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효정 언론인 hyoj03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