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에피스 지분‘ 종속기업일 땐 현재가치 반영…관계기업으로 성격 바꾼 뒤엔 시가 처리
회계(accountancy)는 정보이용자가 합리적 판단이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식별하고 전달하는 과정이다. 일종의 표현방식이다. 회계를 통해 해당 기업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에 대한 삼성의 논리는 삼성바이오에피스 합작사인 바이오젠이 지분 50%-1주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하면 지배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바이오젠과 맺은 협약에 따라 경영권 행사에는 52%의 지분율이 필요하다는 근거다. ‘종속기업’이 아닌 ‘관계기업’이니 시가평가했다는 것이다.
금감원의 논리는 콜옵션 계약을 사전 공시하지 않았고, 옵션도 아직 미행사돼 ‘관계기업’이 아닌 ‘종속기업’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시가평가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이익을 부풀린 것은 회계조작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기준이 바뀔 때 또 다른 곳에서도 삼성의 비상장사 가치평가가 이뤄졌다. 삼성종합화학(현 한화종합화학)이다. 당시 삼성종합화학은 프랑스 토탈과 삼성토탈의 공동경영 체제였다는 점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와 닮았다.
인천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진=연합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닮은 꼴 삼성종합화학=한화에 매각한 삼성토탈(현 한화토탈)은 삼성과 프랑스 토탈의 공동경영 체제였다. 주식도 50 대 50으로 소유했고, 이사회도 동수로 구성했다. 삼성토탈의 삼성 측 대주주는 삼성종합화학이었다. 비상장 회사라는 점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와 닮은 점이 많다.
한화로 매각하기 전 삼성종합화학의 삼성토탈 지분가치는 1조 2805억 원이다. 당시 순자산가치와 거의 일치한다. 주당 13만 3627원이다. 얼핏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삼성바이오에피스 회계처리와 같아 보인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가치를 산정할 때 미래가치를 크게 인정했다. 반면 삼성종합화학은 삼성토탈의 미래가치를 재평가하지 않았다.
2015년 5월 삼성은 삼성종합화학 지분 57.62%를 1조 309억 원에 한화에 매각한다. 주당 3만 2255원이다. 2014년 말 삼성종합화학 지분 57.62%의 순자산가치는 1조 418억 원이다. 경영권을 포함한 과반의 지분을 ‘웃돈(premium)’도 없이 넘긴 셈이다.
▶미래가치 평가 없이 매각한 삼성종합화학=삼성이 삼성종합화학을 웃돈 없이 매각한 근거는 2014년 경영실적이 매출 1조 1212억 원에 23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낸 데 있다. 하지만 이후 한화종합화학의 실적은 괄목상대할 정도로 높아진다. 매출액은 2015년 1조 5682억 원, 2016년 1조 8101억 원, 2017년 3조 393억 원으로 수직상승한다. 이 기간 순이익도 2388억 원, 4964억 원, 5469억 원으로 급증한다.
한화종합화학의 급성장은 한화토탈의 실적 개선 덕분이다. 한화토탈은 2015년 이후 매출액은 8조 2738억 원, 8조 1853억 원, 9조 6775억 원으로 성장하고, 순이익은 5157억 원, 1조 701억 원, 1조 1029억 원으로 급증한다. 결국 삼성은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의 기업가치가 가장 낮을 때 ‘미래가치’에 대한 고려 없이 한화에 알짜기업을 넘긴 셈이다. 불과 1년 새 경영실적이 개선될 것을 삼성이 예상하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충분히 예상됐던(?) 삼성토탈 실적개선=삼성토탈은 2015년 3월 말 공시한 사업보고서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높은 수요 성장성이 예상되는 파라자일렌 생산 확대를 위해 신규 건설투자를 2011년 12월 13일 이사회 결의를 통해 결정했다. 총 투자비 1조 6600억 원 규모로 2014년 7월 2일 시제품 생산을 성공적으로 개시했다. 당사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에너지 사업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설비투자 자금 투입이 모두 끝난 삼성토탈이 2015년부터 급격히 실적이 좋아질 것이란 사실은 당시 회사 임직원은 물론 업계에서도 모두 알던 사실”이라며 “삼성이 이 같은 점을 매각가에 반영하지 않은 건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편 삼성종합화학의 최대주주가 된 한화에너지는 한화S&C(현 에이치솔루션)의 회사다. 이 회사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자녀가 100% 지분을 가진 개인회사로서 한화그룹 후계구도의 핵심이다.
▶2014~2016년 무슨 일이=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지면서 이재용 부회장 체제가 열린다. 이후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뒤흔들 결정들이 내려진다. 제일모직과 삼성SDS 상장계획이 발표되고,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이 추진된다. 비주력 사업 정리를 이유로 한화에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을 매각하는 빅딜도 나온다.
2015년 2월 대한승마협회 회장사가 한화에서 삼성으로 바뀐다. 한화생명 부회장인 차남규 회장의 임기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다. 5월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 ‘빅딜’이 마무리되고 같은 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계획이 공시된다. 합병은 7월 주주총회에서 승인된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