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 계단·예쁜 담벼락 헐릴 날 멀잖다
▲ 해망동을 지키는 흰둥이가 낯선 이의 발자국 소리를 귀신같이 알고 컹컹 짖어댄다. | ||
예술 통해 재탄생한 동네
해망동은 내항을 끼고 있는 군산 서북쪽의 동네다. 해망동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피난민들이 하나둘씩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동네다. 가진 돈이라고는 하나 없이 몸도 보존하기 힘들었던 피난민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으니 마을의 행색 또한 초라하다. 집들은 첩첩이 올라타며 산을 향해 오르고, 골목길은 모세혈관처럼 구석구석을 누빈다. 마치 시간이 이곳에서만 흐르지 않는 듯 마을의 모습은 형성 당시 그대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온기 가득하던 집들이 점점 비어간다는 사실.
해망동에선 지난 2006년 공공미술프로젝트가 진행됐다. 프로젝트명은 ‘천야해일, 하늘은 밤이지만 바다는 낮.’ 28명의 예술가와 시인 소설가들이 참여해 석 달 동안 해망동 구석구석 그림을 그리고 시를 적었다.
해망동은 한때 잘나가던 동네였다. 비록 피난민들이 모여 살긴 했지만, 바로 앞에 군산 내항이 있어 수산업과 합판업으로 한동안 호황을 이루었다. 흥남동·중동과 함께 군산 3대 동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금강하구둑이 생기고 또한 외항이 건설되면서 내항의 호시절은 갔다. 동시에 해망동의 봄날도 갔다. 공공미술프로젝트는 그런 해망동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작업이었다. 프로젝트 이후 많은 구경꾼들이 동네로 몰려들면서 잠자듯 조용했던 동네가 깨어났음은 물론이다.
그림과 시를 만난 골목
해망동 왼쪽 끄트머리에서부터 골목여행을 시작해본다. 해망굴이 곁에 있다. 해망굴은 1926년 뚫린 터널이다. 중앙로와 내항을 직선으로 연결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것이다. 굴은 길이가 131m, 높이가 4m 규모다. 보다 쉽게 내항으로 문화재며 쌀 등의 물건을 옮기기 위한 굴이다. 그렇게 옮겨진 것들은 내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해망굴은 2005년 등록문화재 184호로 지정됐다.
▲ 가파른 계단은 내려가는 노인. | ||
마치 ‘회자정리’라는 말처럼 골목들은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또 만나기를 반복한다. 골목 구석구석에선 그림과 시를 만날 수 있다. 누추했던 골목이 예술의 힘을 빌리면서 화사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겨우 4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림과 글씨의 칠이 벗겨진 것들이 많다. 관리의 소홀인가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사정은 달랐다.
먼지처럼 흩어질 운명의 동네
사실 해망동은 곧 사라질 예정이다. 군산과 장항을 잇는 군장대교 건설사업 시행에 따른 해망동 개발계획이 진행 중이다. 해망동을 철거하고 거기에 500세대 규모의 보금자리주택을 짓는 한편, 공원화한다는 계획이다. 그 사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벌써부터 빈집이 크게 눈에 띄었다. 슬럼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이 그려졌던 집들 중 허물어진 채 방치되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림과 글씨에 새 옷을 입힌다고 한들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된 것이다.
해망동 골목은 다양한 형태의 계단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눈비가 오면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시멘트를 발라 만든 계단들이다. 젊은 사람들에게야 별 문제 없는 계단이지만, 무릎관절이 불편한 이곳 노인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계단이다. 계단을 타고 비둘기 4~5길에 오르자 북쪽으로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바다를 바라보는 동네’라는 이름 그대로다.
골목을 헤집는데 오래된 이발소가 눈에 띄었다. 간판이 달려 있으나 글자들이 떨어져 나가 알아볼 수 없다. 다행히 유리창에 ‘산해이발관’이라고 적혀 있어 그 이름을 알았다.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방치된 내부로 보아 최소한 4~5년 전쯤 마지막 영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해망동의 운명은 얼마 안 있어 산해이발관을 좇아갈 것이다. 집들은 허물어지고 아름답던 골목도 해체될 것이다. 거기를 채웠던 그림이며 시며, 추억까지도 한 줌 먼지처럼 흩어질 것이다. 아니, 추억만은 동네 골목길을 걷던 이들 모두가 이미 나눠 가졌을 터이다.
▲ 그물망처럼 이어진 해망동의 다양한 계단들(왼쪽). 2006년 공공미술프로젝트로 화사하게 변신한골목의 벽화들이 지금은 많이 퇴색했다. | ||
한편, 해망동이 자리한 산 위에는 월명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해망동과 함께 둘러보면 좋을 곳이다. 공원 정상에 전망대와 바다조각공원, 수시탑, 삼일운동기념비, 개항35주년 기념탑, 채만식 문인비 등이 있다. 4월이 되면 벚꽃이 만발해 볼 만하다. 하지만 지금도 역시 좋다. 채만식 문학비에서 3·1운동 기념비까지 이어지는 1㎞ 남짓의 산책길이 일품이다.
월명공원 너머에는 동국사라는 특이한 절이 있다. 이곳도 들러볼 만하다. 일본식 절이다. 1913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승려 우치가 세운 절이다. 우리나라 절과 달리 처마 장식이 없고 대웅전은 요사채와 복도로 연결돼 있다. 원래 이름은 ‘금강사’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인 선운사의 말사로 등록돼 있다. 이 절은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 특히 이곳의 대웅전은 2003년 등록문화재 64호로 지정되었다. 군산에서 태어난 고은 시인이 이곳에서 승려의 길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여행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 군산IC→21번 국도→군산항→해망동
▲먹거리: 군산에서 <오감만족 군산>이라는 맛집가이드북을 올 초 발간했다. 모범음식점 65개소 외에 대표적 맛집 27개소를 발굴, 소개하고 있다. 일차 선정 후 시민들에게 공개해 검증을 받은 집들이라 믿음이 간다. 일풍식당(군산시 영화동 10-2번지, 063-442-6098)의 물메기탕, 압강옥(군산시 사정동 257-1번지, 063-452-2777)의 쇠고기쟁반, 복성루(군산시 미원동 234번지, 063-445-8412)의 해물짬뽕 등이 있다.
▲잠자리: 5분 거리인 나운동에 테마모텔(063-468-6067) 등 숙박시설이 많다.
▲문의: 군산시 문화관광포털(http://tour.gunsan.go.kr), 군산관광안내소 063-453-4896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