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최순실 사태’로 지배구조 개편 스톱 “삼성전자 증여세만 6조원 이상”
- CJ, 이재현 회장 지주사 지분 증여세 1억원 “건강 호전돼 논의하기 이르다”
“삼성이 법과 질서를 왜곡시키는 것은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삼성독재’의 저자 이종보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의 말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자녀들에게 그룹을 물려주려는 것은 비단 삼성그룹만이 아니라 모든 기업의 고민거리다. 실제 국내 여러 기업들이 경영권 세습과정에서 벌인 위법 행위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지배구조 상태에서 총수의 자녀들이 경영권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본이 필요할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지난 1995년부터 진행된 후계승계 작업은 최순실 사태로 인해 현재 잠정중단된 상태다. 사진=최준필 기자
#삼성그룹
올해로 창립 80주년을 맞은 삼성그룹은 오너 2세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경영 하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건희 회장이 총수직을 이어받은 1987년 삼성그룹의 연간 총 매출은 13조 5000억 원이었지만, 지난해 삼성전자를 주축으로 총 매출액 239조 6000억 원을 기록했다. 30년 만에 17배 넘게 성장한 것이다.
기업의 규모가 글로벌 수준으로 확장된 만큼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할 지분의 규모도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은 지난 1990년대부터 후계구도를 위한 물밑 작업에 들어갔고, 수많은 논란을 자아냈다.
1995년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게이오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였다. 이건희 회장은 장남 이재용 부회장에게 60억 8000만 원을 증여했다. 이 부회장은 이중 16억 원을 증여세로 납부하고, 남은 44억여 원의 돈으로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식을 각각 12만여 주, 47만 주를 매입했다. 이후 두 계열사는 급성장했고, 이 부회장은 2년 만에 보유 지분을 매각하며 원금의 10배가 넘는 563억 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 부회장은 이 돈을 바탕으로 다시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삼성전자·삼성에버랜드·제일기획의 전환사채(CB) 등을 우선 배정 받아 인수하며 거액의 차익을 거뒀다. 당시 이 부회장은 미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을 통한 불법 승계 논란을 불렀다. 또한 이건희 회장 일가가 삼성SDS BW를 인수하면서 당시 장외시장 실거래가의 8분의 1에 불과한 헐값에 인수해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 사건은 지난 2009년 대법원에서 배임과 조세포탈 등으로 유죄가 선고됐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이 BW를 전량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삼성SDS 지분 9.1%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지분을 확보하자 2013년 말부터 삼성그룹은 후계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재편에 속도를 가하기 시작했다. 실제 삼성그룹의 사업재편은 2013년 말부터 2014년 초까지 9개월 동안 8번에 달했다. 2013년 9월 삼성SDS는 네트워크 서비스 및 솔루션 기업인 삼성SNS를 합병했다. 그리고 11월에는 삼성에버랜드가 급식 식자재 사업을 분사하고, 건물관리사업은 에스원에 넘겼다. 대신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이 삼성에버랜드로 이양됐다.
이듬해에는 제일모직의 전자·화학 기초소재 부문이 삼성SDI로 흡수합병됐다. 이로써 삼성SDI는 전자와 자동차 소재, 에너지 사업을 아우르는 15조 원 자산 규모의 계열사로 성장하게 됐다. 특히 2014년 11월 삼성SDS와 12월 삼성에버랜드(제일모직)을 연이어 상장 시키면서 이재용 부회장은 수조 원의 ‘실탄’을 다시 확보하게 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5년 9월 삼성그룹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면서 지주사 체제 구축 작업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비율이 1대 0.35로 책정됐는데, 이것이 삼성 총수 일가에 유리하게 적용됐다는 논란이 일었다. 특히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공단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찬성표를 던져 의구심을 자아냈다.
순탄히 진행되는 것 같던 지배구조 개편은 이듬해 암초를 만나게 됐다. 2016년 말 불거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과정에서 삼성이 박근혜 정권에 전방위적 로비를 해 국민연금을 압박, 국민들의 노후자금이 손해를 보면서 이재용 부회장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성사시켰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민적 분노를 자아낸 것이다. 그 결과 삼성 총수 중엔 처음으로 이 부회장이 구속기소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여파로 현재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 경영승계 작업은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등 혐의에 대한 2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경영 승계와 관련된 현안이 없었다”는 취지로 1심에서 유죄로 판단한 혐의에 대해 대부분 ‘면죄부’를 주며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이로써 이 부회장은 1년여 만에 구치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삼성이 다시 삼성물산 중심의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는다면 경영권 승계 과정이었음을 자인하는 꼴이라, 다가오는 대법원 최종심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 지배구조 하에서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할까.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4년 넘게 삼성서울병원 VIP실에 입원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 17.08%를 보유해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이건희 회장도 2.84%(542만 5733주)를 갖고 있다. 이 지분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5월 23일 종가(13만 원) 기준으로 약 3500억 원의 증여세가 필요하다.
