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마이웨이” 정개개편 막 오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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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명박-박근혜의 세종시 전쟁’은 향후의 여론전 승패에 따라 그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세종시 정국에서 줄곧 ‘미래’를 외치고 있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정치적 신의도 때로는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최근 이 대통령의 세종시 정국 조성이 ‘묻지마 반대’만을 줄곧 외치는 박근혜 전 대표를 과거 세력으로 묶고 자신은 미래 세력으로서 새로운 정치 프레임을 만들려는 정계개편의 시작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세종시 정국에 얽힌 정계개편의 가능성을 분석해 봤다.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되자마자 정국은 ‘이명박-박근혜’ 양대 권력의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한때 정치권에서는 수정안이 발표되면 양측이 한동안 냉각기를 가진 뒤 본격적인 여론전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가 수정안이 발표되자마자 예전의 반대 의사보다 더욱 강경하게 “노”를 외치면서 세종시 전쟁은 예상보다 일찍 불을 뿜고 있다. 박 전 대표가 기습적인 선공을 날린 배경에 대해 한 친이계 인사는 “수정안 발표 뒤 언론사들의 여론조사가 곧 발표될 예정이었는데 박 전 대표가 그 전에 선수를 친 것 같다. 수정안에 찬성하는 여론이 초반부터 높게 나올 경우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상보다 일찍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 같다. 하지만 한나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너무 성급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예전에 보여준 시의적절하고 날카로운 ‘한마디 정치’가 이번 세종시 정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조급하게 서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향후의 여론전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친이계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 의존했던 강경 일변도의 정무라인 의견을 다시 경청하기 시작했다는, 첫 신호탄이 이번 세종시 정국의 성급한 행보로 이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70면 정두언 의원 인터뷰 참조).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도 박 전 대표의 강수를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조금도 지지 않고 강하게 맞서고 있다. 이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이례적으로 세종시에 대해 언급하며 “너무 정치논리로 가고 있다”며 박 전 대표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리고 그 칼날은 주호영 특임장관에 의해 더욱 벼려졌다. 주 장관은 최근 “세종시 수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다음 정부에서 원안대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밝혀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현 정권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원안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자, 국회통과가 부결될 경우 세종시 공사를 전면 중단하겠다는 초강경 대응을 의미한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도 박 전 대표의 무조건 반대에 대해 ‘이에는 이’로 맞서는 것 같다. 자신의 임기 내에 세종시 건설의 삽을 뜨지 않겠다는 초강경 대응 아닌가. 다음 정권에서 수정안을 다시 내든 원안대로 하든 결정을 하라는, 박 전 대표에 대한 고강도 프레스 작전이다. 하지만 이런 강경 일변도 전략은 지방선거라는 결정적인 승부처를 남겨둔 이 대통령이 큰소리만 치고 실리는 잃는 허세에 불과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세종시 전쟁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둘 중 한 사람은 중상을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고 그 골목의 초입에는 ‘여론전’이라는 전장이 기다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요즘 여의도에서는 “양측의 ‘여론전’을 가를 핵심 요소는 바로 ‘프레임(의제가 형성되는 기본적인 틀)’”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프레임이 어떻게 세종시 정국에서 설정되느냐에 따라 여론전의 승패도 갈릴 전망이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실패할 여지가 많은 정책은 수정되어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미래 프레임’이나 “국민적 신뢰를 지키는 것이 더 큰 손해를 막는 최상의 선택”이라는 박근혜 전 대표의 ‘원칙 프레임’ 모두 명분상으론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옳은 말씀’들이다. 그럼에도 두 프레임 가운데 하나는 향후의 여론전 결과에 따라 패배로 끝날 것이다.
