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삼성 ‘변양균 라인’ vs 반삼성 ‘장하성 라인’ 갈등설…청와대의 금융위 개혁에 영향 미칠 듯
지난 7일 인천시 연수구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첫 일정인 감리위원회가 지난 17일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즉각 입장자료를 내고 금감원 조사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지난 15일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홈페이지 통지문을 통해 “이미 수차례 밝힌 대로 모든 사안을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적법하게 처리했다”고 항변했다. 지난 8일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홈페이지 통지문을 통해 “민감한 정보가 무분별하게 공개·노출되는 상황에 대해 크나큰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정부 당국의 최종 징계 수위를 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가 나오면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금융위)는 지난 17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위반 여부에 대한 심의를 위해 감리위원회(이하 감리위)를 열었다. 법원 재판처럼 대심제로 진행된 감리위에서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했다.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핵심 쟁점인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한 부분에 대해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금융위는 되도록 이달 내에 감리위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심의를 종결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감리위가 어떤 판단을 내리든 금감원과 삼성 둘 중 하나는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금융위도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으로선 감리위가 금감원 손을 들고, 다음달 7일로 예정된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에서 회계 위반 혐의가 확정되면 최악의 경우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상장폐지가 현실화될 수 있다. 익명의 삼성 관계자는 “청와대와 금감원이 합심해서 삼성을 때리고 있는데 금융위는 모르는 척 뒤로 빠진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융위 안팎에선 오히려 삼성을 살리기 위한 물밑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감리위원 9명 가운데 삼성에 우호적인 인사가 과반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더구나 감리위에서 삼성에 대한 징계를 권고한다 하더라도 최종 칼자루를 쥔 증선위가 징계 수위를 감경하면 이를 번복하기 어렵다. 지난 정부 당시 금융당국이 회계 부정 사건에 대한 징계 수위를 완화하거나 감경해 준 비율은 2건당 1건꼴로 전해진다.
지난달 중순 금융위는 금감원으로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위반 혐의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당시 금감원은 삼성 측에 보낼 사전조치통지서를 외부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감원 핵심 관계자는 “4월 22일부터 금융위와 통지서 공개 여부를 협의해왔다”고 말했다. 반면 금융위는 외부 공개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금융위는 삼성 측에 유리한 입장을, 금감원은 불리한 입장을 취한 셈이다. 금융위 만류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은 외부 공표를 강행했다. 이른바 ‘금융위 패싱’이 나온 배경이다.
윤석헌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18.05.08 사진/임준선기자
금감원과 달리 금융위는 4월 25일에야 통지서 공개 방법 등을 보고받았다고 주장한다. 또 “통지서에 관한 사항은 금감원이 결정할 수 있다”며 패싱 논란을 일축했다. 그러나 지난 9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최 위원장은 이날 금감원 조치에 대해 “시장에 충격과 혼란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금감원에 일부 비판적 입장을 드러냈다.
또 같은 날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금융위) 절차를 마친 다음 공개했으면 좋았을 텐데 중간에 발표되는 바람에 논란이 된 것 같다”며 금융위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 부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그가 이른바 ‘변양균 사단’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전신인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옛 참여정부 관료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친(親)삼성’ 인사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김 부총리는 최근 삼성전자 평택공장 방문을 추진했으나 금감원 발표 여파로 취소된 것으로 전해진다.
최 위원장은 상대적으로 ‘반(反)삼성’에 가까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쪽 인사로 분류된다.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의 공개 매각을 요구한 것도 최 위원장이다. 그러나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 논란과 관련해선 오히려 ‘친삼성’에 가까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 위원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특혜 상장 의혹과 관련해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나스닥 상장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며 “국내 상장 규정을 고친 건 문제 삼을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의 이 같은 행보는 청와대 내 주류 노선과 대비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참여정부 때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인데 현 여권 핵심부는 참여정부가 몰락한 원인을 삼성과 관료의 유착에서 찾는다”고 전했다. 청와대 일각에선 삼성에 대한 고삐를 풀면 삼성으로부터 역공당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때문에 이번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반삼성 성향의 외부 전문가를 요직에 등용했다. 특히 관료 출신을 되도록 배제하고, 개혁을 명목으로 학계 출신 전문가를 수혈했다.
