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에브라히미 ‘마녀사냥’ 당해…수사 결과 다른 여성으로 밝혀졌지만 자국내 활동 못해
1981년에 태어난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테헤란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면서 18세에 첫 단편영화를 만든 꿈 많은 아티스트였다. 이후 사회적 이슈를 뷰파인더에 담는 사진작가로도 이름을 떨치던 그녀는 배우 활동을 펼쳤고 2006년 ‘나르게스’라는 TV 드라마로 스타덤에 오른다. 이란 엔터테인먼트 사상 최장수 에피소드였고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나르게스’는 그녀의 데뷔작. 이 드라마로 얻은 ‘배드 걸’ 이미지는 영화계로 진출하는 발판이 된다.
그러나 막 탄탄대로에 접어든 25세의 여배우는 예상치 못한 일에 직면한다. 당시 이란 사회를 강타했던 섹스 동영상의 주인공으로 지목당한 것. 20분 정도 길이의 클립엔 좁은 침대에서 한 여성과 한 남성이 섹스를 나누는 장면이 담겨 있었는데, 유통되는 영상의 퀄리티가 높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에브라히미라고 여겼다. 외모의 유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란의 미디어 보도에선 두 남녀가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았고, 남성에 대해선 ‘미스터 엑스’로 지칭했다. 동영상은 2004년 정도에 촬영된 걸로 여겨졌고, 2006년 초부터 불법 카피된 DVD를 통해 유통되었는데 대략 10만 장 정도로 추산되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400만 달러에 달했는데, 이란 영화 역사에도 이 정도 매출을 올린 작품은 없었다. 2006년 섹스 동영상은 이란 엔터테인먼트 사상 최대 블록버스터였던 셈이다. 유출 경로는 우연이었다. ‘미스터 엑스’는 자신의 노트북을 중고 시장에 내놓을 때 그 영상을 지우지 않았고, 그 결과 엄청난 광풍이 일기 시작한 셈이다.
에브라히미는 마녀 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전면 부인했다. 과거 남자친구가 헤어진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자신과 닮은 여자를 섭외해 그런 영상을 찍어 고의로 유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란 당국은 이후 에브라히미의 공식 발언을 막았고, 그녀의 침묵이 길어지자 루머로 자살설까지 돌았다. 결국 모든 논란을 종식시키려 에브라히미는 이슬람 지역 뉴스 에이전시인 ILNA를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밝혔고, 아울러 이란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 부르짖었다.
하지만 이란 사회는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국가적 수치”라고 했고, 강경주의자로 유명한 검사장 사에드 모르타자비는 특검을 지시했다. 정치인들 중엔 극렬 발언을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고르바날리 도리-나자파바디는 에브라히미를 돌로 쳐 죽이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에브라히미의 모든 활동은 중단되었고 ‘나르게스’에서도 하차했으며 드라마는 서둘러 종영했다.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들은 개봉 보류 판정을 받았고 ‘히달루 여행’이라는 작품은 문화부 장관이 직접 검열했다. 그 결과 장관은 “좋은 작품이지만 에브라히미가 등장하는 장면이 없어야 상영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장면을 삭제하거나 재촬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감독인 모자타베 라에이는 거부했다. 이에 장관은 ‘파트와’(이슬람 법에 따른 결정이나 명령)를 따르지 않으면, 에브라히미와 관련된 그 어떤 작품도 대중에게 공개될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을 밝혔다.
대중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이슬람에 토대를 둔 보수적 권력 집단의 강경한 입장에 비해, 이란 국민들은 의외로 쿨한 반응을 보였다. 동영상 속 주인공이 실제로 에브라히미라 할지라도 별 문제없다는 태도였고, 그녀에 대해 도덕적 비난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이때 그녀는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소란이 있은 후에 나도 그 동영상을 보았지만, 그 안의 여성은 내가 아니다. 닮았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메이크업을 통해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편집이나 다른 효과를 통해 더욱 유사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결국 모든 건 경찰의 손에 넘어갔고, 2006년 12월에 비밀리에 8명이 체포되어 수사를 받았다. ‘미스터 엑스’로 지칭되었던 남자는 아르메니아로 도망쳤다가 체포되어 인도되었는데, 경찰 증언에서 과거 잠시 ‘무타’ 관계, 즉 시아파에서 인정하는 일시적 결혼 관계였던 여성과의 관계를 찍은 거라고 말했다. 나머지 관련자 7명에 대해선 수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고, 결국 ‘미스터 엑스’는 재판을 거쳐 감옥에 갔다. 에브라히미는 그 어떤 법적 처분도 받지 않았지만 이란에서의 활동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국 그녀는 프랑스로 이주해 활동하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섹스 동영상 사건이 범람했던 21세기, 엄격한 율법 속에서 청정 지역처럼 여겨졌던 이란에서 일어난 2006년의 사건이 이 사회에 미친 영향을 매우 컸다. 2007년 6월 이란 의회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포르노 제작에 관련된 사람을 사형까지 시킬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란 사회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란이 윤리적으로 섬처럼 폐쇄된 사회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그 흐름은 최근 여성 인권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