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B금융 주춤하는 사이 우리은행 급부상
우리은행이 하이투자증권 인수전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소공로 우리은행 본점.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하지만 1년이 넘도록 DGB금융의 인수 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당초 DGB금융은 지난해 11월 현대미포조선에서 하이투자증권 주식 85.32%를 4500억 원에 인수하기로 계약했다. 올해 3월 말까지 거래를 종결하기로 했다. DGB는 이어 작년 12월 하이투자증권 자회사 편입에 대한 신청서를 제출했다.
금융당국은 작년 말 하이투자증권 대주주 변경을 위한 심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박인규 전 회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금융당국은 박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및 채용비리, 수성구청 의혹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그리고 DGB에는 ‘사업 계획서 미비’와 ‘영업전략 부재’ 등의 이유로 지난 1월 ‘심사서류 보완’을 요청했다.
현행법상 금융당국은 자회사 편입 승인 신청서를 받은 이후 60일 내에 이를 심사해야 한다. 법대로라면 이미 3월 초쯤 심사가 끝났어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는 이유는 심사서류 보완을 요구한 경우 추가 자료 제출 기간이 심사 기간에 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DGB금융은 지난 1월 이후 4개월이 넘도록 금융감독원이 요구한 보완서류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사실 DGB금융은 이달 초 하이투자증권 자회사 편입에 대한 보완서류를 금감원에 제출하려고 했다. 지난달 31일 주주총회에서 새로운 회장을 공식적으로 선임함으로써 이른바 ‘CEO리스크’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당국 측은 각종 의혹에 대한 조사가 끝나지 않았고, 관련 임원은 물론 DGB금융이나 대구은행에 대한 제재 조치가 불가피한 상황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실제로 DGB 측도 하이투자증권 인수 승인에 대한 금융당국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서류를 제출하는 데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총 60일 심사 기간 중 이미 한 달여가 지났기 때문에 별다른 대책 없이 서류를 제출할 경우 승인이 거절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DGB 측은 일단 현대중공업그룹과 주식매매계약(SPA) 유효기한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시간벌기에 나섰다. 금융권에 따르면 DGB금융과 현대중공업그룹은 최근 회동을 갖고 SPA 유효기한을 오는 9월 말까지로 연장하기로 뜻을 모았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인내심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 미지수라는 것이 금융권의 관측이다. 지주사 전환이라는 그룹 차원의 작업이 지연되고 있어서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그룹은 내년까지 지주사 전환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면서 “마냥 기다리긴 힘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지주사 전환을 선언한 우리은행이 증권사 인수에 관심을 표명, 하이투자증권을 노릴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 5월 19일 이사회를 열어 3분기 내 지주사 인가를 목표로 지주사 전환을 의결했다. 우리은행은 조만간 금융위원회에 본인가를 신청할 계획인 것을 전해진다. 당국의 승인을 받으면 올 연말 주주총회를 열어 연내에 지주사 설립을 마무리짓겠다는 것이다.
금융권은 우리은행이 지주사 전환 작업의 일환으로 증권사 인수를 계획하고 있으며, 특히 하이투자증권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우리은행의 출자 여력은 7000억 원 수준이다. 하지만 지주사로 전환되면 출자 여력이 7조 원 이상으로 늘어나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설 수 있다. 현행 은행법상으로는 자기자본의 20% 이상 출자할 수 없지만 지주사로 전환하면 금융지주회사법을 적용받아 자기자본의 130%까지 출자 여력이 생긴다.
우리은행이 하이투자증권을 사들이면 증권업 역량 확대뿐 아니라 자산운용사까지 거느릴 수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하이자산운용을 100% 자회사로 소유하고 있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이미 지난해 하이투자증권 인수를 검토한 적 있다”면서 “여러 옵션을 놓고 저울질을 하겠지만 속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데다 규모와 인지도, 시너지 등을 감안할 때 하이투자증권 인수에 무게가 실리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 IMM프라이빗에쿼티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하이투자증권 인수를 두고 막판까지 DGB금융과 경쟁을 벌인 바 있다.
경쟁자로 거론되던 다른 금융사들이 일제히 악재를 만나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점도 우리은행에 유리한 판세를 만들고 있다. DGB는 말할 것도 없고, 대안으로 거론되던 BNK금융지주도 엘시티 특혜대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금감원으로부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분 영업정지 결정을 받아 M&A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여기에 증권업계 인수 후보군이던 삼성증권 역시 ‘유령 주식 사태’에 휘말리면서 사실상 동력을 잃은 상태다.
우리은행 측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도 말을 아끼고 있다. 우리은행 측 관계자는 “당장 시급한 과제는 지주사 전환”이라면서도 “M&A는 좀 더 면밀하게 시장 상황을 따져본 후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