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말만 했고 문재인은 뒤집어 놨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4년 앞선 소치 동계올림픽쯤 빙상연맹을 대대적으로 감사한다고 알렸었다. 2014년 4월 1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기반을 다지기 위해 겨울스포츠 종목 경기단체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감사 특별감사 및 수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감사 결과 발표는 없었다. 감사 자체가 없었던 탓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 감사하겠다고 말했지만 실제 제대로 된 감사 진행은 없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말뿐이었던 감사는 전명규 교수를 옹호하는 언론과 전 교수에게 좋은 방어 논리가 됐다. 한 매체는 전 교수를 일컬어 “빙상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클린 이미지’의 소유자”라고 불렀다. “김종 차관이 빙상연맹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벌였지만 어떤 흠집도 잡아내지 못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전 교수는 이를 철저히 이용했다. 지난해 9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 교수는 “김종 차관이 날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빙상계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건 말만 있지 실체가 없었다”고 했다.
결국 드러났다. 문체부는 감사 지적 사항 11개를 가운데 1개를 전명규 교수의 전횡으로 내놨다. 하지만 잘 따져 보면 이 가운데 6개가 전 교수의 전횡과 깊은 관련이 있다. 상임이사회와 이사회의 몸통이 전 교수라고 감사 내용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립대 교수이자 청룡장을 받은 금메달 제조기에게 마지막으로 정부가 보여준 배려라고 보인다.
동계올림픽 때마다 불거지는 빙상연맹 문제는 국민들의 오랜 스트레스였다. 드디어 실마리가 보인다. 이번 감사 때 문체부는 50명에 이르는 관계자를 만났다. 감사 과정에서 1명의 이야기를 듣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약 3시간이다. 하루에 2명씩만 만나도 감사 기간 5주 가운데 주어진 평일 26일을 다 쓰는 셈이다. 지적 사항 가운데 마지막 항목은 비상근임원에게 보수성 경비 부당 지급이었다. 실무를 모르는 공무원은 감사 때 회계에만 집착하고 감사 결과도 대부분 회계 문제만 언급된다. 이번 감사 보고서에서 회계 문제는 감사 결과 지적 사항 11개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자리 잡았다.
감사를 담당했던 김현목 사무관은 “감사에 협조한 빙상인들 덕”이라며 “도종환 장관님과 노태강 차관님께서 힘을 많이 실어 주셨던 게 컸다. 난 한 게 없다. 일개 공무원일 뿐”이라고 했다. 도 장관은 심석희 선수 폭행이 언론에 나오자마자 “심석희를 위로하라”고 담당자를 평창으로 급파했었다. 브리핑을 진행했던 차관은 기자들의 질문에 브리핑이 끝난 뒤에도 상세하게 모든 내용을 명쾌하게 답했는데 차관은 180쪽을 하나씩 짚어가며 일일이 공부했다고 알려졌다. 감사 때 문체부는 선수들이 감사에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처음에 감사를 거절했다가 참여한 한 선수는 “감사 시작 때는 문체부를 믿을 수 없었다. 여전히 불신은 살아있다. 다만 이제는 조금 편한 마음으로 경기를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 결과가 나온 어제는 오랜만에 아주 깊이 잠을 잤다”고 덧붙였다.
이제 칼자루는 교육부에게 넘어왔다. 문체부는 교육부에 한체대 빙상장 관련 문제를 짚어 보라고 통보했다. 교육부는 전명규 교수의 갑질을 조사하겠다고 지난달 이틀 방문하곤 한 달이 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조사 당시 전 교수조차 만나지 않고 돌아가 버렸다. 문재인 정부는 내세운 슬로건은 적폐청산이다. 교육부가 적폐청산에 걸림돌이 되지 않길 바란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