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 숲길 지나 추억의 동네로…
▲ 돌담과 흙집이 정겨운 늘밭마을. | ||
늘밭마을은 경남 양산시 원동면에 자리하고 있다. 원동에서 배내골 방면으로 69번 지방도를 타고 달리다보면 우측으로 원동자연휴양림과 늘밭 가는 길이 나온다. 원동자연휴양림 너머가 늘밭이다. 원동자연휴양림까지는 약 1.5㎞, 늘밭마을까지는 4㎞가량 된다.
길은 시멘트 포장이 잘 되어 있다. 넓지는 않아 교행이 불가능하다. 마주 오는 차가 있다면 길 가장자리로 최대한 비켜섰다가 가야 한다. 길 주변으로 단풍나무와 참나무 등이 울창하다. 5월의 싱그러운 나뭇잎들이 찬란한 햇빛에 부서지고, 가벼운 바람에도 살랑이며 수런거린다.
원동자연휴양림은 가족단위 행락지다. 산책로가 구비된 휴양림이 아니라 숲속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물놀이를 즐기는 곳이다. 휴양림에서 길은 우측으로 계속 이어진다. 구불구불 휘어 산을 돌아가는 길이다. 길 좌측으로 계곡이 따라 흐른다. 1.5㎞가량 더 올라가자 길이 양 갈래로 나뉜다. 우측이 수암사와 불음폭포 가는 길이고, 좌측이 늘밭길이다.
곧장 늘밭으로 가지 말고 잠시 수암사와 불음폭포에 들렀다 가도록 하자. 멀지 않다. 500m 정도만 올라가면 수암사 주차장이 나온다. 예닐곱 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수암사까지는 걸어서 약 200m. 살짝 가파른 산길이다. 불음폭포는 수암사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30여m의 벼랑에서 물줄기가 쉼 없이 흘러내리는 폭포다. 가뭄 때문에 예년에 비해 폭포의 수량이 많지 않아 다소 아쉽다. 수암사는 자그마한 절로 창건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관음전의 현판을 보면 1975년 창건된 것으로 나온다. 산길과 절 주변에 자작시를 걸어놓을 정도로 문학적인 감수성이 뛰어난 스님의 설법을 들으러 오는 단골 신도들이 꽤 있다.
수암사에서 내려와 다시 늘밭으로 길을 잡는다. 이곳에서 늘밭까지는 2㎞가 채 못 된다. 길은 이전보다도 더 좁아진다. 낭떠러지처럼 아찔한 지점도 있다.
오지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이용하는 차량이 꽤 많은 편이다. ‘자연생활의 집’ 때문이다. 자연식이요법과 자연에 최대한 동화하는 생활을 통해 건강을 찾는 곳이다. 늘밭 조금 못 가 좌측에 자리하고 있는데, 직장암과 대장암의 임파선 전이로 시한부를 선고받았던 원장이 병을 완치한 경험을 토대로 이 집을 지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황토방에서 숙식을 하면서 적당한 운동과 자연식으로 몸에 맑은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 지금은 놀이터가 된 예배당에서 만난 아이들. | ||
자연생활의 집을 지나치면 넓은 분지가 나타난다. 주변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분지는 병풍처럼 두른 산들의 8부 능선쯤에 자리하고 있다. 대략 해발 500m 가까운 고지다. 그리 넓진 않지만 밭이 펼쳐져 있고, 좌측면에 마을이 조성돼 있다.
늘밭마을은 ‘늘’이라는 구황작물이 많은 곳에 있다고 해서 그 같은 이름이 붙었다. 달성 서씨가 가장 먼저 입성해 농사를 지었고, 그 후 울산 박씨, 분성 배씨 등이 차례로 마을에 들어왔다. 마을에는 약 20호에 20명 정도 산다. 대부분 노인들이고 혼자된 집들이 많다. 외지에서 들어와 터를 잡은 이들과 원주민들의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 완전귀농을 해서 정착한 사람, 단지 자연이 좋아 뿌리를 내린 사람, 주말에만 와서 농사를 짓고 쉬고 가는 사람 등 다양하다.
마을이 깊어 전란이나 역사적인 사건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늘밭의 유일한 남자 노인인 박재명 씨(91)에 따르면 주변 산들이 빨치산의 본거지였다고 한다. 밤이면 내려와 마을의 소도 잡아가버리고, 사람들도 끌고 가는 통에 늘밭 사람들은 밤에 집에서 생활을 하지 못 했다고 한다. 새벽같이 올라와서 농사를 짓고는 저녁이 되면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생활을 지겹도록 했다는 것이다.
늘밭에는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지은 양옥집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50~60년도 더 된 옛집들이 그래도 훨씬 많다. 마을 안길에는 여전히 돌담이 쌓여져 있다. 감나무 한두 그루쯤 뒤란에 서 있고, 마당 담벼락 아래는 장독대들이 놓여 있다. 그 모습이 하도 정겨워 마당 안으로 들어서면 자식손자 반기듯 길손을 맞는 노인들. 사람이 그리웠기 때문일 것이다.
안길을 걷다보면 아주 특별한 교회건물이 눈에 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어전예배당’이라는 현판이 붙은 흙집이다. 넓은 마당에는 그네와 미끄럼틀이 있다. 이따금씩 주말농장에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는 곳인데 흙집의 방문은 꼭꼭 닫혀 있다. 인근의 명전마을 가는 쪽에 자리한 엠마누엘기도원 소유의 건물로 20여 년 전만 해도 예배당이 운영되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던 예배당이었는데, 이곳 아이들이 제 부모와 함께 다 떠나면서 예배당도 자연스럽게 문을 닫았다.
늘밭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겨울에는 주위의 산들이 찬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에는 고지대라 산 아래에 비해 4~5도가량 낮은 탓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여름에도 비가 올라치면 방구들부터 따뜻이 데운다.
한편 늘밭에서 내려갈 때는 왔던 길이 아니라 신불산공원 쪽 길을 택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늘밭을 지나 우측 산으로 길이 계속 이어진다. 도중에 포장이 끝나는 부분이 있지만 그다지 험한 편은 아니다. 이 길을 따라 가다보면 널밭고개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 방향을 택해 조금 더 가면 길은 1051번 지방도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좌회전하면 배내골, 우회전하면 바로 신불산공원이다.
[여행안내]
★길잡이: 경부고속도로→동대구분기점→대구-부산 간 고속도로→삼랑진나들목→1022번 지방도→원동면→배내골 방면 69번 지방도→원동자연휴양림→늘밭마을
★먹거리: 원동면 천태사 맞은편에 한방오리와 닭백숙을 잘 하는 천태산가든(055-382-6677)이 있다. 원동에서 물금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화제리에는 시래기와 된장으로 맛을 낸 경상도식 추어탕이 일품인 할매추어탕(055-382-0175)이 있다. 추어탕 단품으로 일정량만 끓이고, 다 떨어지면 그 날 장사를 접는다.
★잠자리: 늘밭마을 전방 1㎞ 지점 부근에 고요마루(055-381-6161)라는 깔끔한 전원펜션이 있다. 여기서 2㎞가량 밑에 있는 원동자연휴양림(055-382-5839)에서도 숙박 가능하다.
★문의: 양산시 문화관광포털(http://tour.yangsan.go.kr) 055-380-4826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