먼저 이 대통령의 ‘미래’ 프레임 설정 전략은 여론전에서 친이세력의 핵심 무기로 쓰이고 있다. 여권의 핵심 전략 관계자들은 이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유용하게 사용했던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경제 대통령’의 프레임이 지금도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최근 UAE 원전 수주는 이 대통령의 미래·경제 프레임을 더욱 공고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판단한다. 세종시 정국에서도 미래 프레임은 이 대통령 자신은 정치논리를 떠나 미래를 위해 부를 재생산하는 세력으로 의미를 재설정한다. 최근 정운찬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세종시 원안을 ‘과거의 정치적 복선’ ‘시대를 거꾸로 돌리자는 것’ ‘위험한 실험’이라 지칭한 반면 수정안에 대해서는 ‘미래에 먹고 살 쌀을 만드는 것’이라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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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 예정지 전경.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최근 친이계 한 의원이 이에 대해 “여권 주류의 밀어붙이기가 세종시 수정이 목적이 아니라, 박 전 대표의 ‘몽니’ 이미지를 부각시켜 차기 주자의 반열에서 밀어내기 위한 차원이라는 얘기가 있다. 여권 주류가 세종시 문제에 일찍 종지부를 찍는 대신, ‘장기전’으로 끌고 가려는 것도 박 전 대표의 반대 이미지가 과거 회귀 프레임과 맞물려 이미지 훼손을 더 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대목은 이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친이세력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이미 세종시 전쟁의 승패에는 관심이 없고 수정안 포기를 전제로 한 반대급부를 노리고 있다”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의 한 컨설턴트는 이 대통령의 ‘세종시 발 정계개편 신호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정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개혁을 더 원하는지 모른다. 집권 3년차를 맞는 올해 어떻게 해서든 정계개편의 틀을 마련할 필요를 느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개편의 첫 시작이 바로 세종시 정국 조성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정국 프레임을 만들고 그 중심에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친이세력을 재결집시키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미래 세력 중심의 새로운 정계개편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이 대통령은 제2, 제3의 세종시 정국을 조성해 정국 지형을 ‘미래세력과 과거세력’의 대결로 끊임없이 몰아넣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종시 정국은 그 정계개편을 알리는 하나의 서막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미래 프레임 전략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많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에 대해 “정치 문외한인 이 대통령이 거기까지(세종시 정국이 정계개편의 시작이라는) 생각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경제통을 자처하는 이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도 청계천 상인 설득 신화처럼 ‘쉽게’ 해결될 것으로 믿고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세종시 수정안이 여러 번 변경돼 급조된 정황과 이 대통령이 지난해 말 ‘문제가 많으면 도리가 없지 않느냐’며 포기 의사를 밝힌 것도 백년대계 차원에서 접근했다기보다 회의석상에서 갑자기 무릎을 치며 생각해낸 즉흥적인 결정이라는 인상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미래 프레임 전략이 상인 출신이 만들어낸 철학 없는 마케팅 전략이라고 비판한다. 여기에는 세종시 논의의 본말이 완전히 전도됐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한 정치 전문가는 이에 대해 “세종시는 본래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국가 주요 정책이었지, 충청권 지역 개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세종시를 ‘낙후한 충청권 발전’ 문제로 둔갑시켰다. 이런 전략은 ‘미래를 위한 개발’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둔갑돼 국민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친 정부적인 신문방송과 스핀 닥터링(여론전 방식) 등을 통해 반대파들을 과거회귀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친이세력에서는 이 대통령이 이런 본말이 전도된 여론전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며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미래 프레임’이 ‘원칙 프레임’을 이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 친이 의원은 이에 대해 “세종시 원안은 지난 2005년 여야 합의로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세종시 문제는 국토 균형개발이었지만 지금은 여야 합의로 통과된 원안을 사수하느냐 수정안을 만드느냐의 문제로 변질되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애초에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다. 연말마다 난장판인 국회를 지켜보면서 여야 합의가 무산되는 기형적 상황에 대해 상당히 익숙해 있다. 더구나 이 문제가 충청이라는 지역으로 한정된 상황에서 다른 지역 민심은 박 전 대표의 원칙론보다는 이 대통령의 경제논리를 앞세운 미래 프레임에 더 끌리는 현상이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에 충청권도 전국 민심과 연동되고 이 대통령의 끊임없는 개발 프로젝트에 현혹돼 변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정국을 통해 ‘신뢰와 원칙’보다 한 차원 높은 ‘미래’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창조해내려고 한다. 그는 ‘미래’를 통해 제자리에서 반대만을 외치는 박근혜 전 대표를 과거 세력으로 묶고 그것을 ‘모멘텀’으로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새로운 미래 세력이 권력을 재창출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근혜 지지층 이탈 논란
충청권 얻어도 수도권 우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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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이번 세종시 정국을 통해 충청지역과 친박 성향 당원들의 지지층을 재결집시키는 효과는 거뒀겠지만 수도권에 분포된 중립성향의 당원들에게는 ‘말이 안 통하는 정치인’으로 찍힐 가능성이 있다. 일부 ‘반박’ 당원들 사이에서는 예전의 ‘무조건 이회창 반대’를 외치던 경향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 친박 진영에서는 세종시 정국이 어떤 식으로든 빨리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보완작업’을 통해 이슈 살리기를 계속할 경우, 대안 제시 없이 반대만을 녹음기 틀어놓듯 말해야 하는 박 전 대표의 대응책이 옹색하다는 지적이 점차 설득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박 전 대표는 충청도나 반 또는 비 MB층엔 ‘구세주’가 되겠지만, 적어도 수도권이나 부동층에선 “너무하는 것 아닌가”라는 여론이 확산될 여지가 점차 커질 수도 있다.
여의도의 한 정치 전문가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이번 기회에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 상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세종시 해법에 담아내야 하는 부담이 생기고 있다. 약속과 신뢰만 가지고 지난한 세종시 정국을 헤쳐 나가기에는 여론의 인내에 한계가 있다. 사실 ‘약속’과 ‘약속 번복’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현재의 세종시 정국에서 그 해답은 뻔하다. 이 대통령이 약속 지키는 것(원안 수용)을 따르기만 하면 문제는 간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로서도 ‘약속’만을 고집함으로써 앞으로 그 약속 때문에 무너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가 대통령이 된 뒤 세종시 정국과 같은 사안이 다시 오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느냐. 박 전 대표도 세종시 정국에서 약속과 원칙 이상의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세종시 전쟁에서 후유증 없이 이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