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던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금융위원회가 최근 동산금융 활성화에 나섰으나 이에 대한 볼멘소리가 높다. 동산금융 활성화를 위한 현장 간담회에 참석한 최종구 금융위원장. 연합뉴스.
지난 23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시화산업단지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현장간담회에서 동산담보대출 활성화로 동산금융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동산은 중소기업 자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부동산과 인적 담보를 보완할 수 있다”며 “기업이면 누구나 동산을 가지고 있어 신용도가 부족한 창업·중소기업의 유용한 자금조달 수단이 될 것”이라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금융위는 경기에 따른 변동성이 적고 경기 침체기에도 채무불이행 위험을 낮출 수 있다며 동산 금융의 특성을 높이 평가했다.
동산이란 부동산을 제외한 자산으로 기계설비·재고자산·농축수산물 등 형체가 있는 ‘유체동산’과 매출채권·지식재산권 등 형체가 없는 ‘무체동산’을 포함한다. 이를 담보로 하는 동산담보대출은 2012년 동산담보법이 시행되면서 그해 8월 은행권에서 취급하기 시작했다.
금융위는 우선 여신운용체계를 전면 개선할 예정이다. 제조업으로 한정됐던 동산담보대출 이용 업종을 유통·서비스업 등 모든 기업으로 확대하고 모든 동산이 담보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특별히 지식재산권에 대해선 가치평가 비용 등을 적극 지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행 40%였던 담보인정비율은 앞으로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된다.
동산담보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정확한 가치평가를 위한 인프라도 구축한다. 은행들이 전문평가법인 풀(pool)을 구성해 이를 동산 평가에 적극 활용하고, 평가·관리·회수정보 등을 신용정보원에 공동 데이터베이스로 집적하는 것. 담보물엔 센서를 부착해 이동·훼손을 감지하는 사물인터넷(IoT) 자산관리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동산의 회전율·정상가동 여부 등을 추정해 이를 은행권에 수시로 제공하는 빅테이터 기반 모니터링 서비스도 도입한다.
동산담보의 처분을 쉽게 해 은행의 부담도 줄인다. 금융권 매각 물량을 전문매각기관에 집중시키는 등 은행들의 자체 매각을 용이하게 할 예정이다. 그 일환으로 현재 기계거래소,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담당하고 있는 전문매각시장 체제도 손본다. 국내 수요가 부족한 동산에 대해선 해외 매각을 적극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다. 정책적 인센티브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금융위는 “동산담보대출 이용 기업에 향후 3년간 1조 5000억 원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겠다”며 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제도가 개선된다 해도 동산 고유의 특성을 감내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5월 21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동산금융 활성화 추진 전략’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시장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제도가 개선된다 해도 동산 고유의 특성을 감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동산은 부동산처럼 정량화되기 쉽지 않고 감가상각 수준도 달라 감정 평가가 힘들다. 그러다보니 평가기간도 일주일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훼손이나 도난, 내부 핵심 부품 등을 바꿔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특허나 지식재산권 등의 동산은 그 가치를 따졌을 때 빈껍데기인 경우도 있어 동산 활성화는 섣불리 감행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추이만 보더라도 동산담보대출은 초기 1년간은 2400여 개 업체에 6000억 원의 자금을 공급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으나 이듬해부터는 담보물 실종과 중복 담보, 불법반출, 훼손 등 제도적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그 취급액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자산에서 동산자산 비율은 38%로 부동산, 현금·투자 등의 기타자산보다 높지만 그 대출 비율이 0.05%에 그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 남아 있는 잔액은 2051억 원으로 초기 실적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은행권에선 담보물 관리·감시 등을 위한 센서 마련이 은행에 비용 부담만 지울 뿐 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사물인터넷 기술을 적용한다 해도 담보관리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단적으로 담보로 잡힌 동산을 해외에서 분실할 수도 있고 악의적으로 위치 추적기를 훼손해 동산을 처분할 여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동산마다 부착될 센서의 단말기 구입·리스(임대)비, 월 통신료 등도 만만치 않다. 은행은 담보물이 늘수록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만 한다.
동산금융제도가 재정비된다 해도 이용률이 반등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소기업들이 제1금융권의 까다로운 동산담보대출 요건과 절차를 피해 이미 제2금융권에서 대거 대출을 받아 추가 대출을 위한 동산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최근 들어 제2금융권에서도 그 이용률이 줄었다”며 “동산담보대출을 취급하는 저축은행은 거의 없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동산금융이 실제로 활성화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전문평가법인 구성과 평가 기준 마련, 데이터 구축, 은행 상품 개발 등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 은행권 다른 관계자는 “동산 담보와 관련한 빅데이터 축적 등엔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라며 “수많은 유형의 담보를 평가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아 대출 다양화와 활성화가 가능할지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동산담보대출 활성화의 실효성을 예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금융위가 기업들의 중소담보대출 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그러나 그 효과가 얼만큼 있을지는 아직 예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
제3자도 담보물 등기부 열람 가능…중복 담보 피해 줄어드나 동산담보대출은 기존에도 이미 존재해 왔던 제도다. 공작기계·사출성형기 등의 유형시설과 후판·철근 등의 원자재, 매출채권, 심지어 농·축·수산물도 담보물로 인정받았다. 육류담보대출, 수산물담보대출, 판권담보대출 등의 형식으로도 운용돼 왔다. 부동산 담보가 부족하거나 신용대출 한도가 꽉 찬 농가와 중소기업들은 이러한 대출 제도를 활용해 필요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6년 말 제2금융권이 6000억 원대의 육류담보대출 사기에 휘말리면서 동산담보대출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본래 하나의 담보물로는 한 곳의 금융사에서만 돈을 빌릴 수 있지만 동산 담보의 경우 이중·중복 담보 즉, 여러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아도 이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대출중개사들은 이를 악용해 고기 유통업체의 담보가치를 평가하고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허위의 대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수천억 원을 빼돌렸다. 금융위원회는 대법원 규칙을 개정해 은행 등 제3자도 담보물에 대한 등기부 열람을 가능토록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과거엔 은행들이 특정 동산에 여타 담보권이 설정됐는지를 확인하기 어려워 이러한 사건, 사고가 많았다”며 “오는 8월부턴 은행들의 등기부 열람이 가능해져 그 피해는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