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의제 ‘비핵화’ 수준에 초미의 관심…판문점 아닌 싱가포르? 종전협정 다소 늦춰질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역사적 첫 북미정상회담이 오는 6얼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회담 장소, 왜 하필 ‘싱가포르’인가
국가 간 회담에서 장소는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해당 국가가 아닌 제3지역에서 ‘회담’이 이뤄질 경우, 그 장소 선정 문제는 테이블에 올려진 주요 협상 카드 중 하나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양자 정상회담의 제3국 장소는 대개 양측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고려될 수 있는 중립적 장소가 선호된다.
결국 북미 양국은 스웨덴, 몽골, 스위스, 미국령 괌, 여기에 마지막 카드로 떠올랐던 판문점도 제쳐두고 싱가포르 개최에 최종 합의했다. ‘일요신문’은 이미 지난 4월 28일 ‘제1355호’ 기사를 통해 ‘싱가포르’를 가장 유력한 장소로 꼽은 바 있다.
앞서 기사에서 밝혔듯이 싱가포르는 여러모로 북미 양국이 만족할 수 있는 중립지대로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장거리 비행이 부담스러운 북한 입장에서 아시아권의 싱가포르는 선호할 만한 곳이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순수 자본주의 서방 세계에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동남아 국가 방문은 지난 1965년 김일성 주석이 ‘반둥 회의’ 10주기를 맞아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이후 무려 53년 만의 일이다.
싱가포르는 북한 대사관이 상주하고 있으며 과거부터 최근까지 김씨 가문 주요 인사들이 드나들던 익숙한 곳이기도 하다. 사업적으로도 여러 이해관계가 있는 만큼 북한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이해관계도 고려된 선택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은 동남아에서의 영향력 확대 및 중국 견제를 위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만큼 싱가포르에서의 역사적 회담 개최는 여러모로 이득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막판 후보지로 올랐던 ‘판문점’의 경우 인프라 부족, 도청, 신변보호 등 보안문제, 여기에 자국 내 반대 목소리 등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미 수많은 국제회의 경험이 있는 싱가포르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중립지대로서 부담도 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링 밖의 주요 행위자이자 막판까지 김정은 위원장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도 화교권 국가인 싱가포르는 나쁘지 않은 장소로 해석된다.
#비핵화 담판 어디까지 가능할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면담한 사실은 이미 대외적으로 공개된 상황이다. 이와 함께 이번 회담을 앞두고 이미 북미 양국은 상당한 수준의 물밑 접촉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 역사적 회담이 확정됐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양국 간 의제가 어느 수준까지 조율됐음을 의미한다.
관건은 결국 가장 민감하면서도 핵심이라 할 의제는 바로 ‘비핵화’ 문제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이고 신속한 비핵화)를 목적으로 한다. 폼페이오 장관의 표현으론 기존 ‘완전한(Complete)’ 대신 ‘영구적인(Permanent)’을 넣어 PVID라 강조하기도 한다.
이는 결국 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장거리탄도미사일 폐기는 물론 핵실험 및 연구시설 폐쇄, 핵물질 농축의 원천인 원심분리기 등 생산라인의 완전한 해체, 여기에 모두가 수긍 가능한 수준의 강도 높은 검증 과정이 모두 전제된다. 더 나아가 미국은 전용을 염려해 북한이 주장하는 과학적 목적의 위성개발 금지도 CVID 개념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현실주의 진영의 한 전직 고위급 외교관은 “CVID라는 것이 굉장히 포괄적이고 복잡한 개념이다. 수만 가지의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이미 과거 수차례에 걸쳐 진행된 북미 혹은 다자간 북핵 협상이 합의안을 만들어 놓고도 얼마 안가 무력화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더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이 자국 본토를 실제 위협하는 ICBM 무력화를 전제로 한 동결 수준에서 핵협상을 마무리 짓게 된다면, 우리 입장이 더욱 곤란해진다는 사실이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어떻게든 유의미한 결론을 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극단적인 경우 이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 전직 외교관은 이어 “이미 앞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자신을 ‘핵보유국’으로서 위치를 강조하며 ‘핵폐기’ 혹은 ‘핵이전’ 거부를 시사했다”라며 “정말 쉽지 않은 협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어느 정도 단계까지 이뤄질지, 또한 그것이 ‘단계적 이행과정’을 전제로 한다면 구체적으로 그 프로세스와 내용은 무엇인지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다. 여기에 이란의 핵 협정 탈퇴가 이번 회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변수로 남아있다.
결국 이에 대한 북한의 반대급부는 ‘체제보장’과 더 나아가 북미 간 정상국가 관계 수립이다. 미국은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이라는 틀 안에서 ‘북미 간 평화협정 및 수교 체결’ ‘즉각적인 경제적 지원’ 등 어떤 선물 꾸러미를 테이블에 올릴지도 관전 포인트다.
#종전협정 교두보 역할에 주목
역시 우리 입장에서 가장 큰 관심을 두는 부분이 ‘종전’이다. 그동안 북한은 한국을 ‘종전 당사국’으로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 ‘종전’ 추진을 포함시켰다. 이는 사실상 북한이 처음으로 한국을 종전협정 당사국 지위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그동안 내심 판문점이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정해지길 기대해 왔다. 정전협정의 상징적 장소인 판문점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비핵화는 물론 앞서 남북 정상 간에 합의한 연내 ‘종전협정’ 추진도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심 바라던 ‘판문점 카드’는 물 건너 갔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이에 대해선 상당한 아쉬움을 삭히고 있는 모양새다. 제3국인 싱가포르에서 북미회담이 개최되기 때문에 다음 단계인 ‘종전선언’은 좀 더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번 북미정상회담 과정에서 핵심 의제인 ‘비핵화 협상’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된다면, 또 다른 정전협정 당사자였던 중국 역시 ‘종전협정’에 대한 지지의사를 피력한 만큼 교두보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당장 회담 다음 달인 7월 27일은 정전 65돌이 되는 날이다. 일각에선 북미정상회담 이후 이날을 즈음하여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이 이뤄질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