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표 정책’ 터닦기 지선 전 뚝딱
▲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들어 부쩍 ‘마이웨이’를 외치며 초강경 드라이브를 펼치고 있어 그 배경에 대한 추측이 분분하다.청와대사진기자단 | ||
그런데 특히 정치권이 주목하는 부분은 한명숙 전 총리와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의 비리 수사로 촉발된 사정정국 조성의 배경이다. 최근 이 대통령은 검찰에 사회지도층과 지방 토착세력 비리에 대해서도 공세적 대응을 또 다시 주문, 사정정국이 예상보다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2010년 지방선거 전까지 공기업과 지방자치단체 등 사회 전반에 대대적인 사정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이 대통령이 한 치의 타협도 없이 정국을 ‘일방주의’로 몰고 가는 것에는 2010년 지방선거 전까지 각종 개혁 정책의 토대를 어느 정도 닦아놔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라는 청와대 측의 설명이 뒤따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민주당 옥죄기를 통한 야권 분열과 한나라당 장악력 제고라는 칼날이 숨어 있다. 세밑 정국에 몰아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초강경 드라이브 막후를 추적했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의 화법을 보면 대부분 직설적이다. ‘할 수밖에 없다’ ‘안 하겠다’ ‘결코’ 등의 말을 자주 쓴다. 그런 단정적인 용어는 명확한 신념과 신속한 행동이 전제돼 있을 때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정치용어치고는 너무 극단적이다. 퇴로를 만들지 않고 공격 일변도의 용어만 사용한다. 그러다 자칫 그 정책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자신이 쏜 화살이 고스란히 그의 심장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런 점은 지난 4월 재보선에 참패하면서 위기감에 휩싸여 중도실용 카드를 꺼내들었을 때의 신중한 발언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사실 지난 4월 재보선 참패 뒤 정운찬 총리 임명 등 과감한 중도노선 채택과 여론을 경청하는 듯 보이던 이 대통령은 지난 12월 들어 부쩍 ‘역사와의 대화’를 강조하며 ‘마이 웨이’를 외치고 있다. 왜 그는 최근 들어 ‘거침없는 하이킥’을 연타로 날리는 것일까.
우선 이 대통령이 최근의 국정 운영에서 ‘과도한’ 자신감을 얻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철도노조 파업 때 강경대응을 주문, 노조의 항복 선언을 받아낸 것을 들 수 있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파업 대책과 관련해 ‘허준영 철도공사 사장도 기관사 교육을 받으라’고 하자 허 사장도 그 지시에 매우 놀랐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그 정도로 강하게 나오자 철도노조도 사실상 두 손 들고 항복한 것 아닌가. 이 대통령은 이 사건을 통해 ‘법과 원칙’에 대한 평소의 자신감을 더욱 강하게 가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당시 한나라당 일부에서는 ‘강성노조인 철도노조에 대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후유증도 클 것’이라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 대통령의 강공 드라이브가 먹힌 꼴이 됐다. 실적으로만 얘기하는 이 대통령이 그 뒤 얼마나 더 큰 자신감을 얻었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과도한 자신감은 지지층의 열혈 응원으로 더욱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김진홍 목사 등 사적 라인이 민심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너무 ‘달콤한’ 말만 전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김 목사는 최근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을 위해 예배를 집도한 것이 알려지면서 또 다시 종교편향 구설수에 올랐다(김 목사가 지난해 3월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을 위해 예배를 한 것이 알려져 파문이 일자, 이 대통령은 그 뒤 ‘청와대에서 목회자를 불러 예배를 드리지 않겠다’라고 약속했지만 최근 그것을 번복하고 예배를 한 것이 일부 종교계의 반발을 불렀다). 김 목사는 당시 예배에서 이 대통령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며 “대통령도 격려가 필요하고 박수가 필요하다. 힘을 북돋아드리는 것이 국가 이익에 좋은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 목사는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해 이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지지한 데다 세종시 수정안 문제 등에 대해서도 강경파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세종시 (수정) 문제가 잘될 것으로 믿으며, 안 될 이유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만만치 않아도 설득해나가는 게 국정운영으로, 반대가 있다고 안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해 이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든든한 지원군을 자임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 목사 등 사적 라인에 귀를 활짝 열어놓은 이 대통령이 반대파의 목소리를 열린 자세로 들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그의 넘치는 자신감은 ‘일방통행식 소통’에서 나오는 왜곡의 산물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2010년 지방선거 때까지 강경 드라이브를 계속 주도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그의 발언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 많다. ‘준예산 준비 카드’ 발언과 ‘세종시 수정안 절대 관철’ 의지를 재차 밝힌 것 등은 정국에서 한 발짝도 밀리지 않겠다는 불퇴전의 각오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준예산 카드 압박은 민주당을 ‘대안 부재의 무능 야당’으로 낙인찍어 지방선거 전에 국민들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장기간의 예결위장 농성으로 지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이강래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인사 청탁 사건에 연루된 정세균 대표도 자리가 흔들리는 상황이라, 민주당 지도부가 무조건 예산안 비협조로 일관할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도 이 대통령의 압박 카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은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대화 국면 조성을 위해 제안한 ‘3자회담’도 일언지하에 차버릴 수 있게 되었다.
