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글징글한 인재난 ‘저 별을 따다 줘’
▲ 지난 1월 2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세균 대표(맨 왼쪽)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
“지방선거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해 민주세력 내 제 정파, 사회단체뿐만 아니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 등 ‘유력한 개인’들도 과감하게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대통합을 이뤄내야 합니다.”
귀를 쫑긋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돌던 박 이사와 손 교수에 대한 ‘참여’를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 최고위원이 인재영입과 선거준비 등을 총괄하는 ‘지방선거기획본부 공동본부장’이라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허투루 들을 수가 없었다.
사실 ‘박원순·손석희’는 민주당과 야권이 선거를 앞두고 궁지에 몰릴 때마다 꺼내든 카드였다. 한 사람은 시민사회를 상징하는 대표성에서, 또 한 사람은 유명 방송인으로서 인지도 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권의 영입노력은 번번이 좌절됐고, 아직까지도 이들의 영입 작업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김 최고위원의 이날 발언은 이들의 영입이 어느 정도 진척을 보이고 있음을 방증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의지의 표현이었을까.
당 안팎에서는 “침 발라놓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마디로 “정 데려올 수 없으면, 남이 데려가지 못하게 해놓자는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 다 정계 진출에 대해서 워낙 확고한 거부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우리에겐 이런 비장의 카드가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상임이사에 대한 정치권의 러브콜은 꽤 역사가 길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를 발족시켜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하면서부터 정치권은 그의 참신한 이미지를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6년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지방선거 참패 이후, 박 이사를 차기 대선주자군 중 하나로 영입하기로 결정하고 상당한 공을 들였다.
박 이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 총선에선 민주당, 2004년 총선에선 한나라당이 두 번씩이나 공천위원장을 맡아 달라 했지만 다 거절했다. 그런 자리를 맡으면 전국구 1번 주던 때다. 맘만 먹었으면 수석·장관도 여러 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서울시장 출마와 관련해선 “전혀, 절대 나가지 않는다. 주한 영국대사를 만나는데 ‘영국에 1년 정도 초청해줄 수 있냐’고 물어볼 생각”이라며 정치권의 집요한 ‘스토킹’에 질려버린 듯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그가 ‘희망과 대안’의 공동운영본부장 자격으로 진보정당과 시민단체의 지방선거 야권연대 논의체인 ‘5+4’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박 이사가 아직까진 출마 의사가 전혀 없는 것 같다”면서도 “야권 공멸의 상황이 닥치면 그 역시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왼쪽부터)박원순, 손석희, 엄기영, 조국 | ||
그러다 보니 해프닝도 있었다. 손 교수가 진행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여권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홍준표 의원이 출연해 손 교수에게 역으로 ‘출마의사’를 추궁했던 것. 손 교수의 답변은 “나는 (민주당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제안 받은 바도 없고, (그런 움직임이 있다는 기사는) 오보”라는 것이었다.
손 교수에 대한 정치권의 구애 역시 역사가 오래다. 정치권에 진출한 한 MBC 출신 인사는 “손 교수가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오세훈 현 서울시장 등 신진 인사들과 함께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보기 위해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키로 했었던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오 시장이 ‘약속’을 어기고 한나라당행을 결정하자 그때부터 정치현실에 깊은 염증을 느끼고 정치권과의 왕래를 끊었다”고 회고했다. 이 인사는 2006년 지방선거 때도 손 교수를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오 시장과의 이 같은 악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또 춘천 출신인 엄기영 전 MBC 사장에 대한 강원도지사 후보 영입도 민주당으로선 아직 포기하지 않은 카드 중 하나다. 엄 전 사장 역시 과거 여러 차례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방송인으로서 ‘정도’를 걷겠다며 이를 고사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MBC 신임 이사진 임명 강행에 강력 반발하던 엄 전 사장이 지난 8일 결국 사퇴하고 만 것. 엄 전 사장은 사퇴 이후 지방선거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혀 생각이 없다”고 밝혔지만 민주당으로선 그를 지방선거로 이끌 ‘명분’이 생긴 셈이다.
‘뉴 페이스’도 등장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가 주인공이다.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조 교수는 학자로서의 자질에 ‘상품성 있는’ 외모와 언변까지 갖췄다는 평가다. 1993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그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이후 줄곧 진보진영의 사회적 활동에 적극 참여해왔다.
야권의 한 중진인사는 “서울시장 후보로 조 교수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면서 “젊은 이미지를 앞세우는 오 시장과 여러 면에서 재밌는 대결구도가 그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선 서울시장보다는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더 많다. 인재영입을 담당하는 민주당의 한 인사는 “시민사회 쪽에서 조 교수의 결단을 계속해서 설득 중”이라며 “교육감 후보가 정당 공천을 받진 않지만, 사실상 야당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되는 구도이기 때문에 시민사회 쪽에게 맡겨놓았다”고 말했다. 특히 여권에서 박세일 서울대 교수를 교육감 후보로 검토 중이라는 점에 착안, ‘조국 카드’를 진지하게 검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 교수 역시 이 같은 관측을 단박에 부정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야당 쪽에서 이메일 한 통, 전화 한 통 받은 일이 없다. 지방선거에 나설 시간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위원’을 맡고 있어 지방선거에 나서기라도 한다면 당장 ‘인권위를 발판으로 정치한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