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패밀리 밀려나고 충성파 세바퀴 급부상
▲ 이명박 대통령의 권력 운용에 청와대 수석들 입김이 세지고 있다. 왼쪽부터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이명박 대통령, 박형준 정무수석, 이동관 홍보수석. | ||
그런데 여론 정치에 둔감했던 이 대통령은 조각에서 참담한 패배를 맛보게 된다. ‘고소영·S라인’(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서울시청 인맥)이라는 조롱조의 비판에 정권 출범 초반부터 최대의 시련을 겪게 된다. 이는 권력 운용의 대원칙을 세우지 않고 10여 개의 인맥 군을 나눠 먹기식으로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생긴 결정적 실수였다. 이 과정에서 ‘형님’ 이상득 의원이 만인지상의 위치에서 권력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두 번의 개각과 두 번의 청와대 개편을 통해 서서히 권력 운용의 구도를 ‘로열패밀리’ 중심에서 ‘충성 돌격파’ 위주로 바꿔나가고 있다. 집권 3년차를 맞이하는 이명박 정권의 핵심 권력 라인을 따라가 봤다.
이명박 대통령의 권력 운용 구도는 역대 대통령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견과 부정적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가신정치로 대표되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그들의 측근들이 임기 내내 권력 실세로 활동했고 대부분 주군과 함께 임기를 끝까지 마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국회의원 시절부터 함께했던 이광재 의원 등의 보좌진 출신들을 정권이 다할 때까지 데리고 있었다. 이들 대통령의 측근들은 각종 비리에 연루되는 등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핵심 그룹이 정권의 정체성을 끝까지 유지시켜 나갔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경우 그를 대통령으로까지 밀어 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최측근들이 지금도 그의 주변에 포진해 있는 게 아니다. 지난 2002년 서울시장 재직 때부터 그의 대통령 당선에 1등 공신으로 활약했던 정두언 의원은 인수위 출범 초기에 이 대통령과 멀어진 뒤 지금까지 비주류로 움츠려 있다. 또한 한나라당에서 그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이재오 전 최고위원도 1년 동안의 ‘유배’ 끝에 간신히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예전의 ‘파워맨’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그리고 ‘형님’ 이상득 의원의 영향력은 정권 출범 뒤부터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역대 대통령과 달리 왜 이명박 정권에서는 전통적인 측근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 첫 번째는 CEO 출신인 이 대통령이 권력 운용에서도 ‘효율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친이 직계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기업가 출신이기 때문에 명분이나 인연보다는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게 몸에 밴 사람이다. 그래서 권력 운용 스타일도 일과 능력 중심에 따라 변화를 준다. 이는 그간의 관계나 인맥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새로운 인재를 등용할 수 있는 배경이된다는 점에서 신인 탄생의 길을 열어주는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학습 능력이 빠른 이 대통령이 국정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면서 전통적으로 의지해오던 그룹들이 필요 없어지게 되었다는 ‘용도 폐기론’이다. 친이그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정치 문외한인 이 대통령이 촛불정국 등을 거치면서 그동안 의지해오던 원로그룹의 ‘유약한’ 조언이 별로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들은 현안을 막는 것에만 급급했을 뿐 정국을 치고 나갈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소통과 타협을 중요시하는 이상득 의원 중심의 정무 전략으로는 임기 내내 야당과 친박그룹의 ‘묻지마 반대’에 부딪혀 질질 끌려만 다닐 것으로 내다봤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여준 이 대통령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올해 8월 청와대 개편과 정운찬 총리 기용의 9·3 개각을 통해 정국의 주도권을 한꺼번에 되찾으려 했고 그 도구가 바로 세종시 문제였던 것이다. 세종시와 4대강 등을 주도하고 있는 이 대통령은 현재 정국의 최 정점에서 야당과 친박그룹을 요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 번째 이유로 이 대통령의 ‘냉혹한’ 면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를 오랫동안 보좌해온 소장파의 한 관계자는 전통적 측근들과의 ‘관계’가 약한 이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두고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대표적인 감탄고토 식의 권력 운용”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그는 이어 “(공장에서) 기계는 항상 최고의 효율성을 갖춘 완벽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는 사람의 영역이다. 조금 모자라고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오랫동안 쌓은 인간적인 신뢰 관계가 결국 주군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경우 오랜 인연을 그리 중시하지 않는 것 같다. 측근들은 항상 그 앞에서 조심하는 게 몸에 뱄다. 자칫 밉보이면 두 번 다시 그 사람을 쓰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은 덕이 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인간적 관계보다 일 중심의 권력 운용은 청와대의 ‘슈퍼 3인방’을 잉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박형준 정무수석,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이동관 홍보수석은 이 대통령과의 인연이 거의 없이 최고의 실세 자리에 오른 정치적 행운아들이다. 이들에게는 정권이 끝날 때까지 그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점에서 ‘청와대 순장 3인조’라는 비장한 닉네임도 덧붙여졌다. 물론 이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얻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영광의 별명이다.
