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공천이라더니 공천권 무기로 갑질…“딴 후보 전략공천 해놓고 공천심사비만 꿀꺽”
2014년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구윤성 기자
자해 소동을 벌였던 성백진 더불어민주당 전 중랑구청장 예비후보는 “다 지난 일이라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당을 위해 다 이해하고 넘어가려 한다”면서도 “당시 공천 과정은 여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천에 불복한 인사들이 대거 탈당을 감행하거나, 공천 헌금과 같은 비리도 끊이지 않는다. 모 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전직 의원은 “공천을 청탁하며 돈 보따리를 싸들고 오는 인사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선거철만 되면 반복되는 추태다. 이제는 정당공천제도를 재점검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지방선거 공천의 경우 각 당 지역위원장(당협위원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지역위원장은 주로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 맡는다. 지역 국회의원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탓에 지역 국회의원과 시도의원들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주종관계가 성립된다.
모 정당 소속이었던 전직 시의원은 “제가 시의원 할 때 공약이행률이 91%였다. 매니페스토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지역 국회의원에게 찍히니까 다음 선거에서 경선에도 참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전직 시의원은 “국회의원은 시의원들이 부각되는 것을 싫어했다. 내가 봉사활동 등으로 언론에 자주 나오니까 ‘언론에 왜 자꾸 노출되느냐’면서 질책을 했다. 지역 정치인이 너무 뜨면 차기 총선에서 경쟁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견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직 시의원은 공천권을 가진 국회의원의 힘을 설명하는 사례로 “OO시는 OOO(국회의원 이름)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강했다. 시의원들이 조례 하나 발의할 때도 OOO 의원 눈치를 봐야 했다. 주도적으로 일을 못했다”면서 “어느 날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며 무릎을 꿇으라고 하더라. 억울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있는 곳에서 무릎을 꿇고 빌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모 정당 현직 시의원도 “불합리한 공천제도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하다”면서 “지역의회 회기 중인데도 국회의원이 방문한다고 하면 시의원들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행사장으로 몰려간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역위원장이 공천에 입김을 행사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민주당 김성제 의왕시장의 경우 지역 국회의원과의 갈등설 속에 컷오프 됐고, 현재 무소속으로 출마한 상황이다.
김 시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신창현 의원의 불공정하고 부당한 공천 횡포로 경선에 참여할 기회마저 박탈당했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공천에 개입한 적도 없고, 횡포를 부리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석기 한국당 의원은 자신의 조카를 광역의원 비례대표 1번으로 배정하려 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 같은 부작용들 때문에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여야 후보들은 모두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를 공약했지만 2014년 치러진 지방선거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일찌감치 공약 철회를 공식 선언하고 사과했고,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대표는 끝까지 무공천을 추진했으나 당내 반대로 선거 직전 결국 입장을 번복했다.
선거 때마다 오락가락하는 각 정당의 공천 룰과 무분별한 전략공천, 컷오프 등도 문제다. 선거 때마다 공천 룰이 변하다보니 특정 계파에 유리하게 룰을 변경했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는다. 공천 룰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내부 갈등과 잡음도 극심하다.
무분별한 전략공천, 컷오프와 관련해서는 한국당이 경남 창원시장 후보로 홍준표 대표 측근을 전략 공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안상수 현 창원시장은 경선조차 하지 못하고 컷오프 됐다. 안 시장과 홍 대표는 정치권에서 유명한 앙숙관계다. 안 시장은 컷오프가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모 정당 구청장 후보로 출마했다가 공천에서 탈락한 한 인사는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공천심사비를 냈는데 경선도 하지 않고 특정후보를 전략공천 했다”면서 “전략공천 할 후보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면 후보 모집은 왜 한 것이며, 공천심사비는 왜 받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당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번 선거에서 광역단체장은 300만 원, 기초단체장은 200만 원, 광역의원은 150만 원, 기초의원은 100만 원의 공천심사비를 냈다. 여야 각 정당은 지방선거 때마다 공천심사비로만 수억 원의 수입을 거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때에는 공천 탈락한 후보자가 공천심사비 반환을 요구하며 당직자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도 있었다.
공천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다보니 각 정당은 상향식 공천을 하겠다면서 경선을 강화했지만 이로 인해 청년, 장애인, 여성의 정치 진입이 더 어려워졌다는 비판도 있다. 경선을 위한 여론조사비용 등이 증가하면서 후보자들의 경제적 부담도 커졌다.
바른미래당은 새로운 대안으로 광역의원 청년 비례대표 후보를 ‘토론 배틀’을 통해 공천하기로 했다. 바른미래당은 지역별로 토론대회에서 우승한 청년들에게 광역의원 당선 안정권인 비례 1번(우승자가 여성일 경우) 혹은 2번(남성 우승)을 부여한다는 방침이다.
바른미래당 지역별 지지율을 감안하면 서울·경기와 호남 등에서 광역의원 비례 1, 2번 공천을 받으면 당선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바른미래당은 각 지역에서 토론 배틀을 진행 중이다. 신선한 시도지만 일각에선 토론만 잘하면 광역의원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모두 갖춘 것이냐는 비판도 있다.
해법에는 이견이 있지만 여야 모두 낡은 정당공천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공감한다. 선거 때마다 공천과 관련한 추태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지혜를 모아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