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 한 달 장고 끝 ‘기사자격 임시정지’ 처분…기사들 “제명이 아니고? 피해자는 어쩌라고” 반발
(재)한국기원(총재 홍석현)이 디아나 코세기 초단에 대한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김성룡 9단에게 ‘기사 활동 임시정지’ 처분을 내렸다. 한국기원은 14일 홍석현 운영위원장을 대신해 송필호 부위원장이 대신 진행한 운영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이런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현재 진상을 파악 중인 윤리위원회가 조사를 마칠 때까지 김 9단의 기사 자격을 정지시킨다는 뜻이다.
한국기원 프로기사회는 지난 8일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김성룡 9단의 자격을 박탈했으나 한국기원 운영위원회는 기사회 결과와는 달리 임시정지 처분을 내려 논란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 결과는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앞서 8일 열린 한국기원 임시 기사총회에서는 프로기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김성룡 9단에 대해 제명 처리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기사회는 9년 전 헝가리 출신 여자 프로기사 디아나 코세기 초단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성룡 9단을 제명했다. 8일 서울 성동구청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프로기사회 임시 기사총회에서 김성룡 9단 제명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75, 반대 17, 기권 12표로 제명안을 통과시켰다. 기사의 제명은 프로기사 정족수(현재 354명) 과반 출석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통과되는데 이날 찬성률은 86%였다. 그런데 기사회의 이런 결정을 한국기원 최고 의사결정 기구가 ‘임시정지’로 뒤집은 것이다.
당연히 기사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한 프로기사는 기사회 전용 게시판을 통해 “한 달을 기다린 결과가 겨우 이것인가. 이미 방송 진행도, 감독도, 홍보이사 활동도 하지 않고 있는데 이제 와서 김성룡의 기사직 임시정지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임시정지는 처음 들어보는데 이건 또 뭔가?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것이 만약 제명이 아니라면 결국 피해자인 디아나 초단이 한국을 떠나라는 것이 아닌가. 제명이 아니라면 나중에라도 결국 그 둘을 같은 기원 지붕 아래 두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디아나는 어쩌라는 것이냐”며 한국기원 운영위원회의 결정을 질타했다.
한국기원 전경.
바둑팬들의 성토도 이어졌다. 한 바둑팬은 인터넷 바둑 게시판을 통해 “사건 발생 한 달이 넘도록 공식 사과문 한 번 발표한 적 없는 한국기원이 한 달 만에 내놓은 입장이 겨우 기사직 ‘임시정지’라니 어이가 없다. 유창혁 사무총장은 진심으로 프로기사가 도지사급 정치인이나 연예인보다 윗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성폭행 혐의를 받으면서도 아무 해명도 없는 자에게 고작 임시 자격정지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활동 중지는 사건발생 초기에 바로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처음 디아나 초단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한국기원에서 제대로만 대처했으면 여론이 이렇게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바둑 이미지 추락으로 인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며 한국기원 집행부를 꾸짖었다.
한편 같은 날 피해자 디아나 초단은 페이스북에 현재 자신의 심경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헝가리에 계시는 엄마가 내가 피할 일이 아니라고 해서 오늘 한국기원에 시합하러 왔다(퓨처스리그 선발전). 그렇지만 아무래도 타인의 시선이 힘들어 상대에게 4층에서 따로 두자고 양해를 구했다(다른 기사들은 2층에서 두는데). 그런데 루이나이웨이 9단이 중국의 여자 기사들도 나를 응원하고 있다며 나를 꼭 안아줬다. 또 몸에 좋다며 선물들도 챙겨줬다. 루이 9단이 무척 고맙다”고 소식을 전했다.
한국기원은 ‘기사 활동 임시정지’ 처분이 내려진 김성룡 9단 건은 윤리위원회 조사 후, 결과에 따라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며 징계위원회에서 징계 여부와 수위가 결정된다고 밝혔다. 이후 임시 이사회를 소집해 추인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는 것이다. 김성룡 건은 향후 위원회 2건, 이사회 1건 등 복잡한 절차가 남아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지 2~3시간 만에 제명이라는 초강경 조치를 취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행보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