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돈’ 흐름 현미경 관찰…최근 한진그룹·업비트·방산비리 수사의 출발점
그런데 18년째 활동 중인 이 조직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금융위원회 산하 조직으로, 의심스러운 금융거래를 들여다보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 정도가 전부다. 금융권을 넘어 재계의 새로운 저승사자로 자리잡고 있는 FIU의 비밀스러운 활동을 따라가 봤다.
최근 재계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그룹을 꼽으라면 단연 한진그룹을 들 수 있다. ‘땅콩회항’의 여진이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이른바 ‘물벼락 갑질’이 오너 일가의 조세포탈과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새로운 저승사자로 불리고 있는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올 초 시작한 시중은행들의 암호화폐 거래소 계좌들에 대한 특별검사에 금융정보분석원(FIU)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합뉴스
검찰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은 조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내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수사의 출발점은 금융정보분석원이다. 검찰 관계자는 “2016년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대한항공에서 수상한 국내 자금 흐름이 포착됐다고 검찰에 통보해왔다”며 “조세포탈 혐의를 수사하는 동시에 국내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서도 내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사실상 검찰이 한진그룹과 조 회장 일가의 자금 흐름을 전방위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의미다.
조 회장의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서는 이미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지방국세청이 지난 4월 30일 조세포탈 혐의로 조 회장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 그런데 이 수사 역시 금융정보분석원의 첩보가 상당한 근거가 됐다는 것이 금융권의 전언이다.
금요일인 지난 10일 오후, 암호화폐 투자자들을 경악케 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검찰이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에 대해 사기 등 혐의를 포착하고 압수수색에 나선 것.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정대정 부장검사)는 지난 10일부터 이틀에 걸쳐 서울 강남구 업비트 사무실에 수사관을 보내 회계 관련 자료 등을 확보했다고 이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업비트는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서 전산상으로 있는 것처럼 ‘허위충전’해 투자자들을 속인 혐의(사기·사전자기록등위작행사)를 받는다. 업비트는 암호화폐를 전자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코인 지갑’에 실제 암호화폐를 보유하지 않고 ‘장부상 거래’를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검찰은 실제 업비트가 암호화폐를 허위로 충전해 놓은 뒤 나중에 다른 업체에서 암호화폐를 사서 메우는 식으로 운영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아무리 검찰이라도 이런 전문적이고 비밀스러운 자금 흐름을 포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전광석화처럼 움직일 수 있었던 것 역시 금융정보분석원에서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덕분이다. 금융정보분석원은 이미 지난 1월 암호화폐 거래 실태를 점검해 위법 정황이 큰 사례들을 발견하고 이를 수사당국에 통보해둔 상태였다.
검찰이나 국세청뿐 아니다. 금융정보분석원은 국방부나 감사원, 심지어 청와대에도 ‘나쁜 돈’으로 의심되는 자금흐름에 관한 정보를 보낸다. 일례가 이달 초 청와대가 직접 나서 발표한 방산비리 사건이다. 청와대는 지난 8일 ‘방산비리 근절 유관기관 협의회’를 통해 9개월여간 69명을 적발해 기소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청와대가 이날 배포한 자료에도 금융정보분석원이 등장한다. 청와대는 “감사원, 방위사업청, 금융정보분석원(FIU) 등과 긴밀한 협조수사를 벌인 결과 69명을 기소하고, 이 가운데 15명을 구속 기소했다. 60명에 대해서도 추가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청와대는 반부패비서관실 주관으로 감사원과 법무부, 국정원, 경찰청, 방사청 등 10개 기관이 참여하는 협의회를 구성하고 방산비리 적발 활동을 진행했다. 청와대는 “수사기관의 이 같은 성과는 감사원과 금융정보분석원(FIU), 방사청 등 방산비리 유관기관의 수사의뢰 등 긴밀한 협조와 정보 공유에 따른 결과”라고 공개적으로 치하했다.
그렇다면 금융정보분석원은 어떻게 이처럼 수상한 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일까. 금융권은 의심거래보고제도(Suspicious Transaction Report : STR)와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Currency Transaction Reporting System : CTR)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STR은 금융거래와 관련해 불법 재산이라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거나 금융거래의 상대방이 자금세탁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이를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토록 하는 제도다. 여기서 불법 재산 또는 자금세탁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의 판단 주체는 금융회사 종사자들이다. 즉, 국내 모든 금융사가 사실상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정보원들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고의로 보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CTR은 이런 경우를 위해 만들어둔 대비책이다. 일정 금액 이상의 현금거래는 금융정보분석원에 전산으로 자동 보고되는 것. 1거래일 동안 2000만 원 이상의 현금을 입금하거나 출금한 경우 거래자의 신원과 거래일시, 거래금액 등이 자동으로 금융정보분석원에 넘어간다.
여기에 지난해 11월에 개정된 ‘금융정보분석원법’은 국세청이 금융정보분석원 금융거래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경우를 확대해 막강한 힘을 발휘하도록 했다. 기존에는 ‘조세범칙조사와 조세범칙혐의를 확인하기 위한 세무조사’를 위해서만 금융거래정보를 활용할 수 있었지만, 새 법에서는 ‘조세탈루 혐의 확인을 위한 조사와 조세 체납자에 대한 징수’를 위해서도 금융거래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쉽게 말해 의심나면 언제든 장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융정보분석원은 소수 정예로 운영되고 있다. 전체 인원은 원장을 포함해도 50여 명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의심스러운 거래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분석관이다. 특히 이들 분석관은 검찰이나 경찰, 국세청 등 유관부처에서 파견된 전문가들이 절반을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은돈을 만지는 사람이라면 등에 식은 땀이 날 만한 존재지만 이들에 관해서는 당사자와 금융권 모두 굳게 입을 다문다. 금융정보분석원 관계자는 “우리 조직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면서 “과거 사례도 법망을 피해 나갈 수 있는 힌트를 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금융사 관계자 역시 “의심스러운 금융거래가 포착하면 즉시 보고하게 돼 있다”며 “하지만 사례나 내용은 절대 말해줄 수 없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