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후보도 제대로 못내…정체성 논란 속 호남서 살아남기 총력전
평화당 소속의 한 지방선거 출마자는 “창당 3개월이 지났지만 현장을 다녀보면 아직도 우리 당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 기호 4번 달고 다니면 ‘거기가 무슨 당이냐’고 물어보셔서 평화당이라고 답하면 ‘그런 당도 있어요?’라고 하더라”고 하소연했다.
지난 2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평화당 창당대회에서 조배숙 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박은숙 기자
평화당은 지난 4월 2일 정의당과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하며 존재감 띄우기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반면 평화당과 손을 잡은 정의당은 6석의 소수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바른미래당(30석)과 평화당(14석)을 정당 지지율에서 앞서는 이변을 연출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5월 2~4일 전국 성인 2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5월 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지지율은 53.9%였고, 자유한국당 17.9%, 정의당 6.3%, 바른미래당 6%, 평화당 2.9% 순이었다(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다. 전국 성인 3만 5184명에 통화를 시도해 총 2002명이 응답을 완료, 응답률은 5.7%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확인하면 된다).
평화당은 낮은 지지율 탓에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둔 시점임에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광역단체장 후보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경기지사에 부좌현 경기도당 위원장, 인천시장에 허영 인천시당 위원장, 대전시장에 서진희 대전시당 위원장, 부산시장에 배준현 부산시당 위원장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출마를 망설이고 있다. 그 외 다른 지역은 하마평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평화당의 지역 기반인 호남도 상황이 좋지 않다. 광역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이들이 없어 당 지도부가 후보자 물색에 진땀을 흘렸다. 광주시장 후보는 아직도 구하지 못했고, 전북과 전남 지사 후보는 결국 경선 없이 추대 형식으로 결정됐다.
대전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서진희 대전시당 위원장은 출마를 망설이고 있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무래도 선거비용 보전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며 “광역단체장 선거는 시의원, 구의원과는 선거비용 규모 자체가 다르니까 당에서 후보로 추대해준다고 해도 출마자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방선거에서 득표율 15%가 넘으면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받을 수 있고, 득표율이 10%를 넘으면 절반을 보전받을 수 있지만 그 이하는 비용을 보전받지 못한다. 광역단체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득표율 10%를 넘지 못하면 후보자 개인이 수십억 원의 선거비용을 떠안을 수 있다.
평화당이 지지율 정체에 빠진 이유에 대해서는 “당이 만들어진지도 얼마 안됐고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 그런 것 같다. 지역을 돌면 평화당 존재 자체를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면서도 “당이 생존하기 위해서 또 정의당, 민주당과의 합당, 통합 등을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지역마다 민생 속으로 들어가서 바닥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평화당 유일의 수도권 광역의원인 최판술 서울시의원은 “우리 당이 소수정당이다 보니까 미디어 노출 빈도수가 너무 적어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것 같다”면서 “(같은 소수정당인) 정의당의 경우는 그래도 역사가 길고 전국적인 지역기반도 있는데 우리 당은 이제 시작하다보니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 광역의원 중 유일하게 평화당에 합류한 이유에 대해서는 “평화당으로 간 정호준 전 국회의원과 동지애를 가지고 의정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의리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 함께하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당 전직 당직자는 “평화당의 어려움은 이미 예견됐던 것”이라면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합당 반대가 평화당의 가장 큰 창당 명분이지 않나. 그런 창당 명분은 국민들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감동은커녕 공감을 얻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 당직자는 “바른미래당에는 안철수나 유승민 같은 대표 얼굴이라도 있는데 평화당에서는 그런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 또 평화당 소속 국회의원 지역구가 모두 호남이다. 지지기반이 호남에 치우쳐 있으니 다른 지역에서 지지율이 잘 나온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라며 “진보 텃밭인 호남이 지지기반인데 평화당이 진보야당인지 보수야당인지 헷갈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정체성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보수야당들이 드루킹 사건 특검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정의당은 공조하지 않고 있지만 평화당은 공조하고 있다. 최저임금 이슈에 대해서도 장병완 평화당 원내대표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중소 상공인들의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비판했다. 조배숙 평화당 대표는 출범 1주년을 맞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대북정책은 기대 이상으로 잘했지만, 나머지는 낙제 점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보수야당들과 당 정체성이 더 비슷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평화당은 정체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호남지역 지방선거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소속 국회의원 전부가 호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어 지역 조직력은 밀리지 않는다는 게 자체 평가다. 호남지역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으면 호남판 자민련으로라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호남지역에서도 민주당과의 지지율 차이가 커 평화당이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내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평화당이 생존을 위해 정의당이나 민주당과 통합 또는 연대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가능성도 점쳐지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공동교섭단체를 꾸린 정의당조차 평화당과의 통합이나 선거연대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의당은 공동교섭단체를 꾸리면서도 당 내부의 반발이 너무 심해 당 지도부가 당원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을 정도다. 당시 당 지도부는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하면서 선거 연대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제1당을 사수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지만 평화당과의 통합, 연대에는 반대하는 기류가 뚜렷하다.
앞서의 민주당 전직 당직자는 “평화당에 계신 분들이 사실 예전에 민주당에서 갈등을 많이 일으켰던 분들 아닌가. 그런 분들이 모두 나가준 덕분에 지금 민주당이 내부 갈등 없이 잘 돌아간다는 평가도 있다”면서 “제1당을 빼앗길 위기가 오더라도 평화당과의 통합보다는 무소속 의원이나 개별 의원 포섭이 우선순위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