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고민 빼곡…학교 “학교폭력 아냐…성적지향 문제 아는 바 없다”
심정지로 사망한 한 A 양의 유족이 A 양이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유족은 A 양이 4명의 또래 학생들에 의해 학교폭력을 당했으며 학교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족은 성명서를 통해 “꼭 때려야만 학교폭력인가. 괴롭히고 따돌려 힘들어하는 당사자에겐 간접살인이나 다름없다”며 “2학년 때 학교상담실, 담임선생님 등에게 힘들다고 수차례 상담도 의뢰했지만 ‘행동거지가 바르지 않다’며 제대로 된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규탄했다. 5월 18일 기준 해당 청원에는 4000여 명이 서명에 참여한 상태다. A 양의 아버지는 “2학년 담임선생님과 대화를 하고 싶지만 학교 측에서 이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 동부경찰서는 A 양에게 학교폭력이 있었는지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4월 16일 A 양의 아버지가 수사를 의뢰해 참고인들을 상대로 차례로 조사 중”이라면서 “가해자로 지목된 4명의 학생에 대해서는 아직 소환조사를 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작성한 사망 진단서에 따르면 A 양의 직접사인은 ‘저산소성에 의한 뇌 손상’이다. 3월 31일 오전 6시 A 양의 아버지는 자신의 방에 쓰러져있던 A 양을 발견하고 즉시 119에 신고했다. A 양은 지난해 5월 갑작스럽게 발병한 과호흡증으로 쓰러지거나 조퇴하는 일이 잦았다. 학교 관계자는 “(A 양이) 과호흡으로 쓰러지는 일이 몇 번 있어서 보건 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이 집에 데려다주기도 했다라며 “최근 경찰에 A 양의 보건실 이용 기록을 제출한 상태”라고 밝혔다.
유족은 A 양이 지병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갑작스럽게 사망에 이르게 된 원인은 과도한 우울증약 복용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4월 5일 한 대학병원에서 작성한 진단서에 “공황장애로 본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진료 중이셨던 분으로 내원일 복용 중인 약물 복용 후 발생한 심정지로 (추정)된다”는 기록이 있다. A 양은 지난해 같은 대학병원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고, 다른 병원에서는 우울증약도 처방받아 복용했다. 병원진료 기록서에는 A 양이 최근 친구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진술한 내용도 확인된다.
사건 관계자에 따르면 A 양은 2학년이던 지난해 말부터 한 친구를 두고 다른 학생들과 마찰을 빚었다. A 양이 남긴 일기, 메신저 대화, 병원 기록 등에는 친구 B 양이 A 양과 친해지면서 B 양이 원래 속했던 무리가 A 양을 괴롭히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A 양이 친구들과 나눈 메신저 대화에는 ‘특정 무리가 자신이 B 양과 사귄다는 소문을 학교에 내고 다니는 것 같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지난해 12월 28일에는 친구들과의 단체 채팅방에 ‘애인님(B 양)과 7월 초부터 사귀었다. (그들이) 수군거려 과호흡이 심해지고 혼자 있을 때 기절도 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은 학교폭력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학교 관계자는 “아이들은 괴롭힘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학교도 지금까지의 증거로는 학폭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4명의 아이들 모두 지금까지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아니었다. 고3으로 민감한 시기인데 무분별한 추측으로 2차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A 양은 자신이 B 양과 사귄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에 대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A 양은 친구들과 나눈 메시지와 일기를 통해 수차례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괴로움을 나타냈다. 1월 27일 작성한 일기장에는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요. 나는 사람을 좋아한 것밖에 없는데. 너무 무섭다. 제일 믿었던 친구가 (담임선생님에게) 아웃팅하고 선생님은 더는 내 말을 믿지 않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A 양은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친한 또래 친구들 몇 명에게만 알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 결과 학교 관계자와 가족도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학교 관계자는 “A 양이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도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만 고민을 토로할 뿐 성적 지향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걸로 안다”며 “A 양이 실제로 동성애적 성향을 갖고 있었는지는 본인만 알 일”이라고 말했다. A 양의 아버지는 “여고생들끼리는 원래 팔짱도 끼고 화장실도 같이 가고 다정하지 않나. 나는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며 “아직 성적 지향성이 확립되지 않은 나이니까 충분히 조금 과한 친밀감은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A 양의 성적 지향성은 남겨진 자료를 통해서만 유추할 수 있지만, 일기장 내용이 공개되면서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일제히 성명을 발표하고 나섰다. 5월 11일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는 성명서를 통해 “A 학생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혐오가 불러온 비극”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도 “현재 유가족의 요청으로 경찰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대전교육청은 수사 결과를 지켜본다고 한다. 학교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말하고 있다”며 “하지만 진실은 이미 그의 일기장에 있다.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A 학생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려고 하지 말라”고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겪는 어려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차별과 괴롭힘에 제대로 항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친구들에게 더욱 큰 배척을 당할 위험이 있는 데다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알려지는 것에 대해 큰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어린 시선도 이들을 움츠러들게 하는 원인이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성소수자 청소년 200명 중 80%가 교사가 성소수자를 적대적 또는 모욕적으로 표현하는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었고, 92%가 다른 학생이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을 들은 경험이 있었다.
한편 경찰은 최근 학교에 상담기록을 포함해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된다. 학교 관계자는 “(A 양 유족의 주장과 달리) 학교에서는 사건을 은폐할 생각이 전혀 없고 경찰 조사에도 적극 협조하고 있다. A 양의 담임선생님은 학생들도 좋아하고 참 좋은 분”며 “(A 양의) 죽음이 정말 가슴 아프지만, 유족이 작성한 성명서의 내용 상당 부분에 동의하기 힘들다. 지금 학교 분위기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다”고 토로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