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열차 지금부터 후진, 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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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전역에서부터 추진력을 얻어 심포역으로 올라가는 열차. | ||
▲길잡이: 중앙고속국도 제천IC→38번 국도→영월→태백→삼척 통리역→나한정역
▲먹거리: 도계읍내에 뚱보냉면(033-541-4049)이 있다. 함흥식, 평양식 모두 잘 한다고 소문이 났다. 면은 속껍질을 완전히 벗겨내 희고 고운 색깔을 띠는 메밀에 감자전분을 약간 섞어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바로 뽑는다. 육수는 한우 양지를 푹 삶은 후 기름기를 완전히 걷어내 맛이 깊으면서도 맑다.
▲잠자리: 나한정에서 흥전을 거쳐 도계로 내려가면 도계모텔(033-541-2552), 성원여관(033-541-4935), 로얄모텔(033-541-5599) 등 숙박시설이 많다.
▲문의: 철도고객센터 1544-7788, 삼척시청(http://samcheok.mainticket.co.kr) 관광정책과 033-570-3846
정동진행 열차 지나는 환상구간
정동진을 향해 가는 열차는 언제나 생기가 넘친다. 우리나라의 중심인 서울 광화문에서 정확히 동쪽에 있는 포구에서 어둠을 뚫고 바다 위로 치솟는 태양을 마주할 생각이 가득하니 마음이 달뜨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 한다. 생각해보라. 무려 6시간 30분에서 7시간 가까이 걸리는 여행길이다. 지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원래 열차여행은 아무런 수고를 할 필요도 없이 (자동차 가속페달을 밟거나 과속감시 카메라를 신경 쓸 필요 없이) 좌석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책을 읽거나, 동행한 누군가와 잡담을 하거나, 식당칸으로 이동해 배를 채우거나, 하릴없이 열차칸을 옮겨다니며 걷거나,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며 감상에 젖거나. 어쨌든 무얼 하거나 자유다.
허락된 자유는 그러나 오래가지 못 한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지나자 열차 내부는 고요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한 사람도 없다. 다만 다른 모든 할 일보다 잠이 필요할 뿐이다. 이 긴 여행을 견디는 데는 잠이 최고다.
그러나 너무 깊은 잠에는 빠지지 마시길. 그랬다가는 통리에서 도계까지 이어지는 환상의 구간을 그냥 지나치고 말 것이다.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강릉까지 열차를 타고 갔노라 말하면 창피한 일이다.
내리지 않아도 정차하는 역
서울을 출발한 지 다섯 시간. 열차는 통리역에 이른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태백시에 속하는 역이다. 이곳에서부터 열차는 속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젖 먹던 힘을 다 한다. 심포리역을 거쳐 나한정역에 이를 때까지 열차는 제동장치의 힘을 최대한 빌리며 서서히 내려온다. 그리고 흥전역에 이르자 완전히 속도를 줄이더니 이윽고 완전히 멈춘다. 내리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렇다. 이곳은 사람이 타고 내리는 역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차가 서는 이유는 스위치백을 하기 위해서다.
스위치백, 자세를 반대로 바꾼다는 뜻이다. 흥전역에서 잠시 멈춘 기차는 후진으로 나한정역을 향해 달려간다. 꽁무니가 머리를 끄는 모양새다. 어리둥절한 순간이다. 기차가 거꾸로 가다니. 스위치백을 한다는 안내방송을 듣고 일어난 몇몇 승객만이 그 순간을 즐기고 있다. 잠에 빠진 이들은 열차가 거꾸로 가는지 어떤지 전혀 알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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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전역(위)과 나한정역 앞을 지나가는 열차(아래). | ||
도움닫기를 위한 스위치백
스위치백은 강원도의 산악지형 때문에 도입된 기차운행 방식이다. 사방이 온통 산이라서 평지를 달릴 수가 없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스위치백이라는 방법을 꺼내 들었다. 열차를 직접 타보지 않았다면 스위치백이라는 방식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기차가 단번에 오르기에는 너무 경사각이 높아서 그 추진력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게 스위치백운행법이다.
삼척시 도계역과 태백시 통리역은 그 해발고도차가 435m에 이른다. 그 거리가 멀다면야 경사로를 오를 추진력을 얻을 수 있겠지만, 두 역 사이의 거리는 겨우 6.3㎞에 불과하다. 경사율이 무려 69‰(퍼밀·천분율)에 이른다. 수평거리 1000m에 수직거리 69m의 경사도라고 이해하면 된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런 경사로를 차고 오르는 열차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계에서 나한정까지 올라온 열차는 흥전역까지 뒤로 운행하면서 길게 뺐다가 다시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 심포리역을 넘어서 통리역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스위치백은 도움닫기와 같은 개념이다. 멀리뛰기나 높이뛰기를 할 때 멀리 뒤로 갔다가 달려 나오는 추진력과 가속력을 이용해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겨우 6.3㎞의 구간을 통과하기 위해 소비되는 시간은 장장 26분에 달한다. 깐깐한 사람이라면 ‘왜 이렇게 열차가 느리냐’고 불평부터 쏟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별한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즐겁다. 때론 앞으로만 달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교훈도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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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전역 부근의 농가. 근처에 이런 오래된 집들이 여럿 있다 | ||
불만을 토로하든 즐겁다고 생각하든 각자 나름이겠지만, 그러한 감정도 ‘얼마’ 지나지 않아 느끼지 못 하게 될지 모른다. 태백시 백산과 삼척시 도계를 잇는 16.24㎞의 국내 최장 터널이 다 뚫렸기 때문이다. 이 터널을 이용하게 되면 통리에서부터 심포리, 나한정, 흥전을 돌아가던 선로는 폐쇄가 된다. 부대공사 등까지 감안하면 2년 정도 후면 운행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강원랜드에서 이 구간에서 관광열차를 운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영동선과 태백선 상하행 70여 차례가 다니던 선로가 정선이나 문경의 레일바이크처럼 상품화되는 것이다.
한편, 나한정역과 흥전역은 자동차를 이용해서라도 찾아볼 만한 곳이다. 승객을 취급하지 않는 간이역이기에 열차로는 창문 너머로나 볼 수 있는 곳들이다. 흥전역은 자동차로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다. 38번 국도를 따라 나한정역에서 도계 방면으로 가다보면 공업사가 하나 나오는데, 그곳에 임도 하나가 있다. 이 겨울에는 길이 얼어붙어 있어서 차량이 오르지 못 한다. 때문에 나한정역에 차를 세우고 그곳을 먼저 둘러본 후 흥전역까지 걸어가면 된다. 물론 미리 나한정 역무원에 신고를 하고 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무시로 열차가 다니므로 철로를 무단으로 횡단하는 것은 위험하니 가장자리에 난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나한정역과 흥전역 사이에는 오래된 산촌의 농가들이 드문드문 있다. 그 풍경이 평화롭게 보인다. 흥전역 끄트머리에는 굴다리가 있다. 그것을 건너면 오른쪽 아래로 도계읍내가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