세종시 수정안도 한때 여권 주류에서 ‘포기론’이 대세를 이룰 정도로 상황이 부정적으로 흘러갔지만 이 대통령이 최근 정면대응으로 확실하게 스탠스를 잡아 이제 ‘올 오어 낫싱’의 게임이 되어버렸다. 최근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에 대해 “세종시 문제는 역사적 책임의식을 갖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도포기는 없다. 정치적 자살골이 되더라도 임기 내 풀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는 지금도 확고한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이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안 책임은 나에게 있다”라며 책임 소재도 분명히 밝힐 만큼 관철 의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최근 이 대통령은 세종시 문제의 정치적 후유증을 우려하는 청와대 참모들을 “세종시 문제만큼은 내 뜻을 좀 따라 달라”며 여러 번 간곡하게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일방적 정책 추진에 대해 친박그룹은 물론 중립성향의 한나라당 의원들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어 여당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전망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민주당의 4대강 정비사업 반대도 명분이 없다”며 여당의 강경 일변도 대응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는 군사독재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무조건 반대를 하던 시대는 갔고 야당도 대안을 제시해 여당과 정책 대결을 하는 쪽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은 민주당의 4대강 정비사업 반대를 제2의 청계천 신화를 우려한 방해공작에 불과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4대강 정비사업을 타협 불가능한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고집한다면 여당 지도부도 협상에 대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청와대 주변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지율과 국정운영에 대한 여론조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고, 지지율 하락추세에 대해 극도로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지지율 현황이다. 지난번에는 여론조사 결과를 늦게 보고해 호되게 질책을 당할 정도였다. 세종시 등 각종 현안들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가운데, (이런 현안이 지지부진할 경우) 2010년 지방선거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특유의 자신감과 지지층의 응원을 등에 업고 정권 출범 이래 최대의 빅 이슈들을 한꺼번에 몰아붙이며 ‘모 아니면 도’식의 도박을 진행 중이다. 과연 그 역풍의 첫 바람은 어디에서부터 불어올까.
사정정국 몰아치기 노림수
야권 옥죄고 여권 꼭 쥐고…
▲ 공성진 의원(왼쪽)과 한명숙 전 총리. | ||
먼저 이명박 정권 출범 3년을 맞아 느슨해진 공직사회의 나사를 다시 죌 수 있다. 역대 정권에서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권력 누수 현상이 심각해진 것을 감안하면 지속적인 사정정국 조성은 공직사회의 기강을 다시 잡을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한다. 특히 공직사회의 비리와 교묘하게 연결되고 있는 공기업에 대한 대대적 사정이 임박해 있다. 청와대 민정라인은 이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지난 9월 초부터 총리실 국정원 감사원 경찰 등을 통해 입수한 유력 공기업 60여 개에 대한 비리 내사자료와 경영개선 자료를 취합해 대상기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사정정국 조성을 통해 관가뿐 아니라 여당도 더 확실히 장악할 수 있다. 최근 ‘골프장 게이트’로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공성진 의원은, 지난 대선 때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이명박 캠프의 핵심 라인이었고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대리인’ 격으로 정권 핵심 실세였다는 점에서 여당이 받은 충격은 컸다. “공 의원 정도가 저렇게 날아가면 나는 어떻게 할까”라는 의원들의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여기에 최근 3선의 중진 박진 의원도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어 여당은 더욱 한랭전선에 들어서 있다. 이런 당의 움츠린 분위기는 이 대통령이 설령 세종시 문제로 죽을 쑨다 해도 ‘감히’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방어기제 역할을 하고 있다. 사정 정국 그 자체로 내부 단속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또한 사정정국은 친박그룹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친박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이제 우리 차례다”라는 말들도 나온다.
특히 부산·경남지역 일부 중진 의원들이 타깃이라는 구체적인 이야기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모 건설단체회장이 주로 친박 중진 의원들에게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뿌린 것이 향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런 사정 분위기는 향후 친박그룹이 세종시 문제에 대해 당론 결정을 위한 표결을 할 때 섣불리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못하도록 하는 위협요소가 되고 있다. 실제로 친이그룹에서는 당론 표결 때 ‘골수’ 친박을 제외하면 한번 해볼만 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사정정국 자체가 한나라당의 계파 분열 악화를 막는 방파제로 작용할 수 있다.
사정정국은 민주당뿐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에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제1야당의 수장인 정세균 대표가 현재 공기업 사장 인사 청탁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 대상에까지 올라 있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명숙 전 총리가 뇌물수수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것과 관련해 “(검찰에서) 나도 뒷조사를 다 했다는 말을 들었다. 한번 해봐라. 기다리고 있다. 한 총리가 쓰러지면 나를 공격할 것이다. 한 총리가 안 쓰러지면 나도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검찰의 사정칼날이 민주당뿐 아니라 친노그룹이 주축인 국민참여당으로까지 확대된다면 지난 10년 동안 진보정권의 핵심이었던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 한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위축돼 있는 진보진영의 힘을 최대한 빼놓아 차기 대선에서 보수 세력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