지난 9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최 위원장은 이날 금감원 조치에 대해 “시장에 충격과 혼란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금감원에 일부 비판적 입장을 드러냈다. 일요신문 DB.
이 과정에서 막후 권력으로 지목된 관료 출신 변 전 실장은 영향력을 거의 잃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 부총리 역시 취임 초기부터 청와대와 엇박자를 내며 ‘패싱’ 논란에 휩싸였다. 이들은 내각 핵심인 기재부 출신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은 모르겠지만 삼성은 비교적 최근까지 기재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뿌리인 금융위는 법률상 민간기구인 금감원에 비해 친시장적 성향을 띠고 있다. 정책기구인 금융위와 감독기구인 금감원의 역할 차이가 두 기관의 상이한 조직문화를 낳았다는 해석도 있다. 금융위 고위직은 대부분 옛 기재부 출신이 역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관료 출신으로 금융당국 수장에 오른 최 위원장을 개혁 성향으로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이른바 ‘엘리트 관료’로 불리는 금융위 소속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앞의 인사는 “당초 직원 수가 50명도 되지 않는 조직이 금융위가 되면서 250명으로 늘고, 권한은 막강해졌는데, 이를 견제할 장치가 없는 것이 (정부의) 고민”이라며 “소위 성골 제도로 운영되는 금융위 개혁 요구가 역대 정부마다 있었고, 이번 정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도 “이번 정부 주요 국정개혁 과제에 금융위 개혁이 포함된 것으로 안다”며 “금융위로선 필사적으로 외부 힘에 의한 개혁을 막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청와대 추천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8일 취임사에서 금감원 독립 문제를 공개 언급했다. 금융위 하위기관인 금감원이 독립할 경우 금융위는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고, 해체 수순을 밟을 수 있다. 진보진영에선 꾸준히 금융위와 금감원의 분리를 요구해왔으며, 윤 원장은 교수 재직 시절 금융위 설립을 반대한 바 있다. 금감원 직원 수는 약 2000명으로 금융위 직원의 8배에 달한다.
금융권에선 이번 삼성 회계 논란과 윤 원장 취임을 계기로 청와대 차원의 금융위에 대한 개혁 드라이브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금감원 개혁을 일정 부분 마무리 지은 상황에서 상위기관인 금융위에 대한 개혁 또한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금융위 심의 결과가 개혁의 강도를 좌우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미 금감원은 삼성물산에 대한 추가 감리에 착수하며 ‘노선 경쟁’에서 한발 앞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금융위 ‘해체론’은 왜? 금융산업 육성·감독 상반된 업무 동시에…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만든 금융정책감독 통합기구다. 이명박 정부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의 금융정책국과 금융감독원을 관리하는 금융감독위원회를 통합해 금융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금융위는 설립 당시부터 ‘해체론’에 시달렸다. 금융산업 육성과 금융산업 감독이라는 상반된 업무를 한 기구가 동시에 수행할 수 없다는 논리에서다. 특히 진보진영에선 금융위가 감독 업무는 뒷전에 두고 금융사업자에 특혜만 제공하는 등 유착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동양·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 금융감독 고유 기능인 금융소비자보호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금융위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의 중간지대를 찾는 것인데 이게 늘 어렵다”며 “소비자 보호는 말 그대로 금감원이 하면 되는데 건전성 감독이란 것은 결국 금융사의 수익 추구를 돕는 것이다. 그 수익은 소비자 주머니에서 나오는데 금융사가 수익을 많이 가져가면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피해를 입게 돼 있다. 즉 건전성 제고와 소비자 보호는 상충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헌 신임 금감원장은 진보 성향의 교수 출신으로 금융위에서 금감원을 분리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해왔다. 그러나 금융위로서 금감원과 분리는 조직의 존폐와 직결된 사안이라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금감원 역시 수뇌부는 ‘독립’을 원하지만 실무진은 “정치적 외풍을 직접 맞을 것”이라며 반대하는 분위기도 일부 감지된다. 앞의 관계자는 “이번 정부가 금감원 독립 등 금융위 개혁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지만 실제 금융위 해체가 이뤄지긴 어렵다고 본다”며 “우선 관련법 개정을 하려면 야당을 설득해야 하고, 민간기구인 금감원을 누가 감독할지 등 합의 내용이 많다. 또 가장 힘센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금융위를 돕고 있다. 안팎의 반발이 거셀 것”이라고 말했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