반면 삼성전자에서 이 부회장의 지분은 주식 액면분할 전(3월 31일) 기준으로 0.65% 밖에 되지 않는다. 이건희 회장은 보통주 3.88%(498만 5464주)를 보유하고 있다. 액면분할 전 종가(265만 원)로 계산해도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주식을 증여받으려면 13조 원의 절반인 6조 이상의 상속세를 마련해야 한다.
삼성물산(7053억 원)과 삼성전자(13조 원) 외에도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상장 주식은 3조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 부회장이 이들 주식을 다 확보하려면 1조 원 이상의 재원이 더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지분 중 필요한 최소한만 확보하고 나머지 지분은 팔아 상속세로 낼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이 부회장은 올해초 삼성전자에서 231억 원, 삼성물산 180억 원, 삼성SDS 53억 원, 삼성화재 3억 원, 삼성생명 1억 원 등 총 468억 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삼성전자가 주주환원정책을 폄에 따라 지난해 373억 원보다 늘어난 액수다.
이 부회장은 44억여 원 남짓한 자금으로 시작해 20여 년 만에 연매출 300조 원의 삼성제국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부친 이건희 회장 사후 삼성제국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와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CJ그룹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지 1주년을 맞았다. 이재현 회장은 지난해 5월 17일 경기도 수원 광교신도시 ‘CJ블로썸파크’에서 열린 개관식 겸 ‘2017 온리원 컨퍼런스’에 참석하며 4년여 만에 경영일선 복귀를 알렸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지난해 5월 경기도 수원 광교신도시에 위치한 CJ블로썸파크 개관식에 참석해 부축 없이 혼자 서서 직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회장은 1960년생으로 만 58세다. 그의 아들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은 1990년생으로 아직 20대다. 따라서 경영승계를 이야기하기는 아직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은 건강 문제를 안고 있어 경영승계를 마냥 뒤로 미룰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수천억 원대 비자금 조성 및 횡령·배임 등 혐의로 2013년 7월 구속기소되면서,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만성신부전증이 있던 이 회장은 부인 김희재 씨에게 신장을 이식 받았는데, 거부 반응을 보이면서 건강이 더욱 악화됐다. 특히 면역억제제를 투여하는 과정에서 신경근육계 유전질환인 ‘샤르코 마리투스(CMT)’도 심해졌다.
이에 이 회장은 2016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기 전까지 수감 생활 대신 서울대병원에서 입원생활을 이어나가야 했다. 사면 후 치료를 받으면서 건강상태가 많이 호전됐다고는 하지만, 유전병인 만큼 완치는 쉽지 않다.
이선호 부장이 예상보다 빨리 그룹에 들어오고, 승진을 거듭한 것도 이 회장의 건강 문제가 컸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실제 미 컬럼비아대학에서 금융경제학을 전공한 이 부장은 지난 2012년 7월 CJ제일제당 소속 인턴으로 입사해 영업·마케팅, BIO사업관리팀 등을 거쳐 5년 만에 부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렇다면 이 부장이 그룹 지배구조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분을 확보해야 할까.
CJ그룹의 지주사는 ㈜CJ로 CJ제일제당, CJ오쇼핑 등 9개 자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이재현 회장이 지분 42.7%(1227만 5574주)로 앞도적인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하지만 이 부장은 ㈜CJ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 부장이 현재 지분구조에서 이 회장의 주식 1227만 5574주를 물려받아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5월 23일 종가(16만 3500원) 기준으로 약 1조 원의 증여세가 필요하다.
CJ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비상장사 CJ올리브네트웍스가 있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지난 2014년 CJ올리브영과 IT서비스업체 CJ시스템즈가 합병해 만들어졌다. 이후 CJ올리브네트웍스는 CJ파워캐스트와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등 알짜 계열사를 흡수합병하고, 그룹 내 굵직한 사업을 넘겨받으면서 덩치를 불려 왔다.
이선호 부장은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 17.97%를 보유해 CJ(55.01%)에 이어 2대 주주에 올라 있다. 따라서 CJ올리브네트웍스를 상장시킨 뒤 이선호 부장이 보유 주식을 팔아 증여세를 마련하거나, 오너일가 지분을 ㈜CJ와 교환하는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또한 상장 CJ올리브네트웍스를 지주사인 ㈜CJ와 합병해 지분을 바로 확보한다는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한편, 이선호 부장에게는 5살 터울의 누나 이경후 CJ 상무가 있다. 이 상무는 미 컬럼비아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2011년 CJ에듀케이션즈 기획팀 대리로 입사, CJ오쇼핑 등을 거쳐 입사 6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현재는 미국지역본부 통합마케팅팀장으로 이 부장과 마찬가지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다만, 이선호 부장과 달리 이 상무는 ㈜CJ 주식 0.13%(3만 7485주)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도 6.91% 갖고 있어 후계구도 대상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에 대해 CJ그룹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 건강이 안좋아 입원치료를 받고 있을 때 경영승계 구도와 관련된 얘기가 외부에서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그룹 내부에서는 논의가 없었다”며 “현재 이 회장 건강이 많이 호전돼 경영승계 작업이 급하게 추진돼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따라서 경영권 승계나 CJ 지분 확보 등 구체적인 논의는 없다”고 설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