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장에 춤추는 프로스포츠 운영…전임 행적 지우기 희생양 되기 ‘일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시절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유세에 나섰다. 연합뉴스
[일요신문] 6·13지방선거가 임박했다. 지방선거는 그 결과가 스포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현대 프로스포츠는 지역 연고 밀착이 나날이 강조되고 있는 만큼 구단이 자리를 잡고 있는 지역 지자체와의 관계 형성이 중요해졌다. 정치권 입장에서도 스포츠계가 ‘표밭’이 될 수 있기에 경기장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이에 ‘스포츠와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지만 지방 정치와 스포츠는 이미 떼어 놓고 이야기하기 힘든 상황이 된지 오래다.
#4년마다 부산에 울려 퍼지는 ‘돔구장 타령’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돔구장 건립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한 후보가 시장에 당선됐다. 8년이 지난 현재 부산을 상징하는 롯데 자이언츠는 1985년 지어진 사직 구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시절 야구 동아리를 창설할 정도로 야구를 사랑한다’는 또 다른 후보는 돔구장 건립을 약속했다. 그는 4년이 지난 현재 다시 돔구장 타령을 이어가고 있다.
선거 때마다 한 후보가 돔구장 건립을 공약으로 들고 나오면 경쟁자들도 너도나도 공수표를 남발하기에 바빴다. 이번 선거전만큼은 상황이 다소 다르다. 갑작스레 자신의 ‘유난스러운 야구 사랑’을 늘어놓기 바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현직 시장인 서병수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4인의 후보는 개방형 돔구장 건립을 주장하고 나섰다.
한 차례 위기를 맞았던 창원마산야구장 건립 공사. 사진=창원마산야구장 페이스북
NC 다이노스의 홈구장으로 사용될 창원마산야구장은 현재 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이 구장은 오는 2019년 2월을 목표로 하는 완공일이 늦춰질 뻔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총 건립예산 1240억 원이 책정된 공사에서 경상남도 도비 200억 원이 투입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 재임 시절 도비 지원이 보류됐다. 홍 전 지사는 전임 김두관 전 지사의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안상수 창원시장과의 갈등도 이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홍 전 지사가 대선 출마를 위해 자리에서 물러난 후 도비 지급 재개가 이뤄졌다.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프로 스포츠는 지자체장의 입김에 흔들리기 십상이다. 그나마 전 구단이 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는 야구는 덜한 편이다. 프로축구 K리그의 경우 22개 구단 중 절반이 넘는 13개 구단이 시·도민구단이다. 이들은 이름 그대로의 ‘시·도민구단’이라기보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시·도립구단’이기에 지방선거에 절대적인 영향력 안에 있다.
# 지자체장이 낳은 시·도민구단
13개의 시·도민구단 중 몇몇은 ‘OOO의 작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창단 이후 시간이 흐르며 이 같은 색채가 옅어지고 있지만 상당수가 지방 정치인들의 적극적 움직임으로 탄생한 구단이다.
이에 ‘정권교체’가 이뤄진 구단은 지원이 극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선거가 끝나면 신임 지자체장은 소속 정당이 다른 전임자의 ‘업적’인 구단에 지원하기를 꺼리기 일쑤다. 실제로 전임 지자체장이 ‘심어놓은’ 단장과 신임 지자체장의 갈등이 심화돼 지원과 운영이 여의치 않다가 막상 지자체장이 선호하는 단장이 선임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구단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도 한다. 이 같은 구단의 널뛰기 행보에 팬들만 속앓이를 한다.
시·도민구단이 지자체장 한 명만의 입김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시·도 의회가 여소야대로 구성될 경우 야당 의원들은 지자체의 구단 지원 의지에 사사건건 ‘태클’을 가한다. 시·도 의회의 반대로 구단 지원 예산이 삭감된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구단의 상황에 따라 정치인들의 관심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안정적 구조로 운영되는 기업 구단에 비해 시·도민구단은 상대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 구단의 반짝 활약으로 주민들의 관심이 올라가면 지자체장은 경기장에 자주 얼굴을 비춘다. 반면 저조한 성적을 거두거나 하부리그로 강등되면 이들의 관심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든다. 한 인사는 취임 이후 야심차게 구단을 지원하더니 성적이 저조하자 “해체하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스포츠 구단이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휘둘리는 이유로 ‘독립성 부족’이 꼽힌다. 특히 지자체의 예산이 구단 운영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시·도민구단은 눈치 보기가 필수적이다. 나날이 돈이 강조되고 있는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독립적인 수익구조를 갖춘다면 지자체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 이어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작은 국내 현실에서는 꿈같은 일로 치부되기도 한다.
기업구단 또한 예외는 아니다. 구단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경기장이 대부분 지자체 소유이기 때문이다. 원활한 협조와 경기장 관리 등을 위해서는 지자체와의 관계 형성이 필수적인 게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정경유착 등 각종 의혹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기도 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