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총회서 ‘성폭행 의혹’ 김 9단 제명 결정…프로기사직은 유지
8일 서울 성동구청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프로기사회 임시 기사총회에서 김성룡 9단의 제명안이 통과됐다.
프로기사회는 명목상 친목단체다. 입단대회를 통과해 프로 세계에 발을 디디면 의무적으로 가입이 된다. 권리나 의무에 관한 규정은 없으나 한국기원 정관에는 ‘소속 기사의 품위 향상과 기력 연마를 촉진하고 본원 운영에 참여케 하기 위해 기사회를 둔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프로기사회에서 제명되더라도 당장 프로기사 자격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기사직에 대한 징계는 한국기원 운영위원회를 거쳐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한편 김성룡 9단은 임시 기사총회에 앞서 기사총회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뜻과 함께 답변서를 통해 기사회를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기사회는 이를 수락하지 않고 곧바로 제명안을 표결에 부쳤다. 자진 탈퇴와 제명은 프로기사회의 회원자격을 상실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제명될 경우 은퇴 위로금과 경조사비 등 프로기사에게 주는 혜택은 모두 없어진다는 것이 다르다.
프로기사회 임시 기사총회에 참석한 기사들.
김 9단은 답변서에서 “바둑계가 매우 어려운 시기에 저의 개인적인 문제로 바둑인 여러분들에게 심려를 끼쳐 몹시 부끄럽고,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현재 심경과 가족 상황 등을 언급했다. 그는 “언론을 통해 사건을 접한 가족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우울증세가 극심한 상태이고, 아이들도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닐 수 없어 이사를 하게 됐고 전학을 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저로서는 그저 죽고 싶을 따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음 같아서는 기사총회에 참석하여 성폭력이 아니라는 것을 성실히 해명하고도 싶지만, 가족 모두 상태가 매우 위험하다 보니 지금은 제가 곁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 참석이 어렵다”고 말해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디아나에 대한 자신의 행위가 성폭력이 아니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김성룡 9단의 답변서를 통해 불참사유를 접한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김 9단의 답변서는 기사총회 참석자 전원에게 배포됐는데 이를 본 프로기사들은 한결같이 “태도가 모호하다. 답변서가 사과하는 것인지 의혹을 부인하는 것인지 의중을 모르겠다. 또 기사총회를 이틀 앞두고 기사회 탈퇴서를 제출했다고 하는데 정작 프로기사직 사퇴는 하지 않았다. 그냥 기사총회는 탈퇴로 얼렁뚱땅 넘기고 기사직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꼼수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성룡 9단이 프로기사회에서 제명됐지만 프로기사 자격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기사직에 대한 징계는 한국기원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한 여자기사는 “당연히 당사자가 출석해 해명하는 줄 알았는데 답변서 2장이 전부이고 정작 중요한 사건관련 소명서는 윤리위원회에는 제출하지만 기사총회에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럴거면 임시 기사총회는 왜 소집했는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기사회장이 발송한 문자에는 오늘 열리는 기사총회 모임이 김성룡 9단의 소명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왜 소명자료는 공개하지 않는가?”라는 기사들의 질문이 나왔고, 이에 대해 손근기 기사회장이 “그 부분은 실수였다”라고 답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이밖에 기사총회 내내 “본인에게는 기사 징계에 관한 권한이 하나도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한 유창혁 한국기원 사무총장에게도 매서운 추궁이 이어졌다. 한 여자기사는 못내 답답했던 듯 “그렇다면 대체 총장님은 어떤 권한이 있으신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한편 김성룡 9단의 제명 소식에도 바둑팬들의 분노는 그칠 줄 몰랐다. 한 프로기사는 “한국기원의 일 처리가 늦어도 너무 늦다. 결국 오늘 유창혁 총장이 ‘이렇게 파문이 크게 확산될 줄 몰랐다.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 신속하게 사과할 걸 그랬다’며 후회했는데 집행부의 안이한 판단이 사상초유의 바둑 이미지 대추락으로 이어졌다”고 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게 충격적이다. 김성룡은 여전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한국기원은 여전히 공식적인 사과나 입장이 없다. 그리고 이제 윤리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이사회가 남았다는데 대체 건건마다 어떤 결론을 내서 바둑팬들을 화나게 할지 모르겠다”며 어이없어 했다.
손근기 기사회장은 “총회의 제명 의결은 프로기사직 제명으로 가기 위한 수순이다. 한국기원에도(김성룡 9단) 제명안을 이사회에서 다뤄달라고 공식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