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조작·실검 올리기·기사 밀어내기 등 전문 업체에 ‘오더’…여의도에선 ‘일상 다반사’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남지사 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 박은숙 기자
한 전직 국회의원은 2016년 총선 때 은밀한 거래를 했다고 털어놨다. 포털 사이트에서 자신의 이름이 검색어 순위에 오를 수 있도록 조작을 시도했었다는 고백이었다. 구체적인 방법을 묻자 “이것만 전문적으로 하는 집단이 있다고 들었다. 동료 의원으로부터 소개를 받았고, 500만 원가량을 지급했다”고 답했다. 실제 순위에 올랐는지에 대해선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고 했다.
한 현역 의원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이른바 ‘기사 밀어내기’를 한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자신과 관련해 좋지 않은 기사가 나온 직후 보도자료를 반복적으로 올리기 위해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수백만 원의 돈을 주고 청탁을 맡겼다고 했다. 그는 “보좌관을 통해 알게 됐다. 나뿐 아니라 동료 의원들도 가끔 활용하는 것으로 들었다.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사용하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정보통신망법 48조는 ‘정보통신망의 안정적 운영을 방해할 목적으로 대량의 신호 또는 데이터를 보내거나 부정한 명령을 처리하도록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특정 서버의 운영을 방해하면 사법처리를 받게 된다는 얘기다. 정치인들이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불법을 저질렀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다른 전직 의원의 경우 드루킹 사건과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댓글을 다는 조건으로 여러 번 돈을 준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경찰 수사 중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의원 시절 그런 적이 있다. 악성 댓글이 하도 많이 달려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 동료 의원이 추천을 해줬다. 당시엔 크게 문제가 되는지 잘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옳지 못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전·현 의원들은 댓글 조작, 기사 밀어내기 등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에 돈을 내고 ‘오더’를 주는 것은 정치권에서 다반사라고 말했다. 경찰 수사가 정치권 전반으로 확대될 경우 그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온라인 여론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지지자들 활동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보수 진영 의원들의 경우 젊은층의 목소리가 큰 온라인에선 너무 열세다. 선거에서도 불리하다. 댓글은 대부분 부정적인 글들이고, ‘좋아요’보단 ‘싫어요’가 압도적이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온라인 여론을 조작해주는 곳에 대가를 지불하고 일을 맡기는 의원들이 생겨났다. 지금 민주당의 김경수 의원이 사건에 휘말리긴 했지만, 우리 쪽 의원들도 여기에서 자유롭진 못할 것이다.”
수요가 늘어나면 공급도 자연스레 따라가는 법이다. 돈을 받고 댓글 등을 달거나 검색어 순위를 올려주는 전문 업체들의 은밀한 활동도 몇 년 전부터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한다. 3~4명의 소규모 그룹도 있었지만 10여 명 정도가 속해 있는 곳도 있었다. 이들의 주 고객은 정치인들이었고, 액수는 업무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댓글을 다는 것의 경우 건당으로 정산이 됐다는 전언이다. 댓글을 많이 달면 달수록 수익도 늘어나는 셈이다.
실제로 이와 같은 업체를 운영했던 한 정치권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다. IT업계 출신이기도 한 이 관계자는 3년여 전 서울 당산역 인근에 사무실을 차리고, 직원 4명을 고용해 댓글 조작 등의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업계를 떠나 지금 상황은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 드루킹 파문으로 초비상 상태일 것이다. 2016년 총선 때, 그리고 박근혜 탄핵 정국과 지난해 대선 때 업계는 호황이었다. 일이 넘쳐나 경쟁이 치열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정치인들이 온라인 여론 관리에 신경을 쓰면서 업체가 부쩍 많아졌다. 처음엔 개인이 하는 곳도 있었는데 점점 규모가 커졌다. 특정 정치인만을 위해 활동하는 업체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댓글을 달더라도 티 나지 않게 다는 등 나름대로 노하우도 생겨서 업체들 간 평판도 나오곤 했다. 한 집단은 네거티브 공격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해지면서 선거 때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정말 집요하게 경쟁 후보 공격을 하더라.”
드루킹 사건은 이러한 사례들과 다소 결이 다르긴 하다. 김 아무개 씨(필명 드루킹)가 정치권으로부터 요청을 받은 것도 아니고, 돈이 오간 흔적도 아직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정치적 의도 하에 댓글 조작 등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수사 결과에 따라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특검을 주장하고 있는 야당은 김 의원 측과 관계가 틀어지기 전에 김 씨 등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의 자금 출처 역시 짚어봐야 할 포인트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부분에서 야당도 떳떳하긴 힘들다는 지적이다. 드루킹 사건 후폭풍이 여권을 넘어 정치권 전체를 겨눌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