박 정무수석의 경우 원래 정두언 의원 등과 친분이 깊은 소장파 출신이다. 그래서 지난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에도 이상득 라인의 견제로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야 했다. 하지만 이 의원 측의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면서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청와대에 사무실도 없는(정부청사 창성동 별관 사용) 홍보기획관이라는 어정쩡한 위치에 선 데다 이동관 당시 대변인 등의 견제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하지만 9월에 정무수석에 오른 뒤 세종시 문제로 이 대통령이 가장 자주 찾는 참모로 올라섰다. 그는 중앙일보 기자 출신의 현장 감각과 학자(동아대 사회학과 교수)의 이론을 겸비한 여권 최고의 정무 테크니션으로 통한다. 그는 애초에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이 대통령의 강한 설득에 이끌려 ‘세종시 수정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박 수석은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직후부터 ‘이상득-이재오의 2선 후퇴와 이 대통령의 재산헌납’ 등을 주장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 “박 수석은 소장파 출신으로 기존 원로그룹의 점진적 퇴진을 주장해온 것으로 안다. 그 결과 이 의원이 지난 6월 2선 후퇴를 선언하면서 ‘형님 논란’은 자연히 수그러들었고,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국민권익위원장으로 복귀했지만 향후의 정치적 입지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일단 정국 개입 논란은 잠잠해진 측면이 있다. 현재의 여권 권력 구도는 평소 박 수석이 생각하는 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세종시와 4대 강 살리기 사업의 주무 수석인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은 성균관대 교수 출신이다. 17대 비례대표 의원을 지냈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자 의원직 도전을 포기하고 정무수석직을 맡았다. 그는 이 대통령과 별다른 인연이 없지만 사무실에서 먹고 자는 특유의 워커홀릭 자세로 촛불정국의 인사 한파도 이겨내고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는 부하 직원들에게 “지금이 내 인생의 정점이며,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란 말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운찬 총리처럼 야구광인 그는 기자에게 “추신수 선수가 미국에서 마이너리그 생활을 할 때도 언젠가는 메이저리그에서 크게 성공할 것으로 확신했다. 재미있는 야구를 자주 못 보는 게 좀 섭섭하긴 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 슈퍼 3인방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는 인사는 이동관 홍보수석이다. 그는 이명박 캠프에 대선 6개월여 전에 합류해 현재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MB정권 최대의 행운아로 통한다. 그는 대선 캠프 초기만 해도 나경원 의원 등 당시 캠프의 홍보라인 말석에서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돌아다니며 술 따르기 바빴을 정도로 그 입지가 미약했다. 하지만 민첩한 일 처리와 언론인 등과 접촉해 얻은 고급정보로 단번에 이명박 대통령의 옆자리를 꿰차게 됐다.
다음은 인수위 시절 이 수석을 곁에서 보좌한 한 인사가 전하는 ‘발 빠른 이 수석’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 지난 2008년 1월 어느 날, 인수위 회의 내용이 다음날 그대로 언론에 보도되자 이 대통령이 새벽 6시에 이동관 수석에게 전화해 “유출자를 즉시 색출하라”는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에 이 수석은 즉시 홍보라인 관계자들을 총소집해 보도 내용과 관련이 있는 회의 속기록을 일일이 기사 인용 부분과 대조해가며 누가 발설했는지 찾았다고 한다. 그 결과 신문의 보도 내용이 속기록과 일치하는 게 없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마치 한 사람의 얘기처럼 해서 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수석은 명령을 받은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그 사실을 즉시 이 대통령에게 알려 유출자 색출 파문을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당시 이 수석은 빠르게 상황판단을 해 이 대통령이 매우 흡족해하며 칭찬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도 이 수석은 비상 상황 발생 때 정보라인을 총동원해 이 대통령이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기 때문에 계속 주군의 호출을 받는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 수석은 정보라인 관리에도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원 등 기존 정보라인보다 이 수석의 정보보고를 더 신뢰하고 있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수석의 장수 비결은 개인의 업무능력보다는 처세술 덕분이라는 시각이 있다(정치권에서는 이 수석이 워싱턴 특파원 시절 이 대통령과 만나면서 인연을 맺고 ‘MB맨’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각에서는 이 수석이 원래 ‘DJ맨’이라는 설도 있다). 그리고 이 수석은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기 위해 각종 정보를 선점해 보고한다고 하는데, 특히 정보 취합을 위해 언론사 간부들을 수시로 접촉하는 등 정보 수집에 가장 열성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당 의원들 사이에선 이 수석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측면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현재 당 내에서는 이 수석이 ‘여당 의원들은 무조건 반대만 할 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대통령에게 심어주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본인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이런 오해들은 적극 불식시켜야 하지 않겠나. 어떤 사람들은 ‘이 수석이 이 대통령에게 듣기 좋은 보고만 올리는 등 왜곡된 보고를 하고 있다’라며 불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또한 여권 일각에서는 “최근의 예산안 정국이 경색된 것도 이 수석이 주도하는 강경책 때문”이라며 그의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