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에 가려진 고대 가야의 신비
▲ 천생산 삼림욕장과 맨발지압로(원 안 사진). | ||
이번 구미여행의 출발점은 천생산이다. 왼쪽으로 낙동강을 끼고 67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906번 지방도로 갈아타면 천생산에 닿는다. 이 산은 금오산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구미의 명산이다.
장천면 신장리에 자리한 천생산은 해발 407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천생산에는 삼국시대 때 쌓은 산성이 있다. 둘레 1㎞의 성벽을 가진 이 산성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쌓았다는 얘기가 있다. 천생산으로 향하는 이유는 이 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릴 등산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천천히 걸으며 숲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천생산에는 삼림욕장이 조성돼 있다. 이 산의 7부 능선쯤에 자리한다. 코스는 두 가지다. ‘자연탐방에 중점을 둔 코스’와 ‘등산과 건강에 중점을 둔 코스’. 주차장 왼쪽 길이 자연탐방코스인데 왕복 1시간쯤 걸린다. 오른쪽은 등산코스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일단, 이 삼림욕장을 찾은 목적대로 걷는 데 무리가 없는 왼쪽 코스를 택한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코스다. 초입에 설치된 지압로를 지나면 족욕시설이 있고, 그 너머에는 야생초화원과 숲속교실이 있다. 지압로는 100m 정도밖에 이어지지 않지만, 그 이후의 흙길도 반들반들해서 계속 맨발로 걸어도 무방하다. 숲속교실에서 600m쯤 더 가면 정상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구미 시내를 굽어보는 2층 정자가 있다. 전체적으로 자연탐방코스는 경사로가 거의 없고, 숲이 하늘을 덮을 정도로 우거져 있어 가볍게 산책하기에 적당하다.
만약 이 코스를 걷는 1시간이 못내 짧게 느껴졌다면 오른쪽 코스도 기웃거려보자. 출렁다리와 99목계단, 평행봉, 철봉, 초가정자 등 시설물들이 자연탐방코스에 비해 많다. 다소 경사가 있는 코스라 버거울 수 있으니 컨디션을 충분히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 신라에 불교를 최초로 전파한 사찰 도리사.(맨 위 사진) 낙산리고분군(가운데 사진)과 일선문화마을.(맨 아래 사진) | ||
1977년에는 도리사 경내에 있는 세존사리탑에서 8세기경 조성된 금동육각사리함과 부처님진신사리가 발견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금동육각사리함은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직지사 성보 박물관에서 위탁 소장하고 있다. 비록 금동육각사리함을 볼 수는 없지만 도리사에는 그 외에도 보물 470호로 지정된 화엄석탑을 비롯해 경북문화재자료 314호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이 남아 있다.
도리사 주변은 소나무가 무척 좋다. 주차창에서부터 도리사로 올라가는 길 주변에 커다란 적송이 빽빽하다. 범종루 옆쪽에는 소나무 숲 속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숲 군데군데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마련돼 있다.
도리사를 둘러본 후 낙산리고분군과 일선문화마을로 향한다. 그런데 이동길이 조금 특별하다. 뻔한 도로가 아니다. 바로 임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도리사에서부터 일선문화마을까지 임도가 연결돼 있다.
구미에는 산림청에서 ‘행복으로 가는 길 아름다운 임도 100선’에 선정한 두 길이 있다. 하나는 주아리 임도이고, 다른 하나는 냉산 임도다. 주아리 임도는 선산 뒷골에서 시작해 옥성면 주아리와 덕촌마을로 이어지는 13.3㎞의 숲길이고, 냉산 임도는 해평면 낙산리에서 창림리를 잇는 25.7㎞의 산허릿길이다. 우리가 달릴 곳은 냉산 임도. 낙산리와 창림리의 중간에 도리사가 자리하고 있다.
도리사 제2주차장을 낀 임도로 돌면 창림리로 향하고, 제1주차장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가면 낙산리로 통한다. 창림리 길이 더욱 구불구불하고 거칠다. 도리사에서 낙산리까지는 9.7㎞.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린다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을 거리다. 하지만 이 임도에서는 그 서너 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간혹 아주 급경사이거나 급커브인 지점에 콘크리트 포장을 한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이 길은 비포장이다. 너덜너덜 차량을 이끌고 가야 한다. 비록 비포장이긴 하지만 길 사정은 썩 나쁘지 않아 승용차로도 큰 무리는 없다.
냉산 임도는 마치 나사선처럼 산허리를 돌며 내려간다. 길이 그다지 넓지 않고, 가드레일 같은 안전장치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옆 산의 능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천천히 달리는 기분이 무척 색다르다.
임도를 다 내려가면 일선문화마을이 나온다. 안동 임하마을 일대에서 살던 전주 류씨들이 이주해 사는 곳이다. 1987년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마을이 수몰됨에 따라 사방으로 흩어지고, 70여 호가 이곳으로 건너왔다.
일선문화마을은 제법 넓고 한옥도 잘 정돈돼 있다. 이 마을에는 수남위 종택, 만령초당, 용와종택, 대야정, 근암고택, 임하댁, 삼가정 등 경상북도 지정문화재 10점이 자리하고 있다. 대문이 열려 있는 집들은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면 구경하도록 허락해준다.
일선문화마을에서 약 2㎞ 남쪽에는 사적 336호로 지정된 낙산리고분군이 있다. 낙산리 일대는 가야왕국과 신라의 지배 아래 있던 지역으로 가야와 신라의 고분이 250여 기나 밀집해 있다. 1980∼1990년에 효성여대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것들이다. 이 고분군에서는 가야시대 등잔 등 4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익히 알려진 신라왕릉에 비해 규모가 작은 이 무덤들은 지역의 토착 지배세력들의 집단 묘지로 추정되고 있다. 고분들 곁에 서니 새삼 역사의 숨결이 남다르게 와 닿는 듯하다.
★먹거리: 금오산길 초입에 있는 사랑방식당(054-456-3326)의 북어물찜을 추천한다. 보통 찜은 국물이 자작자작하게 마련이지만, 이 집은 마치 탕처럼 국물이 많다. 고구마, 무, 양파를 넣은 후 고춧가루로 얼큰하게 맛을 낸 국물이 중독성 강해서 자꾸 생각난다.
★잠자리: 냉산 임도와 함께 구미의 대표적 임도로 선정된 주아리 임도가 지나는 곳에 옥성자연휴양림(054-481-4052~3)이 있다. 숙박을 할 수 있는 ‘숲속의 집’ 10동을 갖추고 있다. 금오산 입구 금오관광호텔(054-451-3700)도 추천할 만하다.
★문의: 구미시청 문화관광포털(http://tour.gumi.go.kr) 문화예술담당관실 054-